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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영 Jan 30. 2024

이방인의 마음

이방인은 어린아이의 시선을 되찾기 좋은 기회다

일러스트 guka


요즘의 나는 너무 작아서 작은 것들에 마음이 간다. 도로가에 단풍나무 싹이 틔어난 것을 보고 저대로 두면 분명 죽을 텐데 싶어 계속 눈길이 갔다. 결국 삽을 들고 와 고이 퍼서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어딘지도 모를 땅으로 날아와 뿌리를 내리고 힘차게 싹까지 틔운 그 씩씩함을 지켜주고 싶어서였을까. 닮고 싶어서였을까. ‘작은 단풍나무’라는 뜻으로 ‘소풍(小楓)’이라고 이름도 지었다. ‘소풍’이에게 물을 주며 ‘오늘 하루도 소풍온 듯 살자’ 하고 마음으로 말했다. 


타국에서 산다는 것은 도로가에 홀로 있던 여린 나무처럼 낯설고 위태롭고 삭막한 삶이다.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를 떠나 “어디서 왔냐?”는 말을 평생 들어야 하고, 다수의 입장이 아닌 소수의 인종이 되어 어딜 가든 눈에 띄는 사람이 된다. 특히나 코로나 이후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심해지면서 손짓 몸짓을 총 동원해 나를 약 올릴 려고 작정을 하는 철없는 아이들을 만났다. 내가 반응을 하지 않고 무시한 채 걸어가자 관심을 끌려고 돌멩이를 던지며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나도 똑같이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서럽게 울기도 했다. 낯선 환경보다도 이방인이라는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난생처음으로 ‘조롱, 무시, 억울함’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크게 와닿았다. 이전엔 이해하지 못했고 위로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정말 아팠겠다’고 마음으로 느끼며 같이 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낮은 자리를 찾아 몸을 숙이고 간절히 기도하며,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에 감사했다. 


겪어보니, 어떤 일이건 좋은 점과 힘든 점이 함께 있었다. 국경을 넘어서 좋은 점은 새로운 세계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그 세계는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휴대폰을 개통하고, 은행계좌를 여는 아주 일상적인 일들도 버벅거렸지만, 어린아이의 시선을 되찾기 좋은 위치였다. 주황색과 검은색이 섞인 화려한 색감의 나비만 봐도 좋아서 쫓아다니고, 처음 보는 음식들을 궁금해하며 새로운 맛을 알아가고, 새끼 양이 미소 짓는 것을 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우와, 동물도 웃을 수 있구나. 우와, 비트루트를 넣어서 케이크를 만들 수도 있네. 우와, 이름이 러비(Lovey) 라니 정말 귀엽다.’ 그렇게 감사와 감탄을 되찾아 갔다. 뉴질랜드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현실을 마주하면 숨이 막혔지만, 소풍처럼 오늘 하루를 생각하면 숨이 쉬어졌다. 숨이 트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오늘 감사했던 일 하나를 찾는 것,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온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 하나부터 시작하면 뭐든 좀 쉬웠다.


 뉴질랜드에서만 볼 수 있을 풍경. 엄마를 잃은 새끼 양을 데려와 집에서 키우며 자라면 초원으로 돌려보낸다
나무 위를 가리키며 뉴질랜드에서만 볼 수 있는 뚜이(tui) 새를 소개해준 사람들


노을 지는 시간이면 산책을 나갔는데, 그때마다 마주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장을 본 후 집으로 걸어가시는 듯했는데, 무거운 짐을 양손에 가득 들고서도 친절히 인사하는 걸 잊지 않으셨다. “How are you?(안녕하세요.)”, “Good evening for a walk.(걷기 좋은 날씨네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의 인사는 짧지만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게 했다. 말을 걸어오는 듯한 다정한 인사 덕분에 그날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생소한 도시가 좋아지는 건 친절한 ‘한 사람’을 만나면서부터 인 것 같다. 그냥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손가락으로 브이(V) 포즈를 만들며 웃어주는 사람, 우연히 걷다 새소리를 들었는데 손가락 끝으로 나무 위를 가리키며 뉴질랜드에서만 볼 수 있는 새라며 소개해주는 사람 등 호의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도시에 다시 오고 싶다고 느끼게 된다.  


나루아와히아(Ngaruawahia)라는 작은 도시에 놀러 갔을 때 강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마오리족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나루아와히아는 마오리족의 왕이 살고 있는 역사적인 마을로 거주민의 대부분이 마오리족이고 아시아인은 고작 3.1%에 불과해서 방문하는 것조차 망설여졌었다. 무더운 여름, 강으로 다이빙하며 여름날을 즐기는 아이들이 멋져 보여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흔쾌히 손을 흔들며 좋다고 대답해 줬고,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해 내 긴장을 풀어줬다.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는 우리를 보고 “안녕”이라고 한국어로 인사해 줬고, 또 우연히 찾아간 빵가게에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에그 타르트 하나를 선물로 줬다. 예상치 못한 순간들과 기대하지 않았던 환대를 받으며 내가 정말 소풍 혹은 여행 중이구나 실감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쩌면 이방인의 마음가짐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익숙하고 충분하다고 느낀다면 환대가 필요하지도 않을 테니까. 빈 손과 빈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간다면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루아와히아(Ngaruawahia) 강가에서 만난 수영을 하는 아이들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호의를 보여준 아이들


글/사진 장혜영, 그림 guka(https://www.instagram.com/madeingu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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