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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30. 2021

화가 나셨군요

또 싸우네.


최근 내가 자주 찾아가 글을 읽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큰 싸움이 났다.

'공공장소에서 큰 유모차를 끌고다니는 부모들은 민폐다.' 라는 주제에, 찬반으로 나뉘어 논쟁이 벌어졌다.

주말 백화점의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큰 유모차로 자리를 차지하는 건 민폐라는 주장과, 그 정도도 배려해주지 않으니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 힘든것 아니냐는 주장으로 게시판에서 갑론을박이 오갔다.


주제의 찬반에 대한 내 의견은 차치하자. 왜냐면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폐의 정의와 한계가 사람마다 다른데, 당연히 받아들이는 수위에도 차이가 있다. 누구에겐 민폐고, 또 어떤이에겐 이해 가능한 범위에 들어가는거다. 개인 취향으로 벌어진 싸움에 참전하면, 그 보다 더한 에너지 낭비는 없다.


아무튼 그 싸움을 보고있노라니,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차분하게 의견을 설명해도, 본인 감정을 이입해 흥분하며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고있자니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해서 부끄러웠다.

요새 유난히 그런 사람들이 눈에 많이 보이는 듯 하다. 환경 파괴가 사람들의 호르몬에 몹쓸 영향을 준 걸까? 아니면 지구 온난화가 뇌의 활동에 제약을 거는걸까? 왜 분노의 바이러스가 이토록 멈추지 않고 사방팔방 퍼져나가는 걸까.

씁쓸하다.


살면서 싫어하는 순간들이 있다.

절대 만나기 싫은 순간들. 예를들면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무대뽀인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같은 것 말이다. 지하철에서 내 몸을 손으로 밀어제끼고 내린다거나, 엘리베이터에서 초과적재 경고음이 울려대는데도 그냥 웃어넘기며 누군가 내리기를 바란다던가, 요즘 같은 시국에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대로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나에게 연기 샤워를 시켜주시는 분들을 만나는 것. 등등. 절대 마주치기 싫은 사람들, 순간들이다.

그와 비슷한 느낌으로 요새 가장 겁나는 게 무엇이냐면, 감정조절 못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정말 무섭고 두렵다. 그런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뒤끝이 없잖아~"


정말 오싹한 말이다.

상대방 감정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채, 본인은 감정배설이 끝났으니 이제 화해하자는 뜻이다. 자, 좋은게 좋은거 아닌가? 하며 꽁해있지 말고 시원하게 풀자고 '본인만' 주장한다.

'감정조절 불능자' 들은 일단 자신이 화병에 걸릴까 매우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기들은 화가나면 풀어줘야 한단다. 안그럼 너무 힘들다고 한다. (당하는 사람의 힘듦따위는 안중에 없다.)

조금이라도 수가 뒤틀리면 바로 말투가 돌변하고, 표정이 변한다. 평소에 쓰는 말에 날이 서 있으며, 언제든 상대방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 꼰대가 되지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꼰대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자신의 현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개선될 여지가 없는 법이다. 자신이 '감정조절 불능자'라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을 인정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이, 대부분의 '감정조절 불능자'들의 공통점이다. (심지어 이 글을 읽으면서도, 이거 혹시 나한테 하는 얘기냐며, 내가 어디가 어때서 그러는거냐며, 분노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충고/조언은 꼰대질이라지만, 그걸 무릅쓰고서라도 이야기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주변에 몇몇 있지만, 그냥 넘어간다.

첫째, 내가 꼰대가 되기 싫어서이고

두번째는, 그렇게 이야기해도 씨알도 안먹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토크쇼에서 사람들에게 신신당부 했던 말이 있다.

"여러분께 딱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특히 지금 시청하고 계신 젊은이들에게 간청합니다. 제발, 시니컬해지지 마세요. 저는 냉소를 증오합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성격인데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자기가 얻을 거라 생각했던 걸 다 얻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정말로 열심히 일하고 친절하다면, 반드시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겁니다. 잊지 마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겁니다."
 
- 코난 오브라이언

나도 저 이야기를 듣고, 매사에 시니컬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있다. 냉소적으로 포기하고 모른척 지나치지 않으려 신경스면서 생활한다.

하지만, '감정조절 불능자'들에겐 시니컬해질 수 밖에 없다. 그냥 넘어갈 수 밖에.


화가 나셨군요.

제가 비켜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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