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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30. 2021

부러졌지만 풀업을 하고 싶어요 5

여기까지가 올 2월 말의 일이었다.

수술 이후 벌써 4개월이 흘렀다.

담당의는 아주 당연하게도 풀업은 절대 안된다고 했고, 반년 지나서 '매달리기'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조차 상태보고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다. (그 질문에, 화 안내고 차분하게 답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샤워는 샤워캡을 사서 왼팔에 씌우고 했다. (요새 좋은 제품이 많다. 깁스해도 샤워, 충분히 가능하다.) 머리감기도 한손으로 가능한 전문가가 됐고, 세수/면도 모두 한손으로 샥샥 잘 했다. 밥은 오른손으로 잘 먹었고, 옷은 주로 큰 반팔티를 입었다.(추우면, 그 위에 얇은 셔츠나 코트를 걸쳤다. 본의 아니게 멋쟁이인 척 함.) 공공장소나 대중교통에서는 오른팔로 왼팔꿈치를 감싸 보호하며 조심조심 다녔고,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그러면서 조금씩 팔을 굽히는 연습도 하고, 재활 비슷한 운동도 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팔이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면서 희열도 느꼈다.


지금은 보호대도 안차고, 잘 다니고 있다. 팔도 대부분 잘 굽혀지고, 이렇게 타이핑해서 글도 쓸 수 있다. (인간의 자연 치유 능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팔을 쓸 수 있다는 것' 의 감사함. 같은 낭만적인 교훈보다는. 인간사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해 잘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살면서 팔이 부러지는 경험은 많지 않겠지만, 예기치못한 상황에 마주쳐 당황하게 되는 경우는 심심찮게 맞닥드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렇지, 이런 일도 생길 수 있지. 어떻게 계획대로만 되겠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라고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고 슬플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을꺼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거고. 그게 부처님이 하셨던 고행의 이유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만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근본적으로 깨닫지 못한다면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밖에. 인간사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부분이 쉽지 않다.

인생은 모멸과 번뇌를 받아들이는 과정일 뿐. 수천,수만가지 감정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교차하는 '나'라는 존재는 사실 무의미한 것이다. 힘든 날도 있고, 어려운 고비도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런 일이 있구나'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교훈을 얻고, 극복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 그 과정을 인생이라고 보면 어떨까.


고작 팔 하나 부러진 것 가지고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하지만 길가다 마주친 고양이 한마리한테도 뭔가 배울 수 있는게 인생 이라고 했다. 인생의 변화무쌍함에 대해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흘러가는 섭리에 반하지 않는다. 일희일비 하지 않기로 한다. 이번 사고로 만나 나에게 도움을 준 담당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소중한 나의 가족들, 친구들, 직장 동료들. 그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나도 또한 그들을 돕고, 세상을 '선'하게 만들 수 있다면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굳이 다른데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


https://brunch.co.kr/@dontgiveu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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