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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02. 2022

어서 와, 통영은 처음이지 4 (마지막)

20220523

보통, 많은 관광지가 주말 관람객들로 바쁜 토요일, 일요일을 보내고 월요일은 쉰다. 주말 특수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항상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상황이 되면 까맣게 잊는다. '월요일 관광지는 휴무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먼저 인터넷이나 전화로 개장 여부를 확인하고 가자.' 라는 간단한 공식을 애써 모른척 하는 것이다. '에이 설마 오늘 쉬겠어~' 라는 마음으로.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냐면, 통영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거북선 관람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월요일은 휴무. (어쩐지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북선은 조용히 떠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아들을 달래, 바로 옆 음악당으로 향한다. 거기 분위기 좋은 카페도 있다고 한다. 음악당 구경도 하고,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 쐬며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러 간다. 나와 아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들은 팥빙수, 거기에 달달한 케잌 한 조각을 같이 나누며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겠지.


'혹시 휴무일 수도 있으니, 먼저 인터넷으로 찾아보거나 전화로 오픈 여부를 확인해보고 간다.' 라는 간단한 공식을 다시 한번 잊은 채.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열심히 걸어갔다.


음악당 휴무.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건, 호모 사피언스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고유 성질인가보다.)


기존 묵고 있던 숙소에 에어컨 작동이 안되는 문제로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수리도 안되고, 대책이 없어서 버틸 수가 없었다. 그만큼 더웠다.)

죄다 휴무에, 숙소는 말썽이고. 기분이 편하지 않다. 이럴 땐 배를 채우면 된다. 일단 배가 부르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질 수 있다. 근처에 맛있는 밥집이 있다고 한다. 한정식 집으로 해산물도 깔끔하게 나오고, 반찬이 정갈하기로 유명한 집이란다. 현지에서 바로 공수한 신선한 해산물이라니 두근두근. 그 곳에서 맛있게 먹고 기분도 풀고 새로운 숙소로 옮기기로 했다. 뜨겁게 내리쬐는 해를 참고 열심히 걸어서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참 간단한 공식을 다시 잊은채로)


맛집 역시 휴무.


계속 뙤약볕에 걷다가는 허기진 아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만 같아 근처 맘스터치로 그냥 들어갔다. 햄버거가 웬말이냐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좀 쉬고 재정비가 필요했다. 끼니를 떼우고 더위를 피했다.

에어컨을 켤 수 없는 숙소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새로운 숙소로 이동한다. 새로운 숙소는 중앙시장 근처로  번화한 구도심 느낌이 물씬이다. 읍내 장터같은 시장을 지나, 다닥다닥 붙은 옛 건물들이 즐비한 상가 골목을 지나 숙소로 향한다. 깔끔하고, 조식이 제공되며, 오션뷰를 가진 작은 숙소다. 가장 중요한 에어컨을 확인. 잘 들어온다. 티비도 작동하고.


나는 아내와 아들을 두고 먼저 서울로 올라와야해서 체크인만 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아쉽지만 '월요일은 휴무가 많다.' 라는 귀한 교훈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성장할 순 없겠지. 월요일엔 휴무가 많습니다, 여러분. (다행히 아내와 아들은 내가 올라오고 다음날인 화요일에 거북선 관람과 음악당 투어에 성공했다고 한다.)


터미널 근처 중국집에서 마파두부 밥을 먹었다. 허름한 중국집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의외의 맛집이었다. 통영에 내려오던 날 먹었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맛없는 수제비와 너무 비교된다. 게눈 감추듯 흡입하고, 커피를 한잔 사들고 터미널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통영은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치열하게 경쟁중이다. 어디를 가도 맛좋은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로는, 투썸 플레이스가 많이 진출해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인기가 있지는 않은 듯)

버스가 제시간에 도착했다. 이제 4시간 넘게 달려 서울로 올라간다.


통영은 낙후된 것도 아닌, 발전이 눈부신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 어정쩡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남쪽으로 멀리 내려온 적은 처음이라 비교군은 없지만, 강원도 등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옛스러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 시장근처 도심 번화가는 시골 읍내 느낌이 여전히 남아있고, 꽤 복잡하다.

하지만, 통영은 그만큼 역동적이다. 사람들은 밝고 활기차며 에너지가 넘친다. (갑자기 유람선의 멋쟁이 선장님이 떠오른다.) 동해와 비교하면 바다 또한 다채롭고 화려하다. 넓은 수평선이 시원하게 펼쳐진 동쪽 바다와 달리, 통영은 작은 섬들이 중간중간 촘촘히 박혀있다. 전혀 심심하지 않은 수평선을 관광객들에게 선사한다. 보는 재미와 맛이 있다. 이렇게 좋은 추억을 가지고 돌아간다.


안녕 통영. (월요일이 휴무인 건 잊지 않을께.)


통영 4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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