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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08. 2023

이 ㅆㄴ의 ㅅㄲ가

폭력의 시대를 마무리하며


나는 농구를 좋아한다. 예전엔 직접 하기도 했으나, 요새는 같이 할 사람도 없을 뿐더러 체력도 받쳐주지 않아 NBA경기를 종종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어린 시절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학교와 기아가 혈투를 벌이던 시절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기술과 실력면에서 쟁쟁한 스타들이 포진해 있었고, 몸을 아끼지 않고 뛰는 모습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옛날 농구대잔치를 뛰었던 여러 스타플레이어들이 현재 프로농구 감독이 되어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잘 안봐서 모르겠다. 누가 어느 팀에 있는지) 그러던 와중에 유튜브에서 몇가지 추천영상이 떠서 보게되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먼저 아래 영상을 보자. (시청에 1분 24초 소요)

https://youtu.be/pO1CwDAIMrU

2014년 2월 16일 KGC 전

13점이나 앞서 이미 승리가 결정된 상황이었다. 3분 밖에 안남았었고. 근데 굳이 작전타임을 요청해서 저렇게 한거다. 함지훈은 팀내 기여도가 굉장히 높은 선수로 알고 있는데, 다른 선수들 앞에서, 게다가 공중파 생방송 중인데 성인에게 모욕을 준다. (어린이한테도 입에 테이프를 붙이라고하면 학대가 될텐데) 함지훈 선수는 결혼도 했고, 심지어 자녀도 둔 상태였다. 그가 테이프를 들고 머뭇머뭇거리자 감독은 결국 한마디 한다.

"붙여 이 새끼야!"


혹시

정말 혹시

감독은 함지훈 선수의 '구강호흡'(입으로 숨을 쉬는) 방지를 위해 입막음 테이프를 붙여준 것일까?

아래 사진의 '이선균'이 '최우식'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정하게 말이다.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

참고로 이선균씨는 저 예능 이후에 결국 해당 제품 광고 모델이 되었다. (이 글은 광고 아닙니다.) 차라리 저 위 농구감독님을 제품 모델로 썼으면 어땠을까? '프로농구 선수도 입에 테이핑 합니다!' 이렇게 말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아무튼.

함지훈 선수의 굴욕적인 인격모독 '입 테이핑' 사건은, 8년전에 벌어졌던 일이라고 한다. 오래됐다. 이젠 괜찮겠지.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추천 영상이 또 하나 떴다. (유튜브님 나한테 대체 왜 자꾸 이러십니까) 이번 건은 비교적 최근인 1년 전 상황이다. 아래 영상을 보자. (시청에 1분 3초 소요)

https://youtu.be/Q7HXpgWbfdk

2022년 1월 23일 KT 전


별거 없는 디렉팅이다. "영리하게 해. 영리하게"

"니가 이리로 가고, 너는 여기서 패스해서, 이렇게 슛. 혹시 여기서 막히면 저쪽으로 돌려서 돌파. 오케이?" 이런 식의 구체적인 지시도 아니고, "다들 힘들겠지만 파이팅하자! 할 수 있어!" 이런 식의 사기 충전도 아니고, "영리하게 해 영리하게" 이게 무슨 지시인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타인의 지시로 즉시 영리해질 수 있는걸까? 영리해지라고 하면 영리해지는건가? "이기는게 중요해!" 이기는게 중요한 건 나도 안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알려주셔야 할 듯. 나는 농구를 좋아하지만, 저런 지시의 효과는 도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이상한 지시를 하고 있는데, 선수가 자기를 쳐다보지 않는다고 갑자기 한마디 한다.

"이 썅놈의 새끼가"

귀를 의심했다. 생방송 카메라가 바로 앞에 있고 마이크가 동작 중이라는 걸 알텐데 공개적으로 저런 욕을 한다고? 그걸 또 해설자는 '선수들의 집중력을 위해서' 라고 옹호한다. 맙소사. 저렇게 많은 사람 앞, 공개된 장소에서 욕설을 퍼부어서 정신 차리게 만드는 건 군대에서도 금지하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서 성장을 돕는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아 경기력을 높인다'가 아니라,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욕설을 해 정신을 차리게 만든다'니.


물론 비공개 훈련이나 개인 교육 자리에서는 지도자의 스타일에 따라 어느정도 강하게 푸시할 수도 있다고 본다. 때때로 저런 코칭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는 권선징악을 믿지 않기 때문에, 도저히 인간으로 봐줄 수 없는 동물들에게는 그에 준하는 강한 (그것이 육체적인 폭력이라도) 코칭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가장 가까이에는 '학교 폭력 가해자'들 같은 부류가 있겠다. 이건 할 말이 많지만, 아무튼, 그건 이 내용과 조금 다른 영역이니.


실시간 방송에서 저 정도인데, 카메라와 마이크가 없는 상황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기 무섭다.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욕설을 들은 이우석 선수는 99년생, 저 당시 나이가 22살이다. 가스라이팅이 별게 아니다. 타인 앞에서 공개적으로 X망신을 당한 주니어는 '아, 내가 못해서 그렇구나ㅠㅠ TV에까지 중계되다니, 그 장면을 본 수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난 욕먹어도 싸 ㅠ' 이렇게 생각하진 않을까. 자존감은 낮아지고, 욕을 먹어도 멍한 상태가 된다. 결국 저 선수도 나이가 들어 지도자가 될테고, 똑같은 방식으로 후배를 가르칠 가능성도 높아진다. 악순환이 계속된다.


NBA 감독들도 저렇게 할까? 예전 시카고 불스를 이끌었던 필 잭슨 감독은, 공감과 배려로 행동하는 젠틀한 명장으로 유명했는데, 그는 저렇게 못해서 안한걸까. 강압적으로 지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성 강한 선수들을 이끌며 NBA우승을 수차례나 일궈냈다. 심지어 그는 '마이클 조던'을 컨트롤 해야 했다! (조던은 필 잭슨이 감독에서 물러나면 자신도 은퇴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잭슨 감독에 대한 존경을 수시로 드러냈다.)

The Last Dance, season 1, episode 4, 2020. Phil Jackson and Michael Jordan. Netflix.


그가 지도했던 선수들 중에는 악동들이 많았는데, 그 중 단연 최고는 '데니스 로드맨'이었다. '데니스 로드맨'은 경기 중에 많은 기행을 했는데, 필 잭슨 감독이 작전타임 TV 카메라 앞에서 데니스 로드맨에게 '이 썅놈의 새끼가' 라고 욕을 퍼부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그가 방송이 아닌 비공개 팀 훈련에서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필요하다면 욕도 하고, 소리도 쳤을 수 있다. 물건을 집어던졌을 수도 있다. 그런 식의 코칭도 반드시 필요하다.(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영화 '머니볼'의 얼음통 집어던지는 장면을 좋아한다) 생면부지의 타인들 앞에서 모욕을 주지는 않았다는 거다.


존경은 불러 일으키는 것이지, 강요로 받아낼 수 있는게 아니다. 필 잭슨과 시카고 불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다큐멘터리를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농구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더더욱.

https://www.netflix.com/kr/title/80203144


역시 수 차례 NBA 우승을 차지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티브 커 감독은 늘 웃는 얼굴이다. 선수가 실수를 해도 전세계에 방송되는 경기 중 F워드를 날리진 않는 것 같다. NBA모든 경기를 보는 건 아니기에 내가 모르는 상황도 있겠지만, 적어도 카메라 앞에서 선수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했음에도 선수들을 잘 지도하고, 여러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카리스마는 폭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Golden State Warriors head coach Steve Kerr(right) talks to Stephen Curry(30), USA TODAY Sports


예전 한국에선 스포츠 지도자의 기본적인 코칭 폭력이 암묵적으로 용인되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것이었다. 욕하고 얼차려에 때리기까지. 때리면 근력이 높아지고, 스피드가 올라간다는 식이었다. 야만의 시대였다. (여기서 굳이 한국 체육계의 전반적인 코칭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리더들은 깨달아야 한다. (특히 리더를 임명하는 최상위 경영진들은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폭력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업무 지시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아무런 성과를 낼 수도 없다. 기껏해야 ‘Not bad’에 머물뿐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Great'을 기대할 수 없다. 그저 하청업체 관리자 수준일 뿐.

하물며 그런 문화에서 조직원의 성장은 기대해 무엇하랴.


'영리하게 해' , '이기는게 중요해' 이런 지시도 비슷하다.

IT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장애 없게 배포해' , '문제 없게 진행해' 이런 지시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지? 장애 없이 배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을 나눠보고 개선하도록 도와줘야 할 것 아닌가. 왜 장애가 나는지 리더가 물어보고, 스스로 밤을 새고 고민해봐야 할 것 아닌가. 선수를 도와주려고 애를 써야지. '말로는 사촌 기와집도 지어준다'는 속담이 있다. '이겨!' , '잘해!' , '영리하게 해!' 말로는 뭔들 못하랴. '우주선 만들어!' , ‘1000억 수익 내!’ 같은 말은 나도 할 수 있다.


저렇게 하면 안된다는 거다.

다들 마음 속 저 깊은 곳부터 느끼고 있잖은가.


시대가 원하는 리더상이 바뀌었다.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https://brunch.co.kr/@dontgiveu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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