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그리고 문화충격
3개월 전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경험이 있었고, 다양한 조직문화를 겪어봤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첫 번째 충격은 이메일 한 통 보내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간단히 요점만 전달하고 끝낼 수 있는 내용이, 여기서는 여러 개의 부서의 검토를 거쳐야 했다.
“이 표현이 적절한가요?”, “윗분께 보고는 했나요?”, “CC에 누구를 넣어야 하나요?” 이메일 하나가 마치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충격은 업무 방식이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여기서는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남의 (상사)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싶어도, 이미 위에서 정해진 방향이 있었다. 토론하고 싶어도,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의 한 부분이 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었다.
그렇게 매일이 반복되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정해진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상. 예측 가능한 하루하루가 쌓여가면서, 지루함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내 일상을 삼키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또 똑같은 하루구나’라는 생각. 출근길에서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나가겠지’라는 체념. 이 지루함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몇 달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조직의 구조는 수직이지만, 내 사고까지 수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그 과정에서 내 나름의 학습과 성장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제한된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더 정확하게, 더 매끄럽게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으로 나만의 도전 과제를 만들었다. 결국 깨달았다. 지루함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것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인식의 변화였다.
지금까지의 자유로운 업무 환경이 그립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이 환경에서도 나만의 작은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작은 자유는 워라밸!
수직문화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사는 내 방식은 바꿀 수 있다. 내 방식은 워라밸!
무책임하다고 욕을 해도 상관없다.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워라밸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자!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이메일 한 통 보내려면 여러 부서를 거쳐야 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찾아낸 작은 재미들이 하루를 버티게 해 준다. 째깍째깍 퇴근의 기다리면서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
어쩌면 진짜 성장은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일할 때가 아니라, 원하지 않는 환경에서도 내 방식을 찾아낼 때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직문화 속에서도 수평적으로 사고하고, 지루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창조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이 내가 이 3개월 동안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내가 조직을 바꿀 수는 없다. 지루한 일을 하는 대신 완벽하게 일을 잘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면서 재정비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