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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09. 2022

다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입니까?

일잘러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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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들 같은 반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 

급하게 놀러온 터라 일단 집에 있던 몇가지 간식을 내줬다. 그 나이 또래 애들이 그렇듯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해서, 거실도 내줬다. 닌텐도 스위치로 열심히 게임을 한다. 격투 게임도 하고 부루마블 같은 게임도 한다. 

나는 다른 방에서 쉬고 있었는데, 거실이 갑자기 시끌시끌하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가보니 아들과 친구가 언성을 높이고 있다. 아들이 이기고 싶어서 친구에게 무리한 주장을 했나보다. 그게 발단이 된 걸로 보였다. 다행히 조율이 잘 되었고, 아이들은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다시 게임을 했다. 방에 들어갔는데, 금새 거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린이들은 화해도 빠르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그게 참 어렵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성 바른 친구는 한 시간 쯤 후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가 돌아가고

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기고 싶지?

지면 열받고 화나잖아. 아빠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놀이할때 게임할때 이기는게 제일 중요한 건 아냐.

다시 같이 놀고 싶은 친구가 되는게 가장 중요한거야.

막무가내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없이, 기를쓰고 짜증을 내며 한 판 이겨봤자,

다시 아무도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어.


주로 위와 같은 내용이었다. (사실 대화라기 보다는, 일장연설이었구나. 반성합니다.)

어떤 게임의 초고수가 되어봤자,

실력을 뽐내고 연전연승하고 싶어봤자,

그 누구도 자기랑 놀아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다시 같이 놀고 싶은 친구가 되자.'


그 이야기를 하고 나니 문득 '나는 어떤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나는 '다시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 인가?


요새 유행하는 360도 다면평가를 전 직장에서 몇 년간 진행했다. 수평문화를 지향하는 조직이었다. 직급가리지 않고 서로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익명으로 줄 수 있었다. 모두 바쁜 업무시간을 할애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결과 또한 구체적이고 의미있었다. 이렇게나 솔직하게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피드백 문화라니. 전 직장의 360도 다면평가는 참 인상적이었다. 동료들의 진심어린 피드백으로 나는 많이 배웠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 재직중인 회사에서도 익명으로 다면평가를 진행한다며 열심히 참여를 독려중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참여 독촉 메일이 날아오지만, 익명이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미참여자의 참여를 독려하는 메일을 보내려면, 참여/미참여 여부를 관리한다는 뜻인데. 그게 익명인가? ㄷㄷㄷ) 이쪽 일을 하는 입장에서, 시스템에 입력하는 내용에 익명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IP를 로깅한다면? 입사일자/직군/조직명 을 남기면 익명인가?) 

그런데 왜 나는 전 회사에서 편하고 솔직하고 자유롭게 입력할 수 있었을까? 거기도 익명이 의심되는 건 마찬가지였을텐데 말이다. 내가 여러번 글을 썼지만, 역시 '문화'라고 생각한다. 안심하고, 솔직해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문화. 이렇게 이야기해도 나는 '안전하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문화. 또, 다시 문화 얘기로 넘어가게 되는구나. 모든 건 '문화'로 이어지는 것 같다. 왜 다들 문화를 고칠 생각은 안하고 '360도 다면평가' 같은 방법과 툴에만 집착하는 것일까.


아무튼 '심리적 안정감을 줬던' 전 직장의 '360도 다면평가'에서 가장 좋았던 질문은

'다시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입니까?' 였다. 

질문에 답변을 하려고 하얀 화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 일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절대 협업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업무 능력'은 다시 일하고 싶은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표는 아니라는 점이다. 업무 능력은 비슷비슷하다. 결국은 '배려' 와 '겸손'을 기반으로 한 '태도'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절대 다시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한명은 심지어 개발 능력이 매우 출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독성 말투의 화신이었다.) 개발을 아무리 잘해도 협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팀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1인 프로젝트 같은 거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팀으로 움직인다.)


일 잘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다시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는 정말 흔치 않다. 

그래서 더욱 더 소중하다.

그것이 내가 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를 금쪽같이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이유이다.


'아, 그 사람과 다시 같이 일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동료가 되고 싶다.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렇게 되도록 성장하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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