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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y 14. 2022

반대를 위한 반대

'10번째 사람'이 되는 법


그는 회의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ㅇㅇ 때문에 조금 더 검토가 필요합니다.”

“ㅇㅇ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ㅇㅇ 인 이유로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리스크를 고려하고,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쁘지 않다. 조직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릴 때, 주변을 둘러보고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사람이 팀에는 필요한 법이다.


“업무 프로세스에 위배되므로 곤란합니다.”

“그렇게는 해 본적 없습니다.”

"이 회사에서 그런게 될리가 없잖아요."

이 쯤 부터는 의문이 들었다. 프로세스는 '일을 잘' 하기 위한 목표로 만들어 놓은 메뉴얼일텐데, 오히려 일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프로세스를 경전처럼 모시고 무조건 '안된다'를 남발한다. 21세기의 새로운 우상숭배(?)인 걸까. '프로세스를 지키는 것' 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 둘 중 우리의 미션은 당연히 후자 아닐까. 거기에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은연중에 언급하여 패배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안될꺼야 아마' 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도록 속삭인다.


회의 막판 무렵에 그의 의견은 보통 이렇게 마무리 된다.

“관계자들이 전부 모여 협의해야 합니다.”

“TF및 관련 협의체를 구성해서 본격적으로 논의하시죠.”

“다음 달 정기회의에서 안건으로 올려 결정한 후 진행해야 합니다.”


일부러 판을 키우고 일정을 미룬다.

사실 위 처럼 '실무도 제대로 모르는' 수십명이 모인 협의체를 벌여놓고, 그 안에서 논의해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내기란 굉장히 어렵다. (누가 모여야 할지 아는 사람도 없다.) 다들 한마디씩 거들면 두세시간은 금방이다. 배가 산으로 가는 걸 넘어, 우주로 간다. 그래서 업무협조를 요청하는 외부 부서 중 절반 이상은 이 상태에서 두 손 들고 포기해버린다.


1. 근본적인 논의를 내부적으로 해야 하고

2. 업무 프로세스에 위배되고

3. 그런 식으로 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4. 안될꺼다 아마

5. 아무튼 (누가 참여해야할진 모르겠지만) 협의체를 구성해서 만장일치 의견을 모아야 한다.


위와 같은 순서로 회의가 진행되면, 참여자에게는 결국 동일한 뜻으로 읽힌다.

"나는 하기 싫은데? 이래도 할래?"


소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소고기 국거리로 반 근 주세요."

"어서오세요. 소고기를 드시고 싶으시군요? 그렇다면 소가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동물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동물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부터 이야기해볼까요? 그 후에, 축산조합, 농림수산부, 도축협회, 동물권리협회 등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손님이 소고기를 사가는 것에 대해 문제가 없는지 논의해보시죠." (이래도 살래?)

"......"


반대맨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을 편의상 반대맨이라고 부르겠다.)이 문제가 되는건 단순히 개인 성과가 미흡하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팀 분위기와 문화를 미지근하고 힘빠지게 만든다. 열심히 하려던 사람의 의지를 꺾고 뒷다리를 잡는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반기를 드는 일부 팀원을 왕따시키는 등 팀 내 정치질을 시작한다.) 분위기는 급속도로 전파되어, 팀 성과가 전체적으로 나빠진다.


반대맨들과 회의를 하면 결과가 매번 똑같다. 아마 이렇게 끝날꺼다. "그럼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고, 조금 더 고민해보는걸로 하죠." 매번 똑같다. 조금 더 고민해보시죠. 도대체 뭘 고민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 의미 없는 회의 시간이 그렇게 낭비되고, 일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아무런 결과가 없다.(그들이 원하는 바다. 그들은 '다음 회의'를 원할 뿐이다.) 회의록에는 'ㅇㅇ 프로젝트 진행 공감대 형성' 정도의 문구만 들어간다.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몇시간을 회의하는 거다. 결국 외부에 이런 식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ㅇㅇ팀 사람들은 일하기 싫어한다.'


업무 요청만 하면,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해본적도 없고 근본적인 논의부터 해야되고 아무튼 안될꺼다, 협의체에 관련자 전부 모아서 의견 통일해오세요." 라고 하는데 좋은 평판이 나올리가 없다. 'ㅇㅇ팀은 일하기 싫어하더라.' 라는 이미지만 각인된다. 그 한 사람 때문에 팀 성과는 점점 바닥을 치고, 이상하게 외부 시선도 불편해진다. 여기저기서 'ㅇㅇ팀 때문에 업무 진행이 안된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결국, 팀은 해체된다.


물론 영화 '월드워Z' 등장했던, 이스라엘의 의사결정 도구인 '10번째 사람'이라는 방법론도 있다. 영화  세계는 좀비가 창궐해 멸망 직전의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다른 세계 여러 나라들과 달리 높은 장벽을 세워 좀비를 사전에 대비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있었을까?
"10번째 사람이 결정을 도왔죠."
이스라엘 고위관료 대부분은 좀비 사태에 대해 터무니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무시했지만, 마지막 '10번째 사람' 만은 좀비 창궐 소문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파고들어 진실임을 알아낸 것이다.

의사결정을 진행하는 참여자 10명 중 9명이 찬성했더라도 10번째 사람은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결'에 의해 결정을 하고, 대부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그대로 따라가는 조직의 의사결정 허점을 미리 방지하고자 만든 도구로 보인다.


그렇다면, '10번째 사람' 과 '반대맨'의 차이는 무엇일까?
'10번째 사람'은 장벽을 세워 좀비를 막았고, '반대맨'은 일이 진행되는 것을 방해했을 뿐이다. 대안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어냈느냐 못했느냐의 차이다. 무엇이 문제가 되어서 안된다면, 대안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하다못해 상대방이 그런 느낌을 가질수 있게끔이라도 해야한다. 그게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참여자의 자세다. '좀비는 있다니까!' 라는 의견만 낼 것이 아니라, '좀비가 조만간 창궐합니다. 그러니 어서 장벽을 세워 방어해야 합니다.' 라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주야장천 던지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반대 의견을 내고 싶으면,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이렇게저렇게 하는게 좋겠습니다.' 라는 대안을 반드시 머리에 넣고 시작하자.

나도 반성하고 조심하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반대맨'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지.
'10번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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