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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Jul 11. 2020

졸업 여행을 가지 못 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중학교 졸업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었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사정이 여유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종례 시간에 졸업 여행 신청서를 받은 나는, 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분을 고민하고 나서야 연필 끝에다 아쉬움을 가득 담아 '불참' 란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괜히 두 번, 세 번 접어 교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걸 본 담임 선생님은 '왜 이걸 접어서 내냐'고 꾸중하시면서, 접힌 종이를 펴 나의 동그라미 위치를 확인하시고는 쌓여있는 신청서의 중간 즈음에 나의 신청서를 끼워 넣으셨다.

  





그런데 며칠 후, 평상시처럼 등교해서 내 자리에 가방을 걸고 앉았는데,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에게 물었다.


 "너 졸업 여행 왜 안 가?"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당연히 아무에게도 말한 적도 없었을뿐더러, 내 신청서를 본 사람은 담임 선생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나는 쭈뼛한 목소리로


 "응, 일이 좀 있어서."


라고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물론 이 '일'이 그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눈치도 없이 꼬치꼬치 캐묻는 친구들을 변변찮은 핑계로 적당히 달래고는, 아침 조회가 끝나자마자 자는 척 책상에 엎드렸다. '친구들이 어떻게 알았지', '그냥 엄마한테 떼 좀 써 볼 걸 그랬나', '친구들은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야' 등등,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스쳐갔다. 잊고 있었는데, 다시금 속상함이 밀려오자 내면에서는 계속해서 '지금이라도 간다 해보자'는 진성이와 '가만히 있자'는 진성이가 의미없는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그날따라 맛도 없는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교실에 앉았을 때, 교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김진성 학생은 지금 교무실로 오시길 바랍니다.'라고 하는 익숙한 목소리의 방송이 울려 퍼졌다. 담임 선생님이었다. 보통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부르는 것은 혼내려고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 '너 이제 크~은일 났다'며 놀리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나는 굳은 표정으로 교무실을 향했다.


교무실 문을 열고 익숙한 담임 선생님 자리를 찾았을 때, 선생님께서는 예상과 다르게 상냥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셨다.


 "다른 게 아니고, 너 졸업 여행 못 간다고 했지?"


 "네."


 "혹시 여행 날에 특별한 일이 있는 거야, 아니면···"


이미 이전에도 같은 이유로 현장 학습에 가지 못한 적이 있어서인지, 선생님께서는 나의 불참 이유를 돌려서 물어보셨다.


 "그런 건 딱히 아니고요···."


나의 대답에 이어,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여행을 못 가는 것을 친구들이 알게 된 연유를 들을 수 있었다. 전교생 중에 졸업 여행에 불참을 표시한 학생이 나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의아해하는 선생님들이 여기저기서 그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그렇게 소문이 퍼졌을 테다.


어쨌든 나는 '이번에도 여유가 없어서 못 가게 되었다'는 솔직한 이유를 말씀드렸고, 선생님의 '알겠다'는 대답 후에 나는 교실로 돌아왔다. 분명 선생님 앞에서 술술 말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교무실 밖을 나서자마자 어찌나 서러움이 몰려오던지. 교무실에서 파티션 너머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다른 선생님들의 눈빛은 꽤나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머물렀다.






그런데 이후 어이없는 일이 펼쳐졌다. 우리 반의 얍삽하고 말 많은 한 친구가 '진성이가 졸업 여행 안 가는 거, 그동안 집에서 놀려고 그런 거래'라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내가 이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친구가 4~5명의 친구들에 둘러 쌓여 그 어처구니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을 때 나는 그로부터 불과 3m도 안 떨어져 있는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조금도 밉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듣고서는 화도 나지 않았고, 그저 머릿속이 하얘질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친구가 내 이름을 다시 입에 담을 때만을 기다렸다가


 "뭐라고? 내 얘기한 거 아니야?"


하며 그 대화를 끊어버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어이없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전교에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친한 친구들에게만이라도, 내가 졸업 여행에 갈 수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것은 소문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걔 되게 좋은 아파트에 사는데 졸업 여행 안 가려고 돈 없다고 거짓말했대'라는 더 어이없는 와전을 만들었다. 돈 없어 여행을 못 간다는 게 중학생의 눈에는 그렇게 의심쩍었던 모양이다. 나도 너네처럼 여행 하나에 들뜨고 설레하는 평범한 학생들 중 하나였는데.


친한 친구들에 대한 배신감은 물론, 소문이라는 눈덩이의 무서움을 느낀 나는 더 이상 해명할 힘도 없었고, 그럴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유일하게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고등학교를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얼른 이 학교, 이 지역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느덧 나는 예정대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와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하나같이 낯선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나름대로 친구들을 사귀며 잘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는 어김없이 수학여행에 대한 안내문과 신청서를 받게 되었다. 이번엔 무려 30만 원이었다. 부모님께 여쭤 볼 필요도 없이, 나의 동그라미가 향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신청서 제출 마감일, 역시 나는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께 꺼내기 어려운 말씀을 전해야 했으며, 친구들에게 둘러 댈 적당한 변명 거리를 고민해야 했다.


그 날 오후에 있던 체육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교실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친구들은 다가오는 수학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한껏 펼치기 시작했다. 끼려야 낄 수도 없는 대화에 무표정을 일관하던 나에게 한 친구가


 "넌 왜 안 가?"


하고 묻기에, 나는 전날 밤에 준비한 변명 거리를 머릿속에서 가다듬고는 입 밖으로 꺼내려 하자, 그 친구는


 "30만 원 없는 건 아니지? 깔깔."


하는 철없는 농담으로 말을 이었다. 그 친구의 입꼬리가 내려가기도 전에, 나는 그 친구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 그 친구가 당황한 기색과 함께 벌게진 뺨에 손을 대고, 영문도 모르는 주위 친구들의 침묵이 역력한 그 순간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친구의 농담에는 어떤 악의도 없었다는 것을. 30만 원이라는 돈은 그 친구에겐 부모님께 수학 여행 안내문을 보여드리기만 하면 뚝딱 나오는 가벼운 것이었을 테니까. 






이렇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드러냈던 두 번의 경험은, 나에게 적지 않은 실망과 좌절을 안겨 주었다. 그 전까지는 드러내려고 굳이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지 않을까'하는, 기대 아닌 기대가 무의식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가난함 자체를 가슴 아픈 추억으로써 회상하진 않는다. 다만 나의 가난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을 성인이 된 지금 사회에 투영시켜보자니, 꽤나 큰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릴 때 겪은 눈빛들은 '치부를 털어놓는다는 것이 적어도 득이 되진 않겠구나'라는 정보를 알려주는 듯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가난은 가난대로, 부(富)는 부대로, 성격은 성격대로, 저마다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좋은 거든 안 좋은 거든 일단 털어놔야 나 자신을 밝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것들을 '굳이' 털어놓고 싶어졌다. 연고를 바르려면 붙어있는 밴드부터 떼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이든 간에 피할 수 없는 것을 숨기려고 애쓰는 순간 더욱 서럽고 비참해지더라. 어쩌다 이 글을 읽게 된 독자들도, 이 글을 읽으며 자연스레 떠오른 자신의 치부를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는 어려움을 딛고 자수성가에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극복'이라는 단어를 어렵고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모래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손에 묻은 모래라도 털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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