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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Jul 02. 2020

힘든 게 죄는 아니잖아요

술을 권하다 마는 사회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나는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술 한 잔 걸쳐야지 할 수 있을 만한 진지한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그저 일상생활의 이야기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간, 요즘 기분이나 고민, 과거와 미래 따위와 같은 이야기. 다만 요즘은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하는 것은 술 한 잔 걸쳐도 쉽지가 않다. 이미 사회는 충분히 진지하니까, 사석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라도 조금은 부정적이거나 진지한 얘기를 지양하는 것이 요즘 시대의 불문율 같다. 나도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굳이 그런 주제들을 들춰내 불편함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각자의 내면에 대한 설명 없이는, 서로의 일상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이 겉만 핥는 수준의 대화가 될 수밖에 없다. 직장 얘기, 가족 얘기, 친구 얘기, 한순간의 웃음은 오갈지언정 그 이야기의 본질은 오가지 않는다. 그 사람은 한 번 웃기려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SNS 매체가 빠르게 발달하고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가장 잘 인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종류의 추상적인 것들이 말로써 정의되고 시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감정을 나누는 것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본인 감정을 잘 헤아리지도 못하던 과거에 더 많은 공감과 교감이 오갔을 것이다.



작년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나는 허름한 버너 위의 탕 국물을 수저로 한 입 떠먹고는 수저를 바닥에 조용히 놓으며 말했다. 처음으로 서류 합격을 받아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별로 기쁘지 않다고. 모든 게 별로 재미가 없다고. 조금 뜬금없는 이 말은 호탕한 웃음 뒤에 찾아온 잠깐의 적막을 깼다. 사실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이었음을 알았는데, 나는 그냥 그 얘기가 하고 싶었다. 역시나 전혀 문맥에 맞지 않던 그 대화는 '요새 다 그러더라'는 대답과 함께 금방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 나는 집에서 목을 맸다.



"그렇게 만들어진 유쾌한 술자리는, 당신이 진정 원하던 유쾌함이 맞는가?"

 


나는 독자들의 안녕을 묻고 싶다. 주위 사람들에게 밥 세 끼 잘 챙겨 먹는다 말해놓곤 혼자 꾸역꾸역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회는 이제 술을 권하지 않는가 싶더니만, 어느새부턴가 술도 소용이 없어진 무거운 공기를 내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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