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영 Feb 27. 2024

믿음, 소망, 그리고 새... 랑

독사도 독거미도 없는 새들의 나라에서

일러스트 guka


“어머, 이거 새소리야? 너랑 통화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친구는 전화기 너머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며 새소리가 배경인 곳은 대체 어떤 곳이냐며 부러워했다.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던 뉴질랜드의 장점이었다. 새들이 휘파람을 부는 소리, 날개를 퍼덕이며 바스락거리는 소리,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웅웅 거리는 소리, 많은 새들이 한꺼번에 지저귈 때면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처럼 다채롭고 청명한 소리가 주변에 가득했다. 뉴질랜드는 뱀과 같은 천적이 없어서 새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고, 13세기 후반 폴리네시아인들이 처음 항해해 오기 전까지는 포유류도 없던 오직 새들만 살던 나라였다. 포식자를 피해 날아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어서 새들은 땅 위를 유유히 걸어 다녔고 모아(Moa) 새와 같이 2-3미터의 거대한 몸집의 새들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유순한 성격의 모아 새는 손쉬운 사냥감이 되어 15세기에 멸종되었고, 19세기 유럽인들과 함께 고양이, 돼지, 개와 같은 가축들이 들어오면서 작은 새들을 잡거나 그 서식지를 차지해 감으로 인해 120여 종에서 70여 종으로 개체수가 줄었다. 요즘은 새를 보호하기 위한 경각심으로 도심 한가운데에도 습지와 같은 새를 위한 서식지를 남겨두는 것을 볼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인 오클랜드 도심에서 ‘이곳은 새를 위한 땅’이라는 안내 표지판과 함께 풀과 나무만 무성한 땅을 보고는, 땅값이 비싼 자리에 새 집을 마련해 주다니 정말 새에 진심이라고 느꼈다. 


 새집을 만들거나 새가 물을 먹을 수 있는 장식품을 정원에 두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새 그림이나 새 조각품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뉴질랜드 사람들은 새를 좋아한다.


새들의 나라답게, 새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뉴질랜드 설화도 있다. 숲의 신이 벌레들이 잎을 다 갉아먹어서 나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새들을 불러 모았다. 숲이 죽어간다고, 누가 땅으로 내려가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살아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뚜이(Tui) 새에게 그래 줄 수 있겠느냐고 묻자, 자신은 안 된다고 자신은 어두운 곳이 무섭다고 말했다. 푸케코(Pukeko)에게 묻자, 자신은 안된다고 자신의 발이 축축해지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신은 뻐꾸기(Shining cuckoo)를 돌아보며 부탁했지만, 자신의 둥지를 진흙 속에 지을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그때 키위(Kiwi)는 신에게 자신이 기꺼이 하겠다고 답했다. 신은 작은 키위에게 고마워하며, 염려의 당부를 했다. 땅에서 살기 위해 너는 날개를 잃게 될 것이고, 대신 두껍고 단단한 다리가 생길 거라고. 키위는 마지막으로 하늘 위를 한번 바라보고는 앞으로는 땅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신은 실망한 다른 새들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경고했다. 뚜이에게 비겁함을 상징하는 하얀 방울을 네 목에 걸겠다고, 푸케코에게 앞으로 늪지에서 살게 될 거라고, 뻐꾸기에게는 다시는 둥지를 만들지 못할 거라고, 다른 새들의 둥지에 세 들어 살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용감한 키위에게 너는 비록 날지 못하게 되지만, 온 땅에서 가장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설화처럼 뉴질랜드 사람들은 자신들을 키위(Kiwi)라고 부르며, 작고 날지 못하는 새인 키위를 무척 좋아한다. 키위 문화(Kiwi culture), 키위 생활방식(Kiwi lifestyle) 등 키위라는 단어를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말로 사용하고, 국가의 마스코트로 그림, 벽화, 간판, 안내문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갈색 깃털에 뾰족한 긴 부리, 통통한 몸통을 가진 키위를 보며 색감이 아름답거나 특출 나지 않아도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구나 놀라게 된다. 


자연스럽게 새들과 함께 하는 풍경. 공원에서 거위, 오리, 푸케코 등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다


밭을 갈 때 유용한 소나 이동할 때 탈 수 있는 말과 같이 쓸모가 많은 동물도 아니고, 사람을 따르는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동물도 아닌 딱히 우리의 일상과 접촉점이 없는 새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새는 소리는 쉽게 들리지만 그 형체를 찾기란 어렵다. ‘분명 근처에 있는데…’ 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려도 나뭇가지들 사이에 가려져 쉽사리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안다. 새는 내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늘 길을 잘 알고 떠나갔다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새는 소망 같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가장 맞닿은 존재 같다. 9살이 되던 해 어머니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나는 ‘개나리, 뿌리, 바다’와 같은 무용한 단어들을 곱씹고 상상하며 시를 적었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건 돈이 들지 않았고, 한 가지 단어에 집중하다 보면 현실의 슬픔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신문에 실린 내 시를 보고 친하지 않은 아이들이 다가와 이거 네가 쓴 게 맞냐며, 다른 사람이 써준 게 아니냐며 성난 얼굴로 쏘아붙인 날도 있었다. 혼자 백일장을 다니고 늘 혼자 집에 있는 아이에게 어른이 써준 글 같다는 말을 하니 억울하다기보다 서글펐다. 재능이 없어도 좋으니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으니까. 수첩과 펜을 하나 들고 근처 공원이나 산에 올라가 눈을 감고 느껴지는 것들을 적는 게 하나의 탈출구였다. 내가 침묵할 때마다 새소리는 크게 들렸고,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줬다. 그리고 그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위로를 받아본 사람, 그만큼 아파본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 마지막으로 중학교 때 썼던 ‘새’라는 시를 덧붙이며 글을 마치고 싶다. 작은 글귀 하나가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그리울 땐 눈물로 먹을 갈아 새를 그렸다

어머니께 보낼 하얀 새를

풀꽃을 닮은 어머니

한 마음 오직 한 생각으로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새를 날렸다


어머니가 걸어가신 가파른 길 위로

새가 지나간다

새보다 더 하얀 사랑이 묻어난다


새는 날아오르며 다독인다

“힘겨워도 견디고 또 견디면

슬픔도 아름다운 노래가 된단다.”

새는 어머니를 닮은 하늘 위에서

마음을 물들이며 흩어진다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올 때마다

내 맘 속에 새가 돌아온다

하얀 풀꽃 내음을 담고서


우연히 만난 하얀 비둘기
천적이 없어 유유히 걸어 다니는 새들
호숫가에서 만난 철새,  큰 캐나다기러기(Canada goose)
겁이 많은 새는 금방 날아가 버리고 덩그러니 남은 나무만 사진으로 남기 일쑤다. 뚜이 새가 있던 자리.




<다정한 시선>은 매주 월요일 아침 배달되는 뉴스레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정한 시선>은 6년차 뉴질랜드 시골 살이 중인 작가가 겪은 시선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열심히 일만 할 줄 알았지 삶을 잘 살아낼 줄은 몰랐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려 애쓰며 기록하는 에세이 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지난화 보기가 가능합니다.

https://newzealand.stibee.com/


이전 10화 엄마라는 세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