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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Feb 28. 2022

시외버스에서 안전벨트를 맸다

 작년까지 저는 지옥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쌓여있는 우울증과 불안증 속에서 언제쯤 이 불꽃이 잦아드려나, 내가 스스로 불을 꺼야 하는 것은 아닌가, 삶의 존속에 대한 갈등으로 가득 찬 상태였습니다.


그 갈등은 언제나 그렇듯 저를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극단적인 상상이 무럭무럭 커져 몸이 반응하기 시작할 때쯤, 비로소 저는 정신과로 발자국을 옮겼습니다. 꾸준히 약도 먹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공포 서린 삶이었으니까요. 비록 몇 번 발을 들인 적은 있지만 의사가 종교를 요구하거나, 나를 다그치는 등 개인적으로 잘 맞지 않은 상담 때문에 정신과를 오히려 기피하고 있었기에 다시 병원을 방문한 것이 저에게는 무리한 결정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어둠을 겨우 걷어내고 진료실로 들어선 저를 밝은 여의사님께서 반겨주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비롯된 우울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시더니, 여러 가지 검사를 시켜주셨습니다. 그 후 검사 결과를 '점수'로 정량화하여 보여주셨습니다. 10점 이상이면 '환자'라고 칭하는데, 저는 29점을 받았더랬죠.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검사가 완벽히 객관적이지는 않을진대, 나의 상태를 숫자로 바라보고 있자니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상태를 아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스스로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끙끙 앓는데도 엄마가 걱정할까 꾹 참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처럼, 그렇게 아파했으면서 왜 아무 말도 없었냐고, 왜 도움을 바랄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책과 포옹이 섞인 형태였습니다.


우울증 약을 꾸준히 먹기 시작하면서, 저를 가꿔주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11시~12시에 눈 떠지는 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 알람을 놓고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물 한 잔을 먹으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감사했습니다. 이불 안에 박혀있지 아니하고 영어 공부 한 자라도 해보자며 책을 사고, 나를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모든 도서를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저는, 시외버스에서 안전벨트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죽을 수는 없을 것 같으니, 혹여나 사고가 난다면 마지못하는 모양새로라도 삶을 떠나보리라 하는 심정으로 항상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거든요. 그것은 10년, 20년이 넘은 저의 습관입니다.


얼마 전 본가로 내려가기 위해 올라탄 시외버스에서, 기사가 구태여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안전벨트를 졸라맸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 저의 모습을 스스로 보며 감탄했습니다. 이제 내가 살고 싶구나, 행복해하고 있구나, 그 어떤 변화보다도 으뜸으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안전벨트가, 저에게는 삶이 변하는 순간을 느끼게 해 준 몹시 큰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안전벨트를 매며 항상 스스로에게 되뇌입니다. 벨트를 매 주어 고맙다고, 평생 이 벨트를 놓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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