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트라우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구분선을 제시하며 청년들의 기본적인 가치 추구를 욕심으로 치부한다. 이 지점에서 '꼰대'라는 단어가 나타난 것 또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나 때는~'이라고 입을 떼는 순간 대화의 배경이 7080 시대로 바뀌어버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다. 자그마치 20~40년의 시간을 돌아간 시점에서 현재를 논하니, 청년들이 느끼는 거부감과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눈을 낮추면 된다'는 말이다. '나는 그 정도에 만족했었는데', '나는 그런 건 상상도 못 해봤는데'와 같은 말을 그 논거로 삼곤 한다.
그러나 눈을 낮춘다는 것은 그리 단순한 옵션이 아니다. 목표로 했던 중견기업이 아닌 집 앞의 중소기업에 들어간다는 것이 낮은 급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의 해결책은 되겠지만, 이것은 성공적인 이직이나 결혼, 출산 등과 같은 장래 계획을 감히 넘볼 수 없는 근시안적인 해결책이다. 차후에 높은 확률로 느껴야 할 패배감과 열등감은 누가 보장해주겠는가? 맹목적으로 눈을 낮추라고만 조언하던 사람들은 이미 '나 몰라라' 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 성장은 더뎌지고, 경쟁은 세계적으로 심화되며, 그 와중에 변화는 점점 더 가속되고 있는 지금, 눈을 낮춰서 무엇이든 해보고 보라는 조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오히려 청년들에게는 포기를 권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불어 현 시대에서는 예전과 비교했을 때 노력의 '효율'과 '방법'도 현저히 다르다. 즉, 노력이라는 단어 또한 시대적으로 통용될 수 없는 개념이 되었다. 그러므로 '노력이 부족하다', '만족을 못 한다'와 같은 말로 청년 세대의 고충을 깎아내리는 것 역시 올바른 비판이 될 수 없다.
나는 가볍게 지나가는 말로 여겨지는 그러한 비수와 같은 말들이, 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노력 트라우마'의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투입에 따른 산출이 보장되지도 않고, 심지어 그 노력 자체도 깎아내려지기 십상인 지금의 청년들은, 누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주저앉을 정도의 상태일지도 모른다.
목표를 포기하지 않으며, 자책하지 않으며, 내가 실패했을 때 쳐다봐주지도 않을 어른들의 무책임한 조언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