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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16. 2022

회의, 정기회의는 없애라고 있는겁니다

주간업무, 잘 쓰고 계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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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오전,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앞 카페에 간다.

학원이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곳이다. 글도 쓰고, 책도 읽을 수 있는, 귀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연다.


그때 마다 만나는 중년 남자분이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 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깔끔한 분이다. 편하게 차려입고, 노트북을 들고 일정한 시간에 나타나 자리를 잡는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는 늘, 여러장의 종이(출력물) 파일을 들춰보며 노트북에 뭔가 열심히 입력한다.

우연히 옆에 앉아서 보게됐는데,

바로 '주간업무' 였다. (이 글에서는 '주간업무 회의'를 위한 보고 작성, 회의 참석 등을 통틀어 '주간업무'라고 칭하기로 한다. 보고서 작성이든 회의 참석이든 어차피 정기적인 리소스 낭비는 마찬가지니까.)

그는 어떤 팀, 혹은 실, 하여튼 '조직의 리더'. 여러 작은 조직의 취합받은 주간업무를 모아 자신의 '주간업무'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도 보스의 주간업무 회의에 들어가서 보고해야 하나보다.

그렇게 그는 토요일마다 2시간씩 주간업무를 쓴다. (그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텐데 말이다.)


물론 필요하다.

누군가는 상위 직책자에게 정보를 전달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번주에는 이런거 했구요, 다음주에는 저런거 할꺼에요' 상위 직책자는 그의 상위 직책자에게 전달할 주간업무를 쓰고, 그렇게 주간업무는 연어가 상류로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듯 위로, 위로, 올라가며 작성되고 보고된다. 오로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뭐, 물론 의사결정이 조금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다루는 업무의 범위가 너무 방대하다. 말그대로 하는 일들을 죄~다 모아서 보고하는 자리잖는가. (듣는 사람들은 그 모든걸 기억이나 할까, 컨텍스트는 쫓아갈 수 있을까)


'공유'의 의미에서라면 필요한 게 맞다.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 과할 때가 있다.

중간관리자가 많은 경우이다.


실장 주간업무를 위해 팀장 주간업무를 하고, 팀장 주간업무를 위해, 셀장 주간업무를 하며, 셀장 주간업무를 위해 파트장 주간업무를 한다. 파트장 주간업무를 위해 기획 주간업무를 하고, 개발 주간업무를 따로 한다.

매주 주간업무 기간이 되면, '주간업무 써주세요!' 라는 메시지가 채팅창에 바쁘게 오고간다.


정기회의는 반드시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나로서,

적어도 Jira를 기반으로 업무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만큼은,
(나는 다른 산업의 특성은 잘 알지 못해서, 이 글은 이쪽 업계를 기준으로 작성했다.)

주간업무는 최대한 없애고, 있더라도 주요 이슈 위주로 빠르게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모되는 허망한 리소스를 줄이고 아껴서, 더욱 창조적인 곳에 쏟아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쓸데없는 중간관리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예전 '가족 오락관'이라는 TV프로그램의 '고요속의 외침'이라는 인기 코너가 있었다. 모두 귀마개를 한 후, 한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입모양으로만 단어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한 단계씩 거쳐가면서 단어가 점점 이상하게 바뀌어 전달되는 과정이 웃음을 부르는 포인트였다.
중간관리자들이 많으면 '고요속의 외침' 같은 현상이 조직에도 나타난다. 서로의 의사가 조금씩 변질되며 전달되는 것이다. 중간관리자들이 많아질수록 업무 정보의 전달은 끊기고, 유연하게 의사결정할 수 없게된다.
주간업무도 마찬가지다. 중간관리자들이 늘어나면 중간에 소집되는 회의와, 작성해야 하는 주간업무는 점점 늘어난다. 당연히 그들의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되는 이슈의 종류도 마음대로 바뀐다. 상위로 올라가는 Task는 윗사람 입맛에 맞추는, 소위 말하는 '광팔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중간관리자들의 가장 큰 업무는 '주간업무'작성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겠는가. 이렇게 주간업무 단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대기업 재직자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실무는 안하는 기묘한 역할의 매니저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주간업무 문서는 보고를 위해 따로 작성되지 않아야 한다. 시시콜콜 모두 보고할 필요도 없다.(누가 휴가를 가고, 누가 반차를 썼는지는 근태 시스템으로 직접 확인하면 된다.) '저 이렇게 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고 티내는 용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서로 신뢰하고 있다면, 열심히 일하는 거 다 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업계는 Jira를 대부분 쓰고 있다는 전제하에) 정말 공유해야 할 주요 이슈에 대해서만 Jira 티켓 번호를 강조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주간업무에 참여하는 여러 직책자분들, 혹시 주간업무 내용 기억은 하시나요? 어떤 실무자가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고민은 하시나요?)


출근해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게 평가의 메인 요소가 되는 '농경시대'식 과거 조직문화에서 주간업무를 비롯한 정기회의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놀고 있지 않다'는 '증명'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신뢰도 없고 위임도 없다. 일의 내용 보다는 '아무튼 무언가 진행되고 있어요~' 라는 자기방어의 수단이었다. Jira 티켓 기반 등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도 없다. 히스토리 기록도 없고, 공유도 없다. 주간업무에서 '나 이런거 해요~' 라고 하면 그냥 그런갑다 하는 주먹구구식 업무환경에서는 다들 주간업무에 목숨을 건다.

'회의로만 일하는' 중간관리자 등 상위 직책자들은 회의가 많으면 열심히 일한다고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를 좋아하고 많이 만든다. 특히 정기회의를. 주간업무 회의야말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 된다. "아, 내가 너무 바쁘잖아. 글쎄 회의가 오늘만 5개야~" 전부 주간회의, 협의체 등 '보고받는' 자리다.(혼자 다니는 것도 아니다. 회의마다 실무자들을 잔뜩 끌고 다닌다. 왜? 본인은 디테일을 모르니까.) 그들은 회의에 참석해 상석에 앉은 채 몇마디 코멘트를 날릴 뿐이다. 진단만 하고 처방은 없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 '방안을 만들어 보고해-' , ‘문제 없게 해-‘ 등의 코멘트가 주다. (심지어 정기회의들은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산출물도 없다!) 깊은 고민에 기반한 문서 작성 따위는 잊은지 오래다. 고액 연봉을 받는 상위 직책자들이 점점 디테일에 약해지는 이유다. 그들의 주 업무는 '회의 참석' 이니까.

게다가, 때로는, 자기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관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간업무'와 비슷한 정기회의를 일부러 만들어 보고받는 사람들도 있다. "엣헴, 나한테도 주간업무처럼 정리해서 보고하세요. 나도 그정도 위치는 된다구!" 같은 뜻이다. 'PM협의체', '기술/개발 논의위원회' 등등 이름은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실무자들은 주간업무 내용을 복붙하여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회의마다 돌며 반복한다. (가뜩이나 실무할 시간도 부족한데 말이다.)



Jira 보드 공유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단, 반드시 Jira 티켓에는 상세한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기재되어야 한다.) 보드는 누구에게나 오픈되어있으니, 누구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티켓을 보고 지식을 습득하면 된다. (그러다가 궁금한게 더 나오면 comment로 문의 혹은 메신저로 소통하면 된다.)

혹은, 구성원들이 각자 본인의 가장 임팩트 있는 이슈 한가지씩을 정리해 가져와 공유하는 자리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어려운 점을 토로하고 같이 해결할 수도 있는 그런 미팅 말이다. '나 안놀고 일했어요'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닌,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진짜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주간업무회의를 이렇게 해봅시다.


혹시 어떤 조직의 리더이신가요? 그럼 이렇게 해 보세요. 당신이 참여하는 회의에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겁니다. 그렇게 몇 번의 회의에 나타나지 않은 다음, 팀원에게 물어보세요. ‘혹시 저 없이도 회의가 열렸었나요?’


리더가 없을 때 열리지 않는 회의라면, 그 회의는 필요 없는 회의다. 없애버리는게 맞다. 팀원들은 그 회의에서 어떤 정보나 가치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리더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회의이다. 리더가 필요한 정보는 부문별로 따로 보고 받거나 이메일로 마무리하는게 좋다. 한 사람만을 위해 수십명이 모이는 회의는 최악이다. 모두가 정보를 공유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회의만 짧게 진행하는게 좋다.


매 주, 몇 시간씩 주간업무를 위해 문서를 작성하고, 회의에 참석해서 줄줄 문서를 읽고, 조직장은 또 그걸 취합해서 다른 문서를 작성하고, 문서는 문서를 낳고. 회의는 회의를 낳는다. 주간업무, 협의체, 위원회 등등등 쏟아지는 정기회의들. 그렇게 리소스는 줄줄 녹아내린다.

완벽히 없애진 못할거다.

그럼 조금씩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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