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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Mar 17. 2022

이력서에 적힌 내 인생


 오늘도 이력서 하나를 썼다. 역시 증권사다. 2개월 간 지원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만 벌써 27군데. 그중 무시당한 이력서가 반, 불합격이 반. 이리도 부서질 수 있을까 생각이 스친다. 20대 청춘은 오직 주식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그 진심을 몰라주는 것만 같았다. 하기야,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진심이야 얼마나 흔해 빠졌을까. 어쩌면 취업 전선에 딱총 하나 들고 뛰어든 것은 내 잘못일지도. 


울고 싶은 날도 많았다. 대학을 다니며 밤늦게까지 돈 번다고 땀은 많이 흘렸는데 그 땀은 온데간데 증발하고 없으니. 마치 내 몸에서 흘린 땀이 아닌 마냥. 부족한 자격증과 해본 적도 없는 대외 활동, 밟아본 적도 없는 해외 땅. 이력서가 내게 요구하는 것은 자세했지만 내 삶은 그리 일목요연하지 않았다. 결코 진부하고 뻔한 20대는 아니었지만 이력서 위의 내 이름 석자는 그리도 재미없었다. 결코 게으른 20대는 아니었지만 내 스펙은 그리도 게을러보였다.


나만의 방법으로 취업 준비 현황을 정리하고 있다.


'정해진 채용 인원으로 인해 귀하와 함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합격자 조회 버튼을 누르기도 전부터 내 뒤가 싸하달까. 내 직감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아, 이번에도 잘 안 되었구나. 물론 아직 2개월밖에, 그리고 아직 불합격 경험도 충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작 2개, 3개의 불합격만 연속되어도 마음은 쿵, 하고 가라앉음은 속절없다.


부족하다. 내 파란만장한 인생을 이력서 한 장에 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치열했던 대학 생활을 빔 프로젝트로 띄워 인사 담당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다. 식당에서 잘못 하나 하지 않고도 욕먹었을 때 슬픔을. 기분을 채 진정시키지 못하고 다른 아르바이트로 향했던 발걸음을. 눈물을 꾹 참고 사장님께 '알겠습니다.'를 외치던 쪼그라든 입술을. 밤에 돌아와 곤히 자고 있는 친구 옆에서 공부하며 끄적이던 종잇장을.


하지만 과학 기술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으므로 마음을 접는다. 다시 엑셀을 켜고 셀에 빨간색을 덧칠하여 거절을 이내 받아들인다. 누군들 과거의 땀이 없으며 누군들 한치의 억울함이 없으랴. 취업 전선이 고달픈 것은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나보다 훨씬 열심히 살아온 수만 명 지원자의 노력이 있는 까닭이리라. 그들 앞에서 초라해지는 나의 땀은 당연하게도 햇빛에 말라 사소한 소금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꼴찌는 아닐 테니까. 바닥 인생은 아닐 테니까. 오늘도 꾸준히 엑셀에 지원 기업을 추가하고 회색을 칠해 기대감을 입힌다. 그놈의 기대와 희망이란 썩은 동아줄도 놓지 못하게 하지만, 그만큼의 원동력이 되는 것도 없다. 형체도 흔적도 없는 희망 하나만 믿고 오늘도 걸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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