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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영 Apr 16. 2024

버스를 타며 느낀 한국과 뉴질랜드의 차이점

여정 자체가 여행이 되는 오클랜드 버스 종점 여행

일러스트 guka


"엄마, 버스 타요!"라고 노래를 부르는 2살 로이 덕분에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버스를 탔다. 뉴질랜드의 인구(526만 명)는 한국 인구(5,175만 명)의 약 10분의 1 정도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한국만큼 발달하기는 어렵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도시인 오클랜드에 살아도 배차 간격은 30분이 기본, 승객이 적은 시간대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동네 구석구석까지 버스가 운행하지는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딘가에 목적지를 두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아무렴 상관없었다. 지갑과 기저귀, 물병만 챙긴 채 혹 필요한 게 생기면 잠시 내려서 사면된다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버스에 올랐다.


뉴질랜드의 버스는 조금 더 아날로그적인 면이 있는데, 먼저 버스 정류장의 모습부터 시골스럽다. 전광판에 다음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표시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간표가 프린트되어 붙어져 있다. 또 기다리는 승객들을 위해 한편에 작은 도서관이 마련돼 있기도 해 정겹다. 버스가 모든 정거장에 서지 않기 때문에 타려고 하는 버스가 보이면 승객은 손을 흔들어 타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그렇게 멀리서 다가오는 버스를 바라보며 타기 전부터 운전기사와 눈 맞춤을 하게 된다. 그리고 버스에 오르며 자연스럽게 인사와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게 된다. 한국에서 운전기사의 얼굴을 바라봤던 적이 있었던가... 자주 타던 버스 번호만 기억날 뿐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서글펐다.


버스에서는 타는 시간에 따라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하교 시간대인 3시 30분쯤 버스를 타자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버클랜즈 비치(Bucklands Beach)에서 판무어(Panmure) 지하철역까지 운행하는 712번 버스는 뉴질랜드 명문 학교로 유명한 맥린즈 고등학교(Macleans College)를 지나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객이 학생들이었다. 뉴질랜드의 학생들은 한국처럼 교복을 입어서 반가운데,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5살 때부터 교복을 입는다. 또 자외선이 강한 뉴질랜드의 특성상 창이 넓은 모자까지 교복에 포함돼 있어 귀엽다. 오전 10시쯤 버스를 타자 노인분들이 많이 보였다. 달려오셨는지 숨을 고르며 버스를 세우신 할머니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제스처를 보였고, 뒤이어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할아버지가 올라탔다. 백발의 부부가 서로를 챙기며 버스를 타는 모습이 따뜻했는데, 더 훈훈했던 건 운전기사가 그분들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린 후 출발하는 것이었다.


하교 시간,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가득한 버스 안(좌) /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버스 정류장(우)
뒷 문이 있는 버스도 있지만 앞문만 있는 버스가 많다. 승객들은 내리기 전 운전기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걸 잊지 않고, 뒷문으로 내리더라도 소리 내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번뿐만 아니라 운전기사는 항상 승객들이 자리에 앉았는지 확인한 후 출발했고, 정거장으로 달려오는 손님이 있으면 꼭 기다려줬다. 배차 간격이 길어 한번 놓치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배려하는 것도 있지만, 분명 한국의 바쁜 대중교통 풍경과는 다른 모습들이 있었다. 바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모두 운전기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내릴 때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 것이었다. 한 번은 애니메이션 ‘꼬마버스 타요’를 보다가 막 운행을 시작한 버스 피넛이 친절하게 손님들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네다가 승객들이 불평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렇게 일일이 인사를 나누면 출발이 늦어진다고 항의하는 것이었다. 버스 운행을 서두르지 않기 위해서는 운전기사의 휴식 시간, 업무량 등을 조절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승객들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버스 안의 분위기만으로 내가 이국에 있구나 실감하게 된다. 뉴질랜드는 여유롭지만 불편하고, 한국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각박하게 느껴진다.


익숙한 동네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을 때 우리는 가볍게 버스에 올라탄다. 창 밖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치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처럼 다채롭고 흥미롭다. 버스가 지나가는 지역에 따라 민속박물관이 되기도 건축박물관이 되기도 팝아트박물관이 되기도 한다. 보타니(Botany)에서 70번 버스를 타고 오클랜드 중심가인 브리토마트(Britomart)까지 여행하다 보면 1900년에 지어져 오클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 중 하나인 스트랜드 아케이드(The Strand Arcade) 건물과 1929년 인도 궁전에 영감을 받아 지어진 공연장으로 여전히 그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시빅 건물(The civic)을 만날 수 있다. 그 밖에도 1895년에 지어져 뉴질랜드 헤리티지로 지정된 해군 & 가족호텔(The Naval & Family Hotel), 1904년에 지어진 오래된 빌딩(Pitt street Building) 안에 위치한 매력적인 헌책방 초록 돌고래 책방(The Green Dolphin Bookshop)을 구경할 수도 있다. 옛 빌딩들은 건물 외관에 지어진 연도가 적혀있어 얼마나 오래된 곳인지 파악하기가 쉬웠다.


오클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 중 하나인 스트랜드 아케이드(The Strand Arcade)
1929년 인도 궁전에 영감을 받아 지어진 공연장 시빅(The civic)
1895년에 지어져 뉴질랜드 헤리티지로 지정된 해군 & 가족호텔(The Naval & Family Hotel)
1904년에 지어진 Pitt street Building. 옛 빌딩들은 건물 상단에 건축 연도를 명시해두고 있다.


또 무심코 읽은 거리의 간판들에서 주인장의 센스를 엿보기도 한다. 치료(약), 해결책이라는 뜻의 단어를 커피 앞에 붙인 '레머디 커피'(Remedy Coffee), 버스정거장 간판(Bus Stop)처럼 눈길을 끄는 간판 가게 '사인 스탑'(Sign Stop), 독특한 디자인 제품들과 귀여운 물건들이 많아서 절로 감탄이 나오는 소품샵 '셧 더 프런트 도어'('Shut the front door'는 ‘와! 말도 안 돼!’하고 놀람을 뜻하는 숙어이기도 하다) 가게와 잘 어울리는 간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또 앞만 보고 지나갈 때는 놓치고 말았던 만든 이의 세심한 배려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요리사가 빵을 들고 있는 그림을 단 카페 간판을 보았는데, 독특할 뿐 아니라 영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도 어떤 가게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줘서 좋았다. 가만히 보니 의자가 귀여운 커피잔 모양이어서 왜 그동안 몰라봤을까 싶을 정도였다. 공유오피스 입구 위에는 ‘연합은 힘이다.(Union is strength.)’라고 적은 문구가 새겨져 있어 한 번 더 곱씹어 보게 된다. 건물의 외관을 이토록 유심히, 간판과 똑같은 위치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건 버스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없는 여행자라면 시내버스를 타는 것이 그 사회를 엿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 것이다. 정말이지 버스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알게 되는 사실들이 많다. 로이가 계속 버스 타는 것을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는 사실을, 우리 가까이에 보물 같은 곳들이 숨어있다는 비밀을, 무작정 떠났다가 다시 무던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힘을 작은 버스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치료(약), 해결책이라는 뜻의 단어를 커피 앞에 붙인 '레머디 커피'(Remedy Coffee), 이름을 정말 잘 지은 것 같다.
의자가 커피잔 모양인 귀여운 카페. 버스 여행은 소소한 행복들이 이렇게 가까운 옆 자리에 있다는 걸 알려준다.
간판 대신 ‘연합은 힘이다.(Union is strength.)’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오피스 건물,
호기심을 끄는 가게나 골목이 보이면 정거장에 내려서 더 면밀히 관찰하기도 한다. 버스 여행의 묘미는 무작정 올라타서 무심코 내렸다가 다시 무던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추신) 혹 뉴질랜드 버스 요금이 궁금하다면!

한국과 같은 후불 체크카드가 없어 역에서 교통카드를 구입해 충전해서 사용해야 한다. 도시마다 교통카드의 종류가 다르며 오클랜드의 경우 홉(AT HOP Card) 카드를 사용한다. 요금은 교통카드를 사용할 경우 어른은 2.60불(한국 돈 약 2,100원), 현금은 4불이며 12살까지는 교통카드가 있으면 요금이 무료다. 13살부터 19살까지는 학생 요금으로 교통카드를 사용할 경우 0.70불(약 570원), 현금은 2불이며 16살부터 24살은 청년(Youth) 요금제로 교통카드를 사용할 경우 1.25불(약 천 원), 현금은 4불이다. 한국처럼 환승이 가능해서 다른 버스나 지하철로 갈아탈 때 요금 할인이 된다.




<다정한 시선>은 매주 월요일 아침 배달되는 뉴스레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정한 시선>은 6년 차 뉴질랜드 시골 살이 중인 작가가 겪은 시선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열심히 일만 할 줄 알았지 삶을 잘 살아낼 줄은 몰랐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려 애쓰며 기록하는 에세이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지난 화 보기가 가능합니다.

https://newzealand.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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