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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 베드로 Oct 31. 2020

노인의 푸념

나이가 들어가니 별 것들이 다 서러워진다. 우선 몸 여기저기가 아파오는 것이 서럽고, 사회로 부터 격리 내지는 소외되는 경우가 많으니 그 또한 그렇다. 여기다 요즈음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로부터도 홀대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니, 남의 일 같잖게 적잖이 당황스럽다. 돌아가는 세상 구조가 옛날과는 달리 복잡해지고, 전문화가 되어가니 노인들이 그 장단에 발맞추기가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몸도 마음도 순발력이 떨어짐은 물론이요 청력은 저하되고, 어휘력은 아둔해지니 영락없는 반병신이 따로 없다. 가끔 손자들의 핀잔 아닌 놀림을 받을 땐, 참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랴? 세월에 장사 없다 하지 않았던가. 아이들 제짝들 찾아 하나하나 떠나버리고, 집안에는 늘어난 약봉지만 어지럽게 늘려있고, 빛바랜 가구들만이 세월의 때와 함께 윤기를 잃은 주인과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오도카니 흐르는 시공에 몸 맡기고, 같이 늙어가는 짝꿍과 더불어 지난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깨작거려 보며, 하릴없이 분초만 죽이고 있다. 이렇게 나는 쪼그라들고 퇴보를 하고 있는데, 시대는 팽창과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실손보험 있으세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상대방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러고 있는 나에게 '실장'이라는 그 여자는 "실손보험 없으세요?" 하고 다시 었다. 머뭇거리는 나를 대신하여 옆에 있던 아내가 대답한다. "없는데요? 근데 그건 왜 물으세요?" 하는 물음에는 별 대답도 없이, 시큰둥한 표정을 짓더니, 이번에는 웬 얄궂은 기계 팸플릿을 내밀며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하는 것은 귀에 하나도 와닿지 않고, 내가 왜 이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슬며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어깨 통증이 엊저녁엔 잠을 설칠 정도로 심하여 일찌감치 병원을 찾았다.

미간이 좁고 얼굴에 걸맞지 않은 안경을 쓴 새파랗게 젊은 의사는, 영 믿음이 가지 않는 몇 마디의 상투적인 질문을 하더니, 나의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소위'실장'이라는 역시 푸릇푸릇한 여자애(?)에게 배구볼 토스하듯이 나를 넘겼다. 느닷없이 상대가 바뀐 나는 죄인 심문당하듯이 또 하나의 엉뚱한 질문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의사에 대한 불신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나, 요즈음처럼 노인들이 병원 현장에서 느끼는 불신감은 더 심한 편이다.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우리나라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노인 상대의 병원이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 범람하고 있고, 병원 간의 경쟁 또한 만만찮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처럼 자격 내지는 성능미달의 의사들을 보면 한숨에 앞서, 화부터 치밀어 오른다. 환자를 보면 의료수가부터 어림하는 이러한 의사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오늘 내가 온 병원처럼 의사와의 만남은 대충 그리고 빨리. 그러나 실장과의 상담은 자세히 그리고 길게 가진다. 환자와 의사와의 상담이 중요한 병원에서 금전과 직결된 실장과의 만남을 더 강조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짐작이 가는 바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세상이 배금사상에 젖어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나 혼자만 씨불이는 의미 없는 넋두리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씁한 마음만은 숨길수가 없다. 도리 있겠는가? 늙고 병듦이 죄라면  죄일 수밖에.


노인들의 고달픔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다 알다시피 바로 빈곤의 문제가 그것이다. 2021년 기준으로 노인들의 빈곤율은 43.4%로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그 선두라 한다. 노인 10명 중 5명이 가난의 늪에서 허덕거리고 있는 셈이다. 새벽의 찬바람과 궂은날, 비바람에도 아랑곳없이 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이들의 행보는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현실의 차가운 냉기를 걷어내기 위해, 깨금발로 발버둥을 치는  모습은, 보기에도 너무 안쓰럽기 짝이 없다.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옛날과 달리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고,  일부 노인들의 염체 없고 개념 없는 언행들이 문제가 되기도  지만, 이렇게 삶의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이들에게만큼은 사회적인 배려가 있어야 지  않나 싶다.

7,8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을 끌어올리는데 그 누구보다도 견인차 역할을 했던, 현재의 노인들에게 보다  따듯한 시선을 모아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미래 모습이, 바로 현재 이들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저나, 내 어깨가 은근히 걱정이 되면서 이를 어찌해야 하는지, 참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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