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봐도 비디오
일 년에 단 한 번 가는 한국. 매년 항상 똑같은 일로 언쟁하는 우리. 이 지겨운 싸움이 벌써 15년째다. 이제는 서로 양보하고 이해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지만 여전히 한국 가기 전에는 며칠간 언성이 높아진다.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목소리가 커지고 그동안 참았던 감정들이 올라온다.
나에게 일 년에 3주 한국행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이 아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나에게 이 힘든 타국 생활에 다시 용기와 삶의 에너지를 받을 기회.
한국을 가는 것은 천국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나는 항상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한다.
아무리 독일에 오래 살고 정착했다고 하지만 나에게 집은 한국이다. 그리운 집에 가는 것이니 항상 기대된다.
긴 일 년의 여행을 맞추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남편에게는 한국은 단순하게 여행이다. 매년 같은 곳으로 여행을 갔으니, 불만이 많다. 다른 여행지도 가고 다른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여행 계획을 하고 방문할 곳을 정하고 여기를 새로운 곳을 탐방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는 매년 가는 한국행은 탐탁지 않다.
한국을 가는 목적이 다르니 합의가 절대 안 된다. 난 집에서 쉬고 싶고 가족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남편은 무조건 매일 도시 탐구를 해야 한다. 서로의 욕구가 다르니 서로 피곤하고 스트레스받는다. 양보가 없다. 난 집에 가야 되고 남편은 일 년에 여름휴가를 한국에서 보내야 하니 짜증이 나고. 비행기 탑승을 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진다.
지겹다.
매년 돌아오는 휴가철. 매년 정해져 있는 여름 휴가지를 앞에 두고 의견충돌하는 우리들.
여름에는 우리 집, 겨울에는 시댁이라고 자동적으로 정해진 휴가지. 즐거운 휴가. 그 휴가들을 우리가 스스로 망친다. 서로 양보를 못 하는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이게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서로 기를 쓰면서 자기의 여행지 선택권을 지키려고 한다. 언제까지 이 싸움이 계속될 것인지.
안 봐도 비디오다.
내년에도 이렇게 똑같은 말을 하면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한심하고 어리석은 모습에 한숨이 계속 나지만 변화하지 않는 위치. 좁혀지지 않는 거리처럼 좀처럼 마음의 거리도 줄어들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