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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25. 2022

어서 와, 통영은 처음이지 3

20220522

  이름모를 낯선 여행지에 도착해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나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곳을 찾는 사람도 있다. 그런 점에서 맥도날드는 마음에 든다. 어디에나 있으니까. 어떤 나라, 어떤 지역을 가도 맥도날드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규칙적인 패턴과 정해진 룰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디에나 있는 평준화된 맛의 레스토랑'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선택지다.

  통영 터미널 옆에는 아주 잘 정비된 맥도날드가 있다. 오늘 아침은 맥모닝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온 가족이 걸어서 터미널까지 왔다. 2층에 자리를 잡고 팬케잌 과 커피를 먹고 마신다.

  나는 팬케잌을 좋아한다. '백종원의 스트리트푸드파이터' 라는 프로그램 중 ‘뉴욕’ 편에, 아침식사 장면이 나왔었다. 펜케잌에 계란후라이, 토스트 등을 커피와 즐기는 장면이었다. 신문을 들고 저런 곳에서 아침을 즐길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스트리트푸드파이터는 보고 또 봐도 흥미롭다.)

바로 이 느낌
바로 이 분위기

(통영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뉴욕으로? 글이 갈피를 못잡는구나.)


  오늘도 차를 빌렸다. 오늘은 레이. 카플레이가 잘 되는 작지만 야무진 차다. 레이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차가 참 넓다. 높이 때문인지 답답하지 않다. 에어컨을 틀면 언덕을 올라갈때 힘들어하는 것이 안쓰럽지만, 살살 달래가며 타면 된다.


  편백나무 숲, 걷기 체험 하러 왔다. 맨발로 한 시간 가량 산책을 한다. 폭신폭신한 흙길이 도시에서 답답하게 혹사당했던 내 발에게 휴식을 준다. 피톤치드의 효과는 믿거나말거나 수준이지만, 믿으면 몸이 반응할테지. (우리에겐 ‘플라시보’라는 무적의 이론이 있다.) 중간중간 해먹 이나 간이의자 같은 휴식장소도 있다. 해먹에 누워 하늘을 본다.

나무 사이로 하늘이 새파랗다.

긴 산책 후 족욕으로 마무리했다. 오늘 내 발이 호사를 누린다. 원래 우리 조상들은 맨발로 다녔겠지. 인간이 신발을 신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텐데, 맨발로 다니는 세상을 꿈꾸는 건 허무맹랑한 상상일까. 이런 곳에서 매일 맨발로 가볍게 걸으며 책 읽고 음악듣고 조용히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점심은 근처 칼국수집, 물총칼국수였나 그랬다. 상호는 기억이 잘 안난다. 국물이 시원했다. 어릴 땐 몰랐다. '국물이 시원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지금도 명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국물이 '시원하다'는 표현은 누가 만들었는진 몰라도 아주 적절하다. 칼국수 국물이 매우 시원했다. 조개는 탱글탱글 식감이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바지락보다 낫다. 김치는 좋아하는 겉절이 스타일. 파전은 해물이 듬뿍 들어간 바삭바삭한 느낌으로 게눈 감추듯 흡입했다.

물총 조개가 들어가서 물총칼국수 였나, 그랬을꺼다 아마. 파전도 하나 시켜봤다.

  원래는 바로 시내로 이동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칼국수 집 옆에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 등을 대여해주는 곳이 있더라.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고.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빌려서 탔다. 아내와 아들이 즐거워해서 나도 기분이 좋다.

탁 트인 길을 질주했다.

  돌아오면서 아내랑 아들은 서피랑에 내려줬다. 굳이 모두 터미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 필요는 없으니. 나 혼자 차를 쏘카 주차장에 반납하고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중앙시장으로 이동했다. 버스는 바닷길을 따라 달렸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유심히 바다를 봤다. 남해는 동해와 달리 작은 섬이 많다. 그래서 '탁 트인' 느낌은  아니다. 중간중간 섬들이 심심하지 않게 위치해서 재미와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이 섬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르게 이동하며 전투를 치르셨겠지. 왜군은 섬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속수무책이었을꺼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


  가족을 만나, 삼도수군통제영 세병관으로 이동했다. 조선시대 관아로 이 높은 곳에서 통제사는 바다를 바라보며 해군 훈련을 지휘했다고 한다. 원래 한산도에 있던 통제영이 임진왜란이 끝나고 통영으로 옮겼다.

세병관

이곳에서 바다를 보며 해상 군사훈련을 했다니 새삼 대단하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지 못했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해도 끔찍해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이순신 장군께 감사하다는 말은 몇백 몇천번이고 반복해도 충분하지 않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실제로 이 곳에서 좌우에 큰 깃발을 달아 올리고 내리고 북을 치며 정해진 신호에 따라 함선이 진영을 갖추고 기동하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저 먼 옛날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정해진 매뉴얼과 프로세스를 갖추고 훈련을 했는데,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왜 아직도 주먹구구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인류의 진화는 생각보다 더딘가보다.

  

  동피랑 벽화마을로 갔다. 예전 단어로 하면 '달동네' 가까운 곳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리브랜딩했다. 다양한 벽화와 아기자기한 카페와 선물가게 등으로 구경거리가 많다.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돌며 구경하면 시간가는  모른다. (관광객들 때문에 주민들이 고통을 겪는  했다. 아무래도 시끌시끌한 만큼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는 어렵겠지.)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바다를 구경하고 다시 내려왔다.

귀엽고 재밌는 벽화가 가득해, 걷는 맛이 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서 한잔했다. 아들이 최근 인기있는 프로그램, '강철부대'를 좋아한다. 갑자기 PX 음식이 먹고싶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이 군인들이 주인공이다보니, 최근 방영된 에피소드에 PX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왔나보다.) 시간은 좀 늦었지만, 같이 손을 잡고 편의점으로 갔다. 냉동치킨을 사와 전자레인지에 돌려봤다. 수십년이 지난 군복무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맛있어?"

"응!"

하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군 PTSD 인걸까. 는 농담이고, 배가 불렀다.)


통영 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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