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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Mar 31. 2022

코로나, 우리가 자초했다

제2의, 제3의 코로나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듣기도 지겨운 그 이름, 코로나 바이러스(이하 코로나). 왜 생겼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지금 와서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이 코로나가 우리 사회에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제2의, 제3의 팬데믹(Pandemic)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결코 지금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코로나가 왜 생겼는지 거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겠으며, 이 다음 글에서는 코로나가 어떻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본다.


코로나의 출현은 '인류로 인한 이상 기후'와 '인류의 자연 파괴', 두 가지의 측면에서 해석된다. 공통 키워드가 있다. '인류'. 즉,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의 제목, <코로나는 우리가 자초했다>는 결코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2차원, 3차원의 돌려 말하기가 아니다. 1차원적인 직언이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왜 내 탓일까? 억울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느 중국인들이 박쥐를 먹었다고 해서 생긴 재앙으로 치부하기에 그리 단순한 사태는 아니다. 두 가지 측면을 하나씩 들여다보도록 한다.



인류로 인한 이상 기후


    지구 온난화. 이제 남 얘기는 아니다. 더 이상 학교에서 반짝 배우고 마는 머나먼 용어가 아니다. 지구 온난화가 만드는 결과는 하나둘 우리 근처로 다가오고 있다. 근현대 인류는 산업 혁명을 거치며 화석 연료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화석 연료의 활용은 불의 활용 다음으로 인류 역사의 가장 빛나는 발전이다. 석유, 석탄 없는 일상을 아직은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 결과,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지구 온난화다. 이것이 왜 코로나와 관련이 있을까? 바로 야생 동물의 이주 현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심해의 정체도 알 수 없는 동물처럼, 야생에는 온갖 바이러스가 득실거리고 있다. 다만 이것은 야생 동물들의 몫이지, 인류와는 상관이 없었다. 지구 온난화 이전까지는.


이상 기후가 생기며 서식지에 안주하기 어려워진 야생 동물들은 차츰 새로운 집터를 찾아다닌다. 여기 가보고, 저기 가보고, 그 '여기, 저기'에 해당하는 곳 중 한 곳이 어디였을까? 바로 인류의 문명 지역이다. 서울에, 도쿄에, 워싱턴에, 상해에. 몸 어딘가에 어떤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을지 모르는 야생 동물들과 인류의 접점이 생기는 순간이다.


그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균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에게 옮겨지며, 인간은 그의 가족에게, 그의 가족은 그들의 지인에게. 낯설지만은 않은 광경이 아닌가? 팬데믹은 그렇게 시작된다.


21세기 인류가 괜히 RE100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괜히 그린 뉴딜을 제창하는 것이 아니다. 신재생 에너지가 화석 연료를 대부분 대체하는 시대의 커튼이 열리기 전까지 우리는 제2의 코로나가 창궐하여도 할 말이 없다. 지구는 더 이상 발전에 목매다는 시점이 아니어야 한다. '회복'해야 한다. 적어도 제2의 코로나가 터졌을 때 할 말은 있어야지, 억울할 자격이라도 있어야지. 말없이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며 곡소리가 터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참하다.



인류의 자연 파괴


    인류가 굳이 화석 연료를 태우지 않더라도 야생 동물의 이주는 필연적이었다. 인류가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산림, 해양, 그 어디든 상관없었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엄밀히 인류는 이기적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토록 편한 일상을 지내고 있다. 과연 대가 하나 없을까.


자연 파괴는 서식지를 잃은 야생 동물들에게서 시작된 재앙의 속도를 가속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온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바이러스는 우리와 충분히 가까워졌는데, 인류는 구태여 그 거리를 더 좁혔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어떤 다른 종류의 생물이 희생당함으로써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 더 이상 파괴할 것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인류가 더 발전함에 따라 더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더 많은 상가, 더 많은 주택, 더 많은 데이터 센터. 그러나 필자는 메타버스가 그 수요를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라 생각한다. 모델하우스도 필요 없이, 축구장만 한 데이터 센터도 필요 없이, 별장도 필요 없이. 신재생 에너지뿐만 아니라 신기술을 이용한 깨끗한 인류의 발전을 꾀할 때다.



    이 글을 읽고도 코로나 사태가 억울하다고만 생각이 든다면, 당장 집에 있는 에어컨을 떼어내야 한다. 당신의 차고에 있는 내연 기관 자동차를 폐차해야 한다. 다시 언급하듯, 코로나는 중국인의 박쥐 생식으로 그 설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려왔던 모든 문명의 대가로 보아야 한다. 코로나는 마치 우리에게 '그동안 편했지? 이제 때가 왔어.'라며 인류의 희생을 강요하는 저승사자 같이 느껴져야 한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두 가지로 나눈다. 반성의 필요성, 그리고 가벼워진 지갑. 이번 글에서 코로나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물으며 잠시 반성을 해보았다면,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실제로 느끼고 있는 지갑 사정에 대해 알아본다. 코로나는 자유시장경제를 코웃음 치듯 홀딱 벗겨내고 정부와 중앙은행의 헬리콥터 머니라는 기이한 정책을 이끌었다. 다음 글에서 이에 대해 상세히 생각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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