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이 쏟아지는 전장.
이 참혹한 현장에 이등병인 '마이클'과 '찰스'가 있다.
이등병 마이클은 지시받은 목적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타겟이 되는 좌표에 도달하기 위해 보병인 마이클은 열심히 뛴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넌다. 지뢰도 터지고, 총알이 날아오며, 포탄이 쏟아지는 기나긴 길을 열심히 뛰어 목적지에 도착한다. 같이 이동하던 소대원 중 한명은 총알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살아남은 게 천만다행이다.
같은 이등병인 찰스도 마이클과 같은 소대원이기 때문에 목적지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찰스는 대대장의 아들이다. 대대장은 찰스를 수송기에 태워 보낸다. 단, 목적지에 활주로는 없기에 낙하산 점프를 해야한다. 하지만 그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 중간에 만날 수없이 많은 난관들은 가볍게 비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찰스는 수송기에서 꿀잠을 자다가 낙하산 점프를 한다. 그는 목적지에 톡 하고 안전하게 내려앉는다. 낙하산이다.
(보통, 위에서 꽂아넣는 보직자를 낙하산이라고 부르지만, 이 글에서는 보직이 있건 없건 형님찬스로 쉽게 입사하는 프리라이더 들을 지칭한다.)
세상의 수 많은 회사에도 마이클과 찰스가 존재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생판 모르는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작성해, 몇 번의 면접을 거쳐, 난생 처음 보는 조직장 및 팀원들과 같이 일해야 하는 김대리(마이클)가 있다.
친한 형님과 저녁에 술 한잔하며, ‘야, 나 믿고 편하게 지원해~ 어차피 내가 뽑는거니까 걱정마라 ㅋㅋㅋ’ 라는 대화를 나눈 후, 형님이 조직장으로 있는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작성해, 형님과 그 부하직원들이 보는 면접을 거쳐, 형님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합류한 박차장(찰스)이 있다. 형님과 동생, 믿음으로 가는 브라더십.
전쟁에 참가한 마이클과 찰스처럼 김대리와 박차장 두 사람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관뒀다'는 위험을 무릅쓴 도전을 했다.
낙하산으로 톡 떨어진 이등병 찰스가 '나도 목숨걸고 전쟁에 참여하고 있잖아! 낙하산 타는게 얼마나 겁나는지 알아?!! 높은데는 무섭다고!!‘ 라고 징징 항변하는 것처럼. 박차장도 '나도 다니던 직장을 관뒀잖아! 사직서 쓰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이직사유 둘러대기도 귀찮다고!!' 라고 외친다.
그러셨구나.
쉽지 않은 선택을 하셨구나.
박차장님, 장하시네요.
박수. 짝짝짝.
하지만 일반 입사자인 김대리와 낙하산인 박차장, 그 둘은 전혀 다르다.
김대리는 처음 만나는 보스에게 밑바닥부터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반면,
박차장은 원래 친한 형님과 점심식사와 담배타임을 같이 하며 '형님! 내 실력 알잖아요~ 믿음으로 가는거지~' 라며 존재를 어필한다.
보통, 낙하산 박차장들은 태도부터 다르다.
'나는 너희 조직장에게 실력을 증명받아 스카웃 된 존재로 너희완 달라. 짜식들아. 이 누추한 곳에 너희를 가르치려고 왔다고.‘라는 자세로 행동한다. 특히 연차가 어느정도 있는 시니어일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자신은 무지한 중생들을 관리하러 온 매니저라는 태도로 행동한다.
운영업무 같은 어려운 실무는 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프로젝트나 업무에 기술적인 멘트 한마디씩 얹고, 코드 관련으로 충고 몇 마디 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혹은 운영과 큰 상관없는 = 쉬운 개발건을 맡아 직접 코딩한다. 로컬이나 개발계에서 뭔가 하는 듯한 느낌만 주고, 3,4개월이 넘도록 제대로 된 산출물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친한 형님(aka 조직장)은 “야, 잘하자~“ 라고 웃으며 어깨를 툭툭 쳐준다. (조직원들 끼리 존댓말을 써야 하지만,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서로 반말로 대화하는게 킬포)
기존 조직원들은 좌절하여 침묵한다.
낙하산은 늘 나타난다.
회사가 평판이 좋지 않아, 외부의 능력자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더욱 자주 나타난다.
위가 반복된다.
물론 낙하산이 전부 최악은 아니다.
낙하산 찰스가 역대 최고의 스나이퍼로 적군을 휩쓸고 다닐 수도 있다. 최고의 스나이퍼라면 당연히 전용 수송기로 모시는 것이 맞다. 극진한 대접을 해줘야 한다. 타사의 핵심 인재라면 면접 절차를 스킵해서라도 모시고 올 이유는 충분하다. 그게 맞다. 낙하산이라고 모두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폐급 낙하산을 구분할 수 있을까?
낙하산에는 두 종류가 있다.
쉽게 입사한 만큼, 어떻게든 실무로 결과를 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필사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고급 낙하산과
자기를 꽂아 준 조직장(브라더 형님)을 믿고, 적당히 일하는 척(경력이 있어서 업무 포장은 잘한다.) 슬슬 시간을 보내는 낙하산으로 나뉜다.
전자는 매사 헌신하고 희생한다. 낙하산이라는 오명을 벗기위해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찾아’ 남들보다 몇배로 노력하고 결과를 내, 결국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량보다 태도의 문제다.) 이런 낙하산이 합류하면, 그의 통찰력 있는 경험과 훌륭한 태도로 팀은 활력을 얻고, 쇄신할 수 있다. 긍정적인 기운과 파이팅을 팀 내에 은근히 전파한다. 정체된 분위기를 바꿔놓는 것이다. 그 결과는 결국 좋은 성과로 나타난다.
후자는 거드름피며, 어려운 일은 손대지 않으려고 하며 남들에게 시키고, 이거해줘 저거해줘 요구하며, 실무에게 감놔라배놔라만 한다. 하지만 연차가 있어 약삭빠르다. 윗선에 잘 보일 수 있고, 일정에 쫓기지 않으며, 그럴 듯하게 포장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척’ 한다. 광파는 일을 하는거다. 연차나 직급에 따른 팀내 역학관계를 잽싸게 파악, 만만한 사람들에게 슬쩍 지시하고 명령하며 통제하려 한다. 희생? 헌신? 천만의 말씀. 때론 주니어들을 붙잡고 그럴듯한 기술이나 경험 얘기를 해주며 리스펙을 수집한다.
나는 낙하산으로 회사를 옮긴 적이 없다.
대단하고 고귀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겁나고 무섭기 때문이다.
나를 불러주신 소중한 분들의 평판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면, 일반 경력 입사자보다 10배 아니 100배로 노력하여 존재와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 헌신과 희생을 해야 할 생각에 덜컥 겁이나, 쉽게 낙하산으로 회사를 옮기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아직 능력에서, 태도에서 준비가 부족하다.
낙하산은 우리 주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금까지 내가 몸담았던 모든 회사가 그랬다.
조용히 관찰하자.
썩은 낙하산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결국 비슷한 태도와 실력의 사람들로 팀은 채워질 것이고, 그것이 조직의 장래와 더 나아가 회사의 존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낙하산은 또 다른 낙하산을 데려온다. 어떤 신생 조직은 절반 이상이 같은 회사 출신인 경우도 있다. 새로 경력 입사자가 합류했다면, 백그라운드를 알아보자. 숨겨진 재미있는 히스토리들을 많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용히 관찰해보자.
우리의 미래가 걸려있는 일이니까.
그나저나 궁금하다.
당신은 최근 어떤 의미있는 결과물을 내놓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