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을 때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을 때"

 올해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의 인상적인 자폐 연기로 이목을 끈 배우 오정세는 여태까지 수상 복이 없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조연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갖가지 종류의 상을 휩쓸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중 오정세의 '백상예술대상'에서의 수상 소감이 계속 귀에 맴돌고, 가슴 한편에 계속 머물러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출연 작품들의) 결과가 다르다는 건 신기한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100편 다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열심히 했거든요.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제가 잘해서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고,
제가 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는 참 많은 열심히 사는 보통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꿋꿋이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것은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지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 일을 계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하 후략)

-2020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조연상 수상 소감, 배우 오정세

이 수상 소감을 들을 때의 나는 이미 세상이 그리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의 결과가 모두 다르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도 그러한 사실쯤은 수백 번도 넘게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상 소감은 나에게 감동을 주기에 앞서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왜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토록 결과에 실망하고 좌절하는가? 그건 아마 불가항력적인 기대(Irresistable Expectancy) 때문일 것이다. 투입량에 따라서 도저히 우리의 의식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수준의 기대가 수반하곤 한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말라'는 친구의 조언을 따르는 데에는 애초에 투입되는 자본이나 정서의 크기가 작아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한 셈이다.

불만족스러운 결과에 좌절하지 않으려면 기대를 안 하는 방법밖에는 없겠는데, 이마저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깨달은 이후 '어차피 내가 세상을 이길 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품에 안고 많은 것을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정세의 말은 그러한 내 염세적인 마음가짐에 대한 '게임 체인저'였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이 체감한 사람인데, 오히려 포기하려 한 쪽은 나였다는 사실이 머리를 띵 하게 만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는데, 그중에는 분명 부끄럼도 있었다. 몇 번 실망하고 좌절한다고 끝이 아니구나. 나는 아직 포기할 정도로는 좌절해보지 못 했구나.

외모가 못나서,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 어딜 가나 나는 놈이 있어서. 갖가지 종류의 명분들을 만들며 시도 때도 없이 주저앉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노력을 쏟아붓는 위인들 말고, 적어도 '오정세만큼은' 시도해보고 좌절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나의 '동백꽃'을 만나리라.

마지막으로, 오정세의 말을 한 번 더 빌려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