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목장 안에는 자연 동굴도 있다!
목장에서는 염소 똥도 맛있게 보인다. 로이가 한 살 때 ‘내가 분명 준 적이 없는데 아기 입에 왜 블루베리가 있지’ 하고 놀랐던 적이 있다. 로이 발 밑을 보니 아주 막 볼일을 보고 간듯한 매끄럽고 촉촉해 보이는 염소 똥이 있었다. 로이는 입에 넣고 나서 맛이 이상했는지 혀로 내뱉고 있었고, 나는 놀라서 아기의 입을 닦아주고 병원에 데려가 구충제를 먹였었다. 양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 줄리에게 아기가 이상한 걸 먹었다고 상담할 때마다 그 친구는 절반은 체념한 듯 절반은 희망에 찬 목소리로 “목장 아이들은 진작에 먹었지.”라고 대답하곤 했다. 네 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줄리는 아이들이 어릴 적 땅에 떨어진 걸 주워 먹는 건 기본이고 흙과 빗물까지 야무지게 먹을 때마다 면역력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극복했다고 했다. 자연 지형에 울타리를 쳐서 만든 목장인지라 목장 안에는 언덕과 암벽, 시냇가, 심지어 동굴까지 있었고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뒹굴다가 거지꼴로 돌아오곤 했다. 목장용 세탁기가 따로 있을 정도로 옷은 흙먼지가 푹푹 날렸지만, 아이들은 제대로 놀 줄 알았다. 진흙길을 만나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타듯이 미끄러지며 신나게 놀았으니까.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목장 안에 있는 동굴을 탐험한 적이 있다. 과학책에서만 읽었던 동굴 천장에 고드름처럼 달린 종유석을 그때 처음 봤다. 석회동굴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의해 침전되면서 서서히 만들어지는 종유석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동굴의 역사를 짐작하게 했고, 새삼 ‘내가 얼마나 오래된 땅 위에 서 있는 것인가’ 자연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동굴 안에는 물이 흘렀고 아이들은 물속에 장어가 산다고 알려주었다. 어쩐지 아이들이 동굴 입구에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로 들어간 이유가 있었다. 동굴 바닥은 얕은 시내와 진흙으로 되어 있어 신발이 쉽게 벗겨졌다. 동굴 안은 어둠 그 자체였기 때문에 모두가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썼고, 두 명의 어른이 동행했는데 앞에서는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파머인 존이 길을 인도했고 뒤에서는 이웃이자 파머인 로저가 아이들을 뒤따르며 보호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키우는 강아지인 메이도 동행했는데, 어디를 가든 함께 한다는 것이 보기 좋았다. 바위를 밟고 올라가 동굴 천장과 더 가까워지는 곳으로 이동해야 할 때, 길이 막혀 어쩔 줄 몰라하는 메이를 안고 같이 올라가는 모습은 참 따뜻했다. 한국의 반딧불처럼 어두운 곳에서 빛을 내는 벌레인 글로우웜(glowworm)도 봤다. 글로우웜은 자신이 빛을 발산한다기보다 작은 날벌레들을 잡기 위해 끈적이고 투명한 실타래를 만들고, 그 실타래가 산소와 만나 푸른빛을 내며 반짝이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눈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란 없다. 7백만 불가사의가 있다.(There are no seven wonders of the world in the eyes of a child. There are seven million.)’는 월트 스트레이티프(Walt Streightiff)의 명언이 생각났다. 아이들을 따라서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을 곳을 기어서 들어가 보고,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을 마주하며 세상은 신비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라면 아이에게 ‘가지 말라’고 말했을 법한 어둡고 위험해 보이는 동굴을 목장의 어른들은 같이 가주는 것으로 응답한 것도 나를 돌아보게 했다. 아이들의 타고난 호기심과 용기를 가로막지 않는 대화, 제한을 두기 이전에 옆에서 동반하며 같이 해보는 경험, 또 그 과정에서 장애물을 만나면 손을 잡아주며 서로 돕고 의지하는 법을 배워가는 탐험은 설사 그 끝에 아무것도 없었다 해도 많은 것을 남겼다. 동굴 밖으로 나오며 더욱 돈독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탐험이 끝난 후에는 달콤한 보상도 기다리고 있었다. 장작불을 피우고 대나무에 마시멜로를 꼽아 부드럽게 녹여가며 한 입 한 입 맛봤다. 목장에 특별한 조명이 없어선지 장작불을 캠프파이어처럼 크게 피웠고 불 앞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타닥타닥 나무가 타는 소리가 잔잔한 음악처럼 들려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이웃 목장 파머들과 아이들까지 모두 모여서 소시지를 굽고 마시멜로를 녹여 먹으며 자칫 외로울 수 있는 목장 생활을 행복하게 만들어갔다. 도시에서 떨어져 있어 불편함이 있고 마을에 둘러싸여 있지 않아서 무서울 때도 있지만, 주변 목장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그 간격을 좁혔다.
또 필요한 것이 생기면 자급자족으로 얻기도 했다. 계란이 다 떨어지면 닭들을 키우고 있는 근처 목장에 전화해 프리 레인지(닭들을 풀어놓아서 기른) 계란을 사 오고, 집 마당에 야채와 허브 등을 키워서 필요할 때마다 뜯어서 먹는다. 언제 심겼는지 모르는 오래된 과일나무들이 있어서 철마다 레몬, 오렌지, 귤, 사과, 피조아 등을 맛볼 수 있다. 나무에 열매가 너무 많이 열린다며 먹을 만큼만 남기고 주변에 나눠주기 때문에 나 역시 목장 친구를 둔 덕을 톡톡히 누린다. 특히 호두와 레몬, 피조아를 많이 얻어먹었는데, 고맙다고 인사할 때마다 아이들이 열매를 따서 담았다며 자신은 전하기만 하는 거라고 했다. 목장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나누는 법을 배우겠구나 싶었다. 과일나무는 한 철에 열리고 떨어지기 때문에 그때그때 먹지 않으면 썩고 만다. 괜히 욕심을 부리다 썩은 열매들 때문에 벌레가 꼬이는 상황을 겪기보다, 부지런히 나누고 서로 교환하는 재미를 알아간다.
목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너무도 많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을 알고, 어떤 향기가 나는지 어디서 잘 자라는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초여름(뉴질랜드 11월경)이 되면 루핀(Lupins)과 여우의 장갑(Foxgloves)이라고 불리는 디기탈리스(Digitalis) 꽃이 언덕 곳곳에 피어난다.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라면 척박한 땅이라도 잘 자라기 때문에 자연이 만든 정원을 감상하며 벌들이 열심히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심지 않아도 피어나는 꽃은 물론, 키우지 않는 동물들도 종종 만난다. 야생 칠면조와 고슴도치, 공작새가 그것인데, 동물원이 아닌 들판에서 빛나는 깃털을 가진 공작새를 만나다니 동화 같았다. 소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아니타와 함께 목장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강아지가 짖으며 달려가서 쫓아가보니 화려하게 깃털을 펼친 수컷 공작새가 도망가고 있었다. 아니타는 종종 공작새 소리를 들었고, 길을 걷다 공작새 깃털을 주운 적이 있어서 공작새가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강아지에게 공작새를 놔두고 돌아오라고 소리치고는, 우리는 가만히 멀어져 가는 공작새를 넋 놓고 바라봤다.
아니타는 땅에 떨어져 있는 공작새 깃털을 볼 때마다 하나씩 주워와서 거실 화병에 모았다. 햇살이 잘 비치는 곳에 화병을 두고, 아침 햇살이 들어올 때 깃털이 반사되어 오묘한 빛깔을 뿜어내는 것을 지켜보며 하루를 열었다. 매일 꼭 해야 하는 목장 일들이 계획되어 있지만, 매번 놀라게 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하며. “저기 노을 좀 봐.” 이 멋진 풍경을 함께 감탄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목장에서 인생을 살 찌우는 법을 배워간다.
<다정한 시선>은 매주 월요일 아침 배달되는 뉴스레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정한 시선>은 6년 차 뉴질랜드 시골 살이 중인 작가가 겪은 시선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열심히 일만 할 줄 알았지 삶을 잘 살아낼 줄은 몰랐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려 애쓰며 기록하는 에세이입니다.
https://newzealand.stib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