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나무 사진을 찍다가 알게 된 것
씨앗이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인내다. 땅 속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주어진 양분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해 자라나야 한다. 희박한 확률로 살아남아 마침내 줄기를 뻗은 나무들을 볼 때면 수동적인 일생이라는 안쓰러움이 있었다. 자신이 심길 땅을 선택할 수 있는 나무는 없으니까. 행여나 뿌리가 들리면 그건 죽음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자신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나무의 한계가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산책길에 만난 100년 된 참나무를 보고 마음이 달라졌다. 참나무 앞에는 ‘1923년 9살 소년 테드가 심은 도토리에서 시작된 나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시작은 보잘것없는 도토리 하나였고 어린 소년의 손을 빌려 뿌리를 내릴 수 있었지만, 참나무가 만든 거대한 그늘을 보며 이 나무가 얼마나 멋지게 자신의 인생을 일구었는가 놀라게 됐다. 오히려 위치를 탓하는 건 자유로운 두 발을 가진 나였다.
“시골이라 일자리가 없어. 일자리라곤 마트 하나인데, 이 동네에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죄다 거기에 지원해서 늘 풀이야.” 코로나 이후에는 국경이 막혀서 인력 부족이 문제가 됐지만, 그 이전만 해도 일자리 부족이 이슈였다. 처음엔 뉴질랜드 워크 비자가 없어서 포기했다가 비자가 해결된 후에는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릴 수 없어서 망설이다가 완전히 무기력감에 빠진 후에는 못하는 이유만 찾다가 그냥 못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일을 하는 것이 돈을 버는 목적 이외에 동료들을 만나며 영향을 주고받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만들어 자존감을 높여주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삶의 활기를 준다는 것을 일을 할 때는 정작 몰랐다. 일을 통한 성과가 곧 '나'인 마냥 내가 하는 일이 중요했지, 일하는 나를 돌보지는 못했었다. 모든 일자리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고 나자, 하고 싶은 일보다 되고 싶은 내 모습이 그려졌다. 어떤 일이건 주어진 일을 감사해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낸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 내가 원하는 삶은 딱 나무를 닮은 모습이었다.
숲연구소 남효창 박사님은 “모든 나무는 꽃이 핀다. 열매가 더 유명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꽃이 피지 않는 나무는 없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보건 보지 않건, 자신의 속도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멋지게 느껴졌다. 또한 내 인생도 언젠가 꽃이 피리라, 어떤 모양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분명 꽃이 자라고 있으리라 위안을 얻었다. 꽃 그 자체로 주목받는 장미나 해바라기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나무는 화단에서 관리받지 않아도 누가 관심을 주지 않아도 꾸준히 성장하는 본성이 있다. 자신의 자리를 탓하지 않고 자신을 변화시켜서 환경에 맞서는 본성. 땅이 척박하면 그에 맞게 뿌리를 낼 줄 알고, 빛이 부족하면 수직으로 가지를 뻗어서 빛을 확보하며, 햇살이 너무 강하면 잎사귀를 코팅해서 빛이 반사되도록 한다.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줄 알았던 나무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걸 계절이 변해가는 걸 보며 더욱 깨달았다. 겨울이 되어 잎사귀가 모두 떨어지고 깡마른 가지만 남았을 때 나무의 운동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해를 찾아 힘껏 손을 뻗었는지 가지의 방향과 모양이 말하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가지를 낼 때에도 비율을 지킨다는 것이다. 수직으로 가지를 뻗을 경우 1:100의 비율로, 만약 높이가 4m라면 가지 기둥의 둘레는 4cm로 새 가지를 낸다. 너무 가지가 길면 부러지기 때문에 비율을 지켜서 가지를 만들며 무거운 가지들은 자연스레 가지치기가 된다.
한계를 인정한다는 건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걸 나무를 통해 배웠다. 내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알고 가지를 쳐내는 것은 삶에 필수적이었다. 하루는 설거지를 하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너무 피곤하구나, 내가 너무 지쳐있구나 느끼며 ‘이것만은!’하고 붙잡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 내려놨다. 좋아하던 글쓰기도 잠시 쉬고, 좀 더 쉬운 메뉴로 저녁을 만들고, 아기가 덜 먹고 덜 자도 ‘그러고 싶은가 보다’ 하고 더 애쓰려고 하지 않았다. 곧 부러질 것 같은 가지 아래에 있고 싶은 사람은 없듯이, 중요한 건 내가 잘 서 있는 것이었다. 기운이 없을 때일수록 도토리를 떠올린다. 도토리만 한 작은 꿈이라도 간직하자고, 도토리처럼 귀여운 순간 두 어개는 꼭 쥐고 있자고, 도토리를 심듯 아주 작은 틈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틈새의 시간을 내보자고. 그 도토리만 한 게 어떻게 자라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다정한 시선>은 매주 월요일 아침 배달되는 뉴스레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정한 시선>은 6년차 뉴질랜드 시골 살이 중인 작가가 겪은 시선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열심히 일만 할 줄 알았지 삶을 잘 살아낼 줄은 몰랐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려 애쓰며 기록하는 에세이 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지난화 보기가 가능합니다.
https://newzealand.stib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