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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Nov 25. 2022

네, 터키에 혼자 왔습니다 1

2022.11.05 (앙카라)


1일차


갑자기 주어진 긴 휴가.

아내는 고맙게도 열흘짜리 터키 패키지 여행을 예약해주었다. (터키의 국명은 얼마전 튀르키예로 바뀌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터키가 익숙하다. 이 여행기에서는 터키라고 부르기로 한다.)


혼자 떠나는 유럽 패키지 여행은 세번째다. (브런치에 앞의 두 여행 모두 정리해 두었다.) 처음보는 누군가와 방을 같이 쓸 수 없는 내 성격을 잘 아는 아내는 싱글룸차지를 지불해 주었다. 맞다.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혹시나 무례하고 막돼먹은 사람과 같은 방을 열흘간 쓰게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몸이 아프다.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중이지만 여전히 따뜻한 날씨에, 이상기온이다 어쩌다 뉴스에서 많이 떠들던 요새였다. 하지만 오늘 갑자기 추워졌다. 뜬금없이 영하로 떨어진 날씨.

정오(12시)까지 인천공항 약속된 장소에 가야 한다.

넉넉하게 9시에 집을 나섰다. (나는 늦어서 헐레벌떡 움직이는 것을 그 무엇보다 싫어한다.)

도로 사정에 영향받아 도착시간을 예측할 수 없는 버스는 믿을 수 없다. 공항철도를 타기로 한다. 홍대입구까지 2호선으로 이동해서 갈아탄다. 큰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탔지만 이동이 딱히 불편하진 않다.


하지만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니, 덥고 땀이 난다. 밖은 영하인데 말이지. 덥다가 춥다가 하면 컨디션이 나빠진다. 가볍게 입고 벗을 수 있는 경량 패딩이 이번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공항에 도착, 티켓팅을 하며 짐을 부치고 점심으로 양곰탕을 먹었다. 공항에선 괜히 한식이 먹고싶다.

에어프레미아 수속은 패키지 여행객들로 가득이다. 이 많은 사람이 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는 걸 이때 눈치챘어야 했다.


도장찍어주는 출국심사는 없어졌다.

여권스캔, 지문스캔으로 간편하게 출국심사는 끝난다. 그 많은 심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일자리가 하나 둘 사라져간다.


타고 갈 비행기가 준비중이다


탑승구로 들어간다. (항공사 직원분들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16:10 터키 앙카라를 향해 비행기가 출발한다.

도착지까지 거리는 7709km, 도착지까지 소요 시간은 10시간 44분, 예상 도착시간은 터키시간으로 저녁 22:00

중간쯤, 기록할 겸 좌석 모니터를 찍었다.


기내식 첫 끼는 오징어 덮밥이다. 입이 텁텁해 제로콜라 하나를 3,000원에 추가 결제해서 마신다. 저가 항공은 식사를 제외한 모든 것에 추가 결제가 필요하다. 예전엔 긴 여행을 출발하자마자 술 한잔 마시고 잠을 잤었다. 그게 시간도 잘 가고 좋았었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 컨디션 조절 때문에 꺼려진다. 술은 마시지 않기로 한다.


기내 영화는 한국 영화 뿐이다. 10편 남짓. ‘기적’ 30분쯤 보다가 따분한 전개에 껐다. 언제 봐도 재밌는 이선균의 ‘끝까지 간다’ 와 류준열의 ‘돈’을 끝까지 봤다. 소설은 잭 리처 '31시간'을 챙겨갔다. 이번 여행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닌 리 차일드를 선택했다. 여행이 길다. 아껴서 읽어야 한다.


해가 지는 방향 쪽으로 계속 날아가니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길다. 시간과 장소는 역시 상대적이다. 적당한 속도로 계속 서쪽으로 날아가면 평생 노을만 볼 수도 있겠구나.


어느덧 비행기 밖이 깜깜하다.

달이 밝다.


기내식 두번째 끼니는 간장 닭고기 덮밥. 그냥저냥 먹을만 하다. 터키에서 닭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을 줄 알았으면 다른 메뉴 고를 껄 그랬다.


나는 비행기 착륙할 때 기압차가 있으면 귀가 아픈 고질병이 있다. 어느 정도냐면, 한쪽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이다. (거의 기절할 정도다.) 그래서 늘 약을 준비한다. 착륙 한 시간쯤 전에 미리 준비한 약을 먹었다. 절대 빼먹으면 안된다.


터키의 도심이 내려다보인다.


드디어 도착했다. 총 10시간 50분 소요.

비행 내내 잠은 안잤다. 영화 보고 책 읽었다.

그 동안 화장실은 딱 한 번 갔다. 안 가고 싶었던건 아니고, 그냥 참았다. 창가에 앉다보니 숙면을 취하고 있는 옆사람을 귀찮게 하기도 싫었고, 나도 귀찮았다. 다음엔 통로에 앉아야지.


터키 앙카라 공항.

수하물 가방 나오는 게 늦다. 늘 인천공항과 비교하면 안된다고 다짐하면서도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천공항이 역시 최고다. 한참을 기다려 가방을 찾아 공항을 나오려는데, 갑자기 전 인원 가방 엑스레이 검사를 한단다. (방금 전까진 안했잖아.) 다들 투덜대면서 엑스레이 앞에 줄을 선다. 밖에 나왔는데, 일행이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뭔가(?)로 걸려서 입국하지 못하고 있단다. 공항 앞 길에서 그냥 기다린다.


공항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앙카라 공항은 저녁 10시 반인데 사람이 없고 한적하다. 그냥 오래된 고속버스 터미널 느낌이다(역시 한국 공항의 위대함은 외국에 나와봐야 알 수 있다)


이번 패키지 여행에 우리 팀은 34명이 같이 움직인다. 많다. 너무 많다. 하지만 내 탓이다. 누구 탓을 할 건 아니다. 여행 상품 설명서에 '최소 출발 인원 : 15명' 이라고 되어있어 20명 정도를 한 팀으로 구성하려나 보다 라고 지레짐작한 내 탓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런 팀, 총 4개가 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모든 장소, 식당에서 동선이 겹쳐 서로 빨리 가려고 속도를 내고 경쟁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예를 들면, 식사를 모두 같은 식당에서 하다보니 간발의 차로 조금 늦은 팀은 다른 앞 팀이 모두 식사를 끝낼 때 까지 식당 앞 길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당연히 시간 낭비에 체력 낭비다. 다른 팀보다 먼저 움직이기 위해 관광을 빠르게 끝내고 버스 이동에 서두르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식의 상황은 여행 내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한시간을 공항 앞에서 기다렸다.

숙소까지 다시 버스로 한 시간을 가야 한다던데, 현지가이드(터키인)분을 따라 버스를 타고 이제서야 호텔로 이동한다. 피곤하다.


첫 호텔, 일부 글자에 불이 꺼진 간판이 인상깊다.


프레스티지 호텔이다. 호텔 안은 난리다. 아까 이야기한 4개의 팀이 호텔 로비에 바글바글하다. 모두 한국인이다. 지금부터 이기주의의 끝을 보이기 시작한다. 패키지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은 인간 욕심과 욕망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키를 받고 서로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캐리어가 부딪히든 말든 서로 밀치고 뛴다.


방 컨디션은 평범하다.

물론 여행 상품 소개서에 나와있는 숙소 소개는 이렇다. '전일정 특급호텔 숙박'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패키지 여행이 다 그렇지. 지금까지 모든 패키지 여행이 5성급 특급호텔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정말 별의 별 숙소에서 다 묵었었다. 알고도 속는다고나 할까. '특급호텔'이라는 단어의 해석을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벌레만 안나오면 된다.


내일은 4/5/6이다. (이건 패키지 여행에서 통하는 숙어로 4시 기상/5시 조식/6시 출발을 뜻한다. 앞으로 이 여행기에서도 4/5/6 , 4:30/5:30/6 등으로 표현하겠다.) 4시 기상은 이런 패키지 여행에서는 흔한 일이다. 익숙하다. 괜찮다. 조식은 -2층. 방에가면 짐 풀기 전에 방체크부터 해야 한다.(불켜지는지, 물나오는지, 물내려가는지 등) 안그러면 짐을 다 풀고 샤워하려고 들어갔는데 따뜻한 물이 안나오는 대참사를 겪을 수 있다.


얼른 샤워하고 눕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큰일이다.


1일차 끝.



https://brunch.co.kr/@dontgiveu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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