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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Nov 26. 2022

네, 터키에 혼자 왔습니다 2

2022.11.06 (카파도키아)


2일차


눈을 떴다.

여기는? 아 호텔이구나.

맞다, 앙카라, 터키에 왔지.

조금 잤나보다. 시차 때문인가, 깊게 잘 수 없다.

지금 몇 시지?

새벽 3시.

1:30쯤 잠들었으니 한 시간 반 정도 잤구나. (이걸 잤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은 4/5/6로 4시 모닝콜이지만 다시 눕는다고 잠이 올 것 같진 않다.

그냥 일어나서 샤워한다.

이건 꿈인가. 쏟아지는 샤워기 물줄기 아래에서 비몽사몽이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조식이 궁금해서, 먹으러 갔다. (나는 호텔 조식을 매우 좋아한다.)


역시 그렇듯, 뭐 없다.

그냥 뱃속에 뭔가를 넣는다는 정도.

바게트빵, 삶은계란, 감자튀김, 홍차


말 그대로 허기만 달랬다. (사진은 못 찍었지만, 치즈를 종류별로 갖다놨던데, 나중에 먹어봤더니 맛있었다.)

사실, 밥보다는 잠을 못자서 커피를 너무 마시고 싶었다. (내가 아무리 조식을 좋아한다해도, 새벽 5시에 배가 고프진 않았다.) 하지만, 터키는 커피보다 홍차에 진심인 나라였다. 홍차는 따뜻하게 준비가 되어있지만, 커피는 그냥 믹스커피를 갖다놨더라. 맙소사.

'커피는 알아서 타 드세요'


조식에 그 많은 여행팀이 동시에 쏟아져 들어오니, 음식이 금새 동났고 다시 채워지진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리니 음식 수급이 어려운건 당연하다. 그냥 다시 방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직업병인지 직관적인 엘리베이터 UI가 마음에 들었다. 로비층, 지하1층 그런 복잡한 표시 없이, 숫자로만 단순하게 표현해놨다.


밖에 잠시 나가봤다.

아침 날씨가 춥다. 영하 1도.


버스에 탑승하고 드디어 첫 일정을 출발한다.

이 곳 앙카라는 터키의 수도다. (터키 수도는 이스탄불이 아닙니다) 그 유명한 터키의 개국영웅이자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파샤' 의 영묘가 있는 곳이다. 모든 타국 대통령이 와도 이스탄불이 아니라 앙카라로 와서 그의 무덤에 참배를 해야 비로소 일정이 시작될 정도라고 하니. 터키에서 '무스타파 케말파샤'의 의미는 거의 종교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앙카라 시내로 가서 간단히 구경한다.   


한국공원(한국전쟁 참전용사비가 있는 곳)에 들른다.

터키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는, 터키군이 단순히 한국전쟁에 참전해서가 아니다. 이슬람교는 이장이 금지되어있어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 전사자의 유해가 부산 UN묘지에 그대로 모셔져있다. 그런 의미에서 터키 사람들에게 한국은 부모님의 유해가 모셔져있는 제2의 고향, 그래서 형제의 나라인 것이다.

한글로 쓰여진 한국공원 과 기념탑 (한국의 전통탑과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버스가 앙카라를 빠져나가며 '무스타파 케말파샤' 영묘 앞으로 지나간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만들어놨다.


이제 카파도키아로 이동한다. (버스로 4시간 이동할 예정)

중간에 휴게소에서 커피한잔 했다. (드디어!) 23리라다. 오랜만에 먹는 진짜 커피다.

참고로 현재 환율은 1터키리라가 75원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23리라는 1,700원정도 (작은 종이컵 크기였으니, 싼 가격은 아니다.)


잠깐 터키 경제 이야기를 해보자.

터키는 최근 환율이 박살났다. 코로나 전에 한국돈 400원대였던 1터키리라가 지금은 70원대로 추락했으니 말 다했지. 대한민국의 IMF가 생각나기도 하고 뭔가 짠하다.

여기도 집 값이 떨어져서 난리인데, 집을 아무도 안사서 외국인들이 2억짜리 집을 사면 시민권을 주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2억이면 이스탄불 바다 앞쪽 40평대 집 구매가 가능하다. 환율이 박살나서 그렇다. (뭐 요새 우리나라 상황 생각하면 남의 걱정 할 때가 아니긴 하다. ㅠㅠ)


환율이 떨어지고 금리가 높아지니, 현재 터키 예금 금리가 21%까지 나와있다. (대출금리는 11%까지 올라갔다.) 현금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부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현재 터키 대통령이 그런 정책을 펴고있다.


전체 국민의 63%가 농경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데 (대부분은 밀농사) 우리나라 70년대 사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대담하고 개혁적인 변화가 필요할텐데, 부디 잘 되어서 터키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여하튼,

휴게소에서 마신 23리라짜리 커피는 맛있었다.


데린쿠유에 들러 지하도시 투어를 한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로마시대 박해받던 그리스도 교인들이 로마 군인들을 피해 120년간 살았던 지하동굴이다. 지하 8층까지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최장 28km 떨어진 곳까지 팠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지하에서 동물을 사육했으며 우물을 만들고 층간 연락을 위한 통신구멍을 뚫는 듯 체계적인 사회를 구축했다. 불빛하나 없는 곳에서 시각을 잃은 채 살았으며(이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게 최근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에서는 불을 켜고 살았던 것으로 표현되었더라), 낮은 동굴에서 살면서 곱추로 변해갔다고 한다.(실제로 들어가보니 허리를 펴고 이동하기 어려웠다.) 로마 군인들은 이 지하도시에 교인들을 제압하러 들어갔다가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란 얼마나 강한 것일까. 인간을 이러한 곳에서 견디고 살게 할 정도라니.

개미굴 같은 지하 도시의 지도


벽을 일일이 곡괭이로 파내어 굴을 만들었다.
미로처럼 얽혀있어 자칫 길을 잃으면 빠져나오기 힘들 듯.


점심을 먹으러 이동한다.

점심은 항아리 케밥. 갈비찜 비슷한 맛이다. 대한민국 갈비찜의 위엄을 다시한번 느꼈다. 한식은 정말 대단하다.

항아리 케밥. 갈비찜 맛.


우치 히사르(비둘기 골짜기). 사진을 보면 비둘기 집처럼 절벽에 동굴이 빼곡하게 만들어져있다. 예전 사람들이 저 동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인간은 자연을 절대 가만두지 않는구나, 어떻게든 이용하는데 그게 과연 지구에 도움이 되는걸까?

절벽에 빼곡한 동굴들


옵션으로 카파도키아 지프차 투어를 택했다. 지프차로 아래 사진에서 보게 될 독특한 카파도키아의 지형들을 차례로 이동하며 구경할 수 있는 상품이다. 구형 지프차를 타고 오프로드로 달리는 기분을 마음껏 느끼게 해 준다. 얼마나 마음껏 느끼게 해 주냐면, 창문이 안닫혀서 엄청난 먼지가 그대로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평생 먹을 먼지를 다 마시게 해 주었다. 창문만 닫히는 차였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지. (나중에 숙소에 돌아왔는데 속옷에까지 먼지가 쌓여있더라.)


리틀 그랜드캐년 (괴레매 파노라마)은 사진을 보는게 더 이해가 빠르겠다. 바람에도 쉽게 풍화가 일어나는 사암이 시간이 흘러가며 이런 독특한 지형을 만들어냈다. 버섯모양의 바위들이 신기하다. 어디를 봐도 신기한 풍경들이 펼쳐져있다. (영화 '마션'과 '스타워즈'를 이곳에서 찍었다고 하는데, 그럴만하다 정말로)

마치 누가 얹어놓은 듯 한 버섯 모양의 바위들
높이 올라가서 찍어봤다.



카파도키아 최초의 교회라고 한다. 바위에 동굴을 파서 만들었다. 종교의 힘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최초의 교회. 저 높은 곳까지 동굴을 파놨다.
이렇게 넓은 동굴(예배당)도 모두 곡괭이로 파서 만든거다.



구경을 마치고 터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쫄깃쫄깃하다. 줬다뺐었다 하는 터키 아이스크림 특유의 퍼포먼스는 없었다. 담담하게 주시더라.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감사합니다.

터키 아이스크림


파샤바 계곡은 입장료를 받고 공원처럼 꾸며놓은 곳인데, 저 위의 사진들(버섯바위) 같은 풍경 뿐이다.

계속 똑같은 풍화작용 결과만 보고 있노라니 여기가 화성처럼 느껴진다. 이제 충분히 봤다. 역시 감흥은 한두시간이 적당하다.

저 아래쪽 독특한 무늬는 풍화작용으로 자연 생성된 것이다. 신기함을 넘어 기묘하다.


오늘 밤을 보낼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 묵을 호텔


방 컨디션은 별로다. 사진으론 안찍었지만 벽이 공사가 덜되어 구멍이 그대로 뚫린채로 내장재가 다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그냥 하룻밤 잠만 자면 된다.

오늘 묵을 방 (패키지 여행에서의 방은 어차피 하루짜리다. 잠 잘 자리만 있으면 된다.)


짐을 정리하고 호텔 앞 마트에 한번 들러본다. 현지 생활상을 보기엔 마트만한 곳이 없지.

다양한 과일이 알록달록하다. 싸고 신선하다. 터키는 농약을 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모든 건 유기농.

알록달록 신선한 과일들
빵은 알아서 집게로 집어 봉투에 담아가 계산한다.
각종 음료수가 아주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오른쪽은 치즈와 햄 판매대. 종류가 정말 많더라.
깔끔학고 잘 정돈되어 있다. 관리자를 칭찬해줘야 할 듯.



탄산음료와 과자 하나를 사서 계산하려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는데, 여자 꼬맹이(10살 정도) 한 명이 블랙핑크가 표지 모델로 나온 잡지를 손에 들고 줄을 서있다. '블랙핑크 좋아해?' 라고 물어보니, Love한단다. 이 터키 시골에 사는 꼬마가 블랙핑크를 Love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케이팝의 인기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저녁 식사는 호텔 뷔페다.

6:30에 호텔 식당으로 간다. 외국 뷔페는 왜 항상 종류는 많은데 먹을 게 없는 걸까. 나는 한국의 엄청난 뷔페 구성에 길들여져 있는걸까. 뷔페에 큰 대파는 왜 가져다 도대체 놨던걸까. 대파 그대로 씹어 먹는건가. 아직도 궁금하다.


밸리댄스를 관람한다고 한다.(갑자기?) 저녁 8:15 로비에서 만나 버스타고 쇼장으로 5분 이동한다. 둥근 무대 주변 식탁에는 전부 한국인들 뿐이었는데,(바로 그 4개의 팀 맞다. 여기는 혹시 한국인가 싶다.) 엊그제 터키에 도착해 시차적응을 하지못해 반쯤은 눈들을 감고 있었다. 기묘한 음악과 무용단의 춤이 흡사 종교의식을 연상시켰다. 나도 많이 졸렸다. 지금이 한국시간으로 새벽 3:30다. 이 시간에 밸리댄스 공연을 보고 있자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확신할 수 없었다.


내일은 6/7/8로 버스 이동만 8시간 이라고 한다. 단단히 각오하자.


숙소로 들어오자 마자 쓰러져 잠들었다.

잠든 기억도 없이.



https://brunch.co.kr/@dontgiveu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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