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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영 Feb 06. 2024

불편하게 사는 것의 즐거움

물건을 아끼고 소비는 줄이고 자연과 더 많이 어울려 사는 삶

일러스트 guka


8살 소녀 매시의 생일에 초대를 받았다. 찾아온 친구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부모인 존과 줄리는 여러 가지 게임들을 준비했다. 신기했던 건 새로운 장난감을 사는 것이 아니라, 숟가락, 양동이, 사료 포대 등 원래 있던 물건들을 활용해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첫 번째 게임은 피조아 나르기. 피조아(Feijoa)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과일로 크기는 자두처럼 작은데 모양은 길쭉한 타원형이다. 다 익은 피조아는 땅으로 떨어지는데, 매시의 집에는 2층 높이의 커다란 피조아 나무가 있어서 발에 치이는 게 피조아였다. 아이들은 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피조아를 주워 숟가락 위에 올린 뒤 이어달리기 바통처럼 떨어트리지 않고 사수하며 달렸다. 피조아 나무 반대쪽에는 빈 양동이 두 개가 준비돼 있었고, 어떤 팀이 가장 많은 피조아를 운반해 양동이에 담는지 겨루는 게임이었다. 앞의 주자가 돌아와야만 다음 주자가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숟가락에서 피조아가 떨어지지 않기를 응원하며 초조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숟가락과 양동이 만으로 이렇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게임을 만들 수도 있구나 싶어 놀라웠다. 


두 번째 게임은 장애물 달리기. 오래된 타이어와 나무 팔레트, 판자들로 길을 만들고, 누가 가장 빨리 완주하는지 초시계로 기록을 쟀다. 완주한 아이에게 박수를 치고 또 나무 팔레트를 넘어가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응원하며, 개인 경기였지만 모두 한 마음이 됐다. 


세 번째 게임은 사륜 오토바이로 끌어주는 포대 썰매 타기. 존은 아이들에게 헬멧을 씌워 준 뒤, 사료 포대에 연결된 끈을 잘 잡도록 안내했다. 아이들이 잘 타고 있는지 뒤돌아 보며 천천히 운전하고, 또 커브를 돌아 아이들이 옆으로 넘어지며 웃을 수 있게 했다. 나도 줄리와 함께 포대 썰매를 탔는데, 우리에게는 빨리 운전을 해서 소리를 지르며 탔다. 


직접 구운 케이크와 머핀, 쿠키들로 채워진 생일 파티. 식기들은 다회용기를 사용했다.
숟가락으로 피조아 나르기 게임을 하는 모습
사륜 오토바이로 끌어주는 포대 썰매 타기를 하는 모습


돈을 쓰기보다 시간과 정성을 쏟아 준비한 생일 파티여서 더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무언가를 새로 사지 않아도 재밌게 놀 수 있구나, 소비를 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구나 배우는 시간이었다. 존과 줄리가 절대 시간이 많아서 이렇게 준비했던 것이 아니다. 소와 양을 기르느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농장에서 일하기만도 바쁜데, 틈만 나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을 생각해 내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 애쓴다. 이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 이어서다. 모든 여가 시간은 가족과 함께 하거나 아이가 탈 목마, 나무 그네 등을 만들며 가족을 위한 일을 하는 데 사용한다. 이들의 삶을 지켜보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환경을 보호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일회용 봉지를 사용하지 않고, 식빵 봉지를 재활용해 다른 음식들을 담을 때 쓴다. 식빵이 주식이다 보니, 식빵을 다 먹고 나서 식빵 봉지가 많이 남는데 그냥 버리는 집이 없다. 이날 피조아 나르기 게임을 마친 후 식빵 봉지에 피조아를 담아 찾아온 손님들에게 나눠줬다. 종이 역시 새 종이를 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시리얼이 담겨 있던 종이 박스, 과자곽 등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교회에서 발표할 스크립트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한다. 포장지의 뒷면은 깨끗하고 심지어 빳빳하기까지 해 얼마나 질이 좋은 종이인지 모른다며 그냥 버리긴 아깝다고 말한다. 또 새 장난감을 사기보다 우유나 각종 소스들을 구입하며 생긴 플라스틱 용기들을 모아 물에서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Bath toy)을 만들어 준다. 물건을 아끼고 소비는 줄이고 자연과 더 많이 어울려 사는 삶, 이것이 이들의 삶의 방식이다. 주입식으로 교육받는 환경 보호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밖에서 놀고 자연에서 배우고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생활 방식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환경을 보호한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주변에 있는 것을 보고 듣고 닮아가는 것 같다. 도시는 편리하고 빠르지만 소비를 해야만 누릴 수 있고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시골은 그에 반해 불편하고 느리지만 자연과 한결 가깝고 자연에서 생활하며 자연을 더 사랑하게 되기 쉽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은 후자 쪽이다. 쉽게 소비하지도 소비되지도 않는 삶,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삶. 나와 아이의 삶 역시 빠르게 구매할 수 있는 물건들로 채워지기보다는 함께 보낸 시간과 경험들로 지어지기를 바라기에,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닌 내가 일궈내고 싶은 삶의 방식이 되었다. 


플라스틱 용기와 뚜껑을 재활용해 만든 장난감(왼) / 시리얼 상자를 재활용해 뒷면에 그림을 그린 모습(우)


가장 먼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한 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비닐 랩 대신 천에 식용가능한 밀랍을 발라 재사용이 가능한 비즈왁스 랩과 실리콘 커버를 사용했다. 뉴질랜드는 2019년부터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모든 마트에서 비닐봉지를 볼 수 없었고 장을 볼 때 장바구니와 과일을 담을 그물망을 가져가는 것은 습관이 되었다. 개인 물통을 늘 들고 다녀서 일회용 생수를 사 먹지 않았고, 그 덕에 물을 사느라 지출했던 비용도 절약했다. 뉴질랜드는 공원이나 놀이터 어디서나 쉽게 물을 담을 수 있는 식수대가 있고, 식수대가 있어 물을 리필할 수 있는 가게나 카페를 정리해 둔 웹사이트도 있어 편리했다.(https://refillnz.org.nz/)


또 외출을 하거나 주변에 음식을 나눌 때 일회용품이 아닌 다회용기를 사용했다. 한 번은 아이가 팔을 다쳐서 신경 쓰느라 바쁠 로라 가족을 위해 저녁을 요리하고 다회용 용기에 담아서 전해준 적이 있다. 로라는 용기 안에 초콜릿과 함께 ‘저녁 정말 고마워’라고 한국어로 적은 편지를 넣어 돌려주었다. 구글 번역기로 찾아보며 한국어를 따라 썼을 로라를 생각하니 더 감동이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면 나도 편하고 받는 이도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겠지만, 그냥 버려지는 용기처럼 사라지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 한 번 더 주고받는 대화 같은. 


혹자는 뉴질랜드의 환경이 자연에 둘러싸여 있으니 자연친화적인 삶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돌아보면 한국에서도 분명 그런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추구했던 것이 ‘성취’와 ‘성장’이었기에 소비 사회와 더 맞았던 것뿐. ‘가족’과 ‘자족하는 삶’으로 추구하는 방향을 바꾸니, 비교를 하며 소비를 할 필요도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몸을 혹사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실천으로 옮기기 이전에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삶이 어떤 것인지,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은 어떤 곳인지. 그렇게 사는 방식을 정하고 나면, 모든 행동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은 당연한 법. 줄리는 “우리는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연을 여전히 좋아한다.(We live outside more. We still like nature.)”라고 말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작게만 느껴진다. 그보다 자연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나무 위에 올라가 놀고 있는 아이들
강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
호수에서 보트를 타며 노는 아이들. 이렇게 자연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크다.


글/사진 장혜영, 그림 guka(https://www.instagram.com/madeingu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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