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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영 Feb 13. 2024

동물과 함께 하는 풍경

작고 보드라운 존재만으로 행복해지는 우리

일러스트 guka


늦은 오후가 되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는 아이가 있었다. 부모님은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고 아이는 강아지와 뛰어다니며 함께 놀았는데, 하루는 강아지 물그릇을 깜박하고 가지고 오지 않았다. 아이는 조그마한 손을 모으고 그 안에 자신의 생수를 부어 목말라하는 강아지에게 건넸다. 자신의 손이 축축해지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몇 번을 반복해 강아지가 만족해할 만큼 물을 먹이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인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또 한 번은 폭포에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소풍을 온 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 폭포 아래에는 수영을 할 수 있을 만큼 물이 고여 있었는데, 한 강아지가 유독 물을 무서워했다. 그 가족은 알고 있다는 듯이 바디보드를 꺼내 강아지가 올라타게 하고 보드를 끌며 같이 시간을 보냈다. 다른 한 마리의 강아지는 물을 좋아해서 개헤엄을 치며 가족 사이를 오갔다. 물놀이를 하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강아지들이 사랑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해도 되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개를 돌보는 것은 아기를 키우는 것과 닮은 점이 많은 듯하다. 의식주뿐만 아니라, 목욕을 시켜주고 같이 놀아주며 관심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힘든 점들이 분명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사랑하기에 감당할 수 있다. “정말이지 망가뜨리는 것이 많은 아이이지만, 가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He is a monster, but he is a part of my family.) 미셀은 7살 된 개 체이스와 1살 된 개 로키를 키우고 있다. 대형견인 로키는 너무 활동적이어서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나무 문을 물어뜯어 구멍을 내고, 식탁 위에 올라가서 준비해 둔 음식들을 먹고 심지어 팬트리(저장용 음식들을 보관해 두는 찬장)까지 열어서 사두었던 빵도 다 먹었다. 침대와 담요는 물론 웬만한 물건들은 다 물고 빨아서 남아나질 않았다. 미셀이 정성껏 가꾼 정원도 땅을 파헤치며 망가뜨리고, 키운 채소들도 다 뜯어먹었다. 로키에게는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 농장에 사는 사람들에게로 보내야 하나 고민을 했다. 농장 사람들이 로키를 한번 만나보기 위해 찾아온 날, 미셀 가족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미셀은 로키가 가족구성원임을 절실히 느꼈고,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우리를 떠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생각을 접었다. 미셀의 세 아이들은 개들과 함께 잠을 자고 어디든 함께 데려가며 아꼈고, 겨울에 냄새가 많이 나도 "사랑의 냄새"라고 말하며 웃었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것이 하루 일과인 사람들


뉴질랜드는 개를 평생을 함께할 가족구성원으로 생각하고, 가족을 맞이하듯 개를 키우기 위한 정서적, 재정적 준비를 한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지역 의회에 등록을 하고, 매해 세금을 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인 1898년 처음 개 세금이 도입되었는데, 사회적으로 개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기반시설과 인력을 배치하는 데 사용한다. 2015년 뉴질랜드 반려동물 위원회(NZ Companion Animal Council)는 개를 돌보는 비용이 일 년에 약 1,686 NZD(약 137만 원)가 든다고 추정했다. 아픈 곳이 생겨서 동물병원에 데려가게 되면 방문만으로 수십만 원, 치료를 위해서 수백만 원이 드는 것은 기본이다. 미셀의 경우 호주에서 체이스를 입양한 후 뉴질랜드로 돌아올 때 함께 데리고 왔는데, 국경을 넘는 대가로 약 3,500 NZD(약 285만 원)가 들었다.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처음 입양을 한 순간부터 영원히 함께 할 가족이라고 생각했기에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돈이 없으면 개를 키울 수 조차 없기에 슬프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회적으로 책임감을 강조한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적으로도 개를 산책시킬 때 비닐봉지를 챙겨가 똥을 치우는 것은 기본이고, 공공장소에서 모든 개는 목줄을 하고 대형견의 경우 입마개까지 해서 대중의 안전을 우선시한다. 어쩌면 사랑과 책임감이 다른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는 분명 희생이 따르고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게 사랑이니까.


레베카는 기니피그를 키우기 위해서 따로 공부를 했다. 기니피그의 특성을 파악한 후 아버지와 함께 기니피그를 사러 갔고,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 <Little Annie>의 주인공 이름을 따 애니(Annie), 그리고 달콤한 캐러멜 과자의 이름을 따 토피(Toffee)라고 이름을 지었다. 레베카는 애니와 토피가 자신이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준다고 말했다. 또 밥을 줄 때면 좋아서 소리를 내고 소파 높이만큼이나 점프를 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기처럼 귀엽다고. 주기적으로 털을 깎아주고 똥을 치워주며 손이 가는 부분이 많지만, 그 역시 자신의 일과로 받아들였다. 


아나(Ana)와 아나가 기르고 있는 양
태어난 지 하루 된 양과 함께


아나는 양을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는데, 학교를 다녀온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양과 놀아주는 것이다. 아나의 어머니는 아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하지 않고, “어제는 양과 얼마나 같이 시간을 보냈니? 양이 얼마나 외롭겠니?”라며 잔소리를 한다. 반려동물(pet sheep)로 키우기 결정했으니 그만큼 시간과 애정을 쏟으라는 말에 참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장이 많은 뉴질랜드에서는 아이들이 양을 반려동물로 키우기도 하는데, 다 비슷한 솜뭉치처럼 보여도 저마다 표정과 걸음걸이가 다르고 아나는 뒷모습만 봐도 자신의 양을 알아본다. 보통 양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경우는 엄마 양이 출산 후 몸이 아프거나 젖 먹이는 것을 거부해서다. 그대로 두면 생명이 위협을 받기에 집으로 데려와 직접 우유를 주며 키우고 다 자라면 목장으로 돌려보낸다. 그렇게 사람과 교감하며 자라난 양은 사람을 아주 좋아해서 사람이 다가오면 멀리서 달려오고, 자신을 키워준 아이를 발견하면 미소를 짓는다. 강아지처럼 양이 주인을 졸졸졸 따라다닐 수 있다는 것을 아나와 그녀의 양을 보고 처음 알았다. 


동물을 사랑으로 돌볼 줄 안다면 나보다 훨씬 어린아이라도 존경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 눈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양들도 구분해 낼 줄 아는 관찰력을, 훗날 상처받을 것을 생각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자세를, 작고 보드라운 존재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동물과 함께하는 풍경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그동안 쌓아온 시간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강아지가 있는 풍경은 완벽하게 귀엽다
주인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개
강아지를 데리고 파머스 마켓에 온 사람들. 일상 속에서 동물들과 함께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글/사진 장혜영, 그림 guka(https://www.instagram.com/madeingu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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