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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Aug 19. 2020

사과 파는 남자



 "사과 사세요! 정말 달달합니다!" 



한 남자가 북적거리는 지하철 역 앞에서 벌건 사과가 잔뜩 담긴 박스를 두세 개 깔아놓고 서있었다. 다소 깔끔한 외모를 보아 직접 재배한 건 아닌 것 같고, 어디서 떼와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큰 목소리에 비해 표정과 손짓은 누가 봐도 어설픈 것이, 장사는 영 소질이 아닌 듯 보였다. 


그로부터 두세 발짝 떨어진 곳에서 한 중년의 신사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휘젓고는 반짝거리는 구두로 남자에게 성큼 다가갔다. 



 "왜 이곳에서 사과를 팔고 계십니까?" 


 "돈 벌려고 파는 것이지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신사는 순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 하고 침을 한 차례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제 말은, 혹시 다른 뜻으로 장사를 하시는 건가 해서요. 아직 많이 못 파신 것 같은데···." 


 "아닙니다. 단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파는 겁니다." 



남자는 꽤 단호한 표정을 내비쳤다. 



 "지나친 오지랖 같아 죄송합니다만, 돈을 많이 벌고 싶으신 거라면 조금 달리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장사를 하시거나, 장소를 옮기시거나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도 예전에 장사를 오랫동안 했었는데···" 



남자가 굳이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이유를 확실히 들은 신사는 당황한 낌새를 떨치고는 그 자리에서 장사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설명 세례에 잠시 멍해졌지만, 신사의 또박또박한 말투와 논리 정연한 설명에 이내 들어나 보자는 듯 귀를 기울였다. 


가만히 서있어도 휩쓸려갈 듯한 바글바글한 길 한편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신사의 강연이 이어졌다. 박스에 가득 깔린 사과들이 뜨거운 햇살에 고새 익어 더 붉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사과 장사보다는 다른 쪽을 추천드리는 것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많은 돈을 벌고 싶으시다니까, 장사를 먼저 해본 사람으로서 조금은 안타까워 드린 말씀들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부자가 되십시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화를 끝마친 후에야 신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거의 한 해는 지났을까, 신사는 볼 일이 생겨 그 지하철 역을 우연히 다시 찾았다. 문득 출구 앞에서 사과를 팔던 그 남자가 꽤나 생생하게 떠올라, 그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함께 그 출구로 발을 옮겼다. 신사는 계단을 모두 올라와 출구 밖으로 나오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사과 사세요! 기가 막힙니다!" 



정확히 같은 곳에서, 하지만 이번에는 비교적 더 장사꾼스러운 표정으로, 그 남자가 똑같이 외치고 있었다. 신사는 다시 남자에게 다가가 조금은 화가 섞인 말투로 따지는 듯 물었다. 



 "아니, 왜 아직도 이곳에서 사과를 팔고 계십니까?" 


 "말씀드렸잖습니까. 돈 벌려고 파는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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