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 시작
그동안 힘들게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받아왔던 인종차별. 무시당하고 아무 잘못 없이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 하나로 욕먹고 그렇게 30년을 이곳에서 산다. 한국에서 살아왔던 시절보다 더 오래 머무는 이곳. 하지만, 아직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다. 이렇게 오래 살았으면 마음을 붙일 때도 되었는데, 그게 그렇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어릴 때는 인종차별, 불쌍한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독일어를 못한다고 많은 이유 탓에 무시당하고, 욕먹고 지금은 인종차별에 더해서 성차별까지 받는 나. 이제는 그렇게 많이 차별을 받았으면 적응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많은 차별을 받고 여기까지 온 나.
왜 난 자꾸 성공에 목을 매는지, 왜 난 자꾸 남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많은지 생각을 해보면 지금까지 겪어온 차별로 인한 것 같다. 가난하다고, 돈 없는 거지라고 내 앞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는 독일인들, 독일어가 어눌하니 같이 과제를 하기 싫다고 하는 독일인들.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따돌림당하고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아물기도 전에 덧나고 또 곪고 터지고, 치유할 시간도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또 다른 차별.
인종차별은 기본이고 이제는 여자라고 대놓고 무시하는 회사,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회사. 양육해야 하는 아이가 생겼으니 더 이상 자기들이 원하는 일의 성과를 못 보여 줄 거라고 권고사직을 종용하는 회사. 이 모든 차별을 받으면서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요 며칠 사이에 큰 상실감을 느낀다.
이런 여러 가지 차별들을 받기 싫어서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을 해왔지만, 외국인이라서 여자란 점이 회사 생활에서는 항상 마이너스였다. 언제나 회사, 프로젝트 미팅에서는 혼자 여자였다. 넌 여자라서 안돼, 그 일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려고 지금까지 아등바등하고 살아온 나 자신이 너무나 불쌍하고 못나 보인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악을 쓰면서 살아왔는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나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면서 지금까지 버티어 왔는지 모르겠다.
답이 없다.
인정을 받았으면 행복했을까. 누구를 위한 싸움을 그렇게 했을까. 다 부질없는 짓들인데. 그동안 받아왔던 차별과 싸우기 위해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지금까지 쌓여있던 아픔의 상처들이 그 눈물을 통해 씻겨 나 같으면 하는 마음으로 펑펑 서럽게 운다. 마음고생이 참 많았던 과거의 나에게 잘 참고 살아와서 가엽지만 기특하다고 칭찬하고 싶다. 제2의 인생을 사려고 하는 나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차별과 부정적인 일들을 잊어버리고 앞으로의 인생에 빛이 나기를 응원한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