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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Mar 18. 2022

털어놓기의 중요성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털어놓아야 한다.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으면, 그동안의 안부에 대해 먼저 내려놓는다. 그때마다 매일 의사 선생님께서 하는 말이 있다. 지금 나에게 한 말을 다른 누군가에게 한 적이 있느냐고. 나에게만 털어놓은 이야기냐고. 의사 선생님은 털어놓기의 중요성을 매일 같이 역설한다. 나의 우울한 생각을 담아 부푸는 풍선이 있다면, 그 생각을 누군가에게 공유하였을 때 그 풍선은 공기 빠지듯 쪼그라든다고 한다. 홀로 끙끙 앓을수록 풍선은 그 크기가 더해지고, 이내 펑, 하고 터지며 조각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잘 털어놓지 못한다.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되지만, 슬픔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굳이 나의 슬픔을 전이시킬 필요가 있을까. 나만 안고 있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항상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다시 꿀꺽 삼켰더랬다. 삼키는 순간을 혹여나 눈치챌까 미소를 지어 부정적인 생각들을 증발하게끔 했다. 하지만 결코 그 생각들은 깔끔하게 증발하지 못했다. 폐로 침투한 그윽한 담배 연기처럼 내 마음을 누렇게 만들고야 말았다.


침과 함께 식도를 타고 넘어간 나의 슬픔들은 오직 내 속에서만 소중히 보관되었다. 그것들이 썩고 상한지도 모른 채. 뱉지 않아도 어련히 사라지겠거니 했으나 나는 여전히 머금고 있었다. 상대의 따뜻한 한 마디가 소화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아니, 사실 모른 척했다. 그 감정을 뱉어내는 것은 실로 이기심과 솔직함의 한가운데 서있으므로. 상대를 나의 편으로 만들 것인지, 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 것인지 그 결과를 짐작할 수 없었다. 참으로 어려웠다.



    그런 나도 결국 위로가 필요하다. 응원이 필요하다. 마음속에서 돌멩이가 되어버린 것들이 내 몸까지 고장내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울함과 외로움이 적절히 섞인 연기는 어느새 자욱해져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되었다. 그것을 무찔러 줄 백혈구는 오직 타인만이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털어놓아야 한다. 창고 속에 처박힌 먼지로 가득한 검은색 상자들을 밖으로 꺼내야만 창고를 깨끗이 닦아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가득 채운 까닭에 밝은 색 상자들을 꾸릴 공간이 부족할 것이다. 여유도, 행복도, 즐거움도, 유쾌함도, 들어오다 말고 등을 돌릴 것이다.


나는 오늘부터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상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려 한다. 그러나 그 상자를 받아주는 이가 지치지 않게, 실망하지 않게, 등을 돌리지 않게, 나 또한 그의 짐을 들어주어야 한다. 내가 있음으로 당신이 있고 당신이 있음으로 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땅이 꺼져도, 우리는 서로를 지탱해주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쏟아지는 빗속에서 홀로 서있을 필요가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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