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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29. 2023

제주에선 의자를 갖고 다녀요 2

2023.03.25

눈을 떴다.

잠시 뒤척이다가 시계를 본다. 4:10


미리 알아본 오늘의 성산일출봉 일출 시간은 오전 6:30.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이동 시간을 고려해야 했다. 아침 5:30에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었나보다. 4시 조금 넘어 눈을 떠, 잠을 설쳤다.


누워있다가 5:10 쯤에 일어나 간단히 세수하고 양치했다. 5:30에 집합, 카카오택시를 잡았다.

택시가 성산일출봉에서 오는 걸 보니 일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왔다갔다 하는 듯하다.


어둡다. 바닥은 젖어있다. 습하다.

다행히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다.


성산일출봉 입구에 도착했다.


성산일출봉 입구. 깜깜했는데 사진에선 왜 밝게 보이는걸까.


정상까지 어두운 계단을 30분 정도 올라갔다. 예전에 왔을 때는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찾아온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단 한명도 없다. 우리 뿐이다. 비가 내려서 일출을 보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으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온 것일까. 정상에 올라, 조금씩 밝아지는 하늘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붉은 태양을 볼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올라가는 길, 점점 말수가 적어진다.


정상에 올랐더니 정말 아무도 없다. 당연하다. 비오는 날 일출을 보러오진 않겠지.

해는 못보겠다. 구름이 많다.

그리고 춥다.

일단 의자를 펼쳐 놓고 해뜨는 방향으로 앉았다.


해가 떴다. 아니, 뜬 것 같다. 태양은 못 봤지만, 밝아졌다. 결국 일출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 시간에 맞춰 새벽 일찍 일어났다. 제 시간에 모였고, 성산일출봉 정상을 향해 열심히 걸어 올라왔다. 일출 시간에 맞춰 올바른 장소에서 기다렸다. 별거 아니라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이런 간단한 것 조차 이루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해냈다. 뭐든지 이루어내면 성장한다.


밝아진 성산일출봉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서 바라본 제주


성산일출봉 앞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아침부터 열심히 걸었더니 배가 고프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온 몸이 노곤해진다. 행복하다.

스타벅스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주제는 다양했다. 양자역학, 죽음, 아이돌, MBTI, 가치관, 패션 등등 다양한 주제로 1시간 넘게 수다를 나누었다. 그 중 양자역학을 이야기하면서 몇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나는 '관찰'을 통해 사건이 확정,결정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너무나 인간중심의 사고였다. 나는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이 없다면 우주는 존재하지 않을 것. 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우주에서 인간은 정말 하찮고 작은 존재. 인간 없이도 우주는 서로 정보를 교류하며 존재할 것이다. 인간이 '관찰'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주의 모든 존재는 '상호작용'하며 서로 정보를 주고 받고 있었다. 하다못해 그것이 그저 '돌'이라도 말이다. K는 나에게 물었다. “’본다‘라는 게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본다'라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상호작용'이라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다. 통찰을 제공해 준 K에게 감사한다.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하고 각자 방에서 조금 쉬었다.

카페 도렐에서 다시 모였다.


카페 도렐


R과 함께 나의 면팀장 이벤트에 대해 회고했다.

관련 내용은 다음 글로 이미 이야기했었다. https://brunch.co.kr/@dontgiveup/43


당시 그 사건에, 여러 원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배웠다.

1. 개발자에게 오너십 부여 미흡

2. 의사 결정상 명확함 부족

3. 당시 회사의 상황 및 정치적 역학 관계에 따른 필연적 결과


내 잘못들이 많았다. 겸허히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또한 R,K와 당시 장애가 발생했던 기술적인 원인과 해결방식에 대해서도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사람의 중요성, 그리고 리더의 자질 등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나는 많이 반성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노력해야겠다.

몇 년만에 이뤄진 소중한 회고였다. 편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웠을텐데, 솔직한 의견을 가감없이 말해준 친구들이 고맙다.


점심은 맛나식당. 역시나 믿고 가는 K의 추천이다. 예전에 혼자 왔을 때는 줄이 너무 길어 매번 포기했었는데, K는 어느새 미리 가게에 다녀왔다. 예약을 하고 왔다고 한다. K덕분에 맛집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메뉴는 갈치조림.


갈치조림. 저 진한 국물을 남기고 온게 아직도 아쉽다.


점심을 든든히 먹었지만, 근처 빵집에서 빵을 샀다. 나는 빵을 좋아한다. 밥은 밥이고 빵은 빵이다. 서로 다른 카테고리. 이 동네 로컬 빵집이 맛있다. 값도 싸고,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 여행에서도 빵을 많이 사먹었었다. 그 빵집이 여전히 영업중이다. 대형 프렌차이즈가 아닌 이런 개인 빵집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쉽진 않겠지. 버텨내고 계신 사장님께 감사하다.


의자를 들고, 스타벅스로 갔다. 각자 커피를 한 잔씩 손에 쥐고, 광치기 해변으로 간다.

광치기해변 앞 스타벅스는 일회용 컵이 없다. 다회용 컵을 제공하고, 반납하도록 강제한다. 친환경이다. 반납이 번거로운 게 문제인데, 친환경은 언제나 느리고 귀찮기 마련이지. 좀 더 편리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이건 차차 고민해보자.


광치기 해변


해변에 의자를 나란히 펼쳐놓고 앉았다. 조용히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사온 빵도 먹었다. 나는 광치기해변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멍하니 파도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 때마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피아노 독주를 배경으로 '정도전'과 주인공인 관상가 '내경'의 대화가 이어진다. 두 배우의 연기가 폭발한다. 몰입도가 높은 명장면이다. 내경의 말처럼, 나도, 파도 말고 바람을 보고싶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영상 링크를 걸어놓습니다. 안보셔도 되구요. https://youtu.be/IRDcmQN_p94


백약이오름으로 이동했다.

택시로 20분 정도 걸렸다.

열심히 올라갔다.


백약이오름. 열심히 오른다.


오름 중간에 의자를 펼쳐놓고 한참을 쉬었다. 즐겨하는 게임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나는 게임을 많이 하지 않아서 주로 들었다) 할 말이 없을 때는, 조용히 앉아 바람을 마셨다. 깊게 들이쉬면, 시원한 바람이 폐 끝까지 들이친다.

백약이오름
백약이오름


한시간 반 정도 백약이오름에서 쉬다 걷다 내려왔다.  내려와서 저녁을 먹으러 간다.


횟집으로 이동한다.

제주도에 와서 회를 먹은건 처음이다. 그 동안은 혼자만 왔었기 때문에, 나에게 식사는 그저 ’떼우는 것‘이었다. 김밥도 많이 먹었고, 빵으로 대충 해결한 적도 잦았다. 하지만 이번엔 모처럼 친구들과 왔으니, 그럴듯하게 먹고 싶었다.


주문한 모듬회는 신선하고 맛있다. 기분이 좋아 맥주를 좀 마셨다.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다.

캠프로 돌아와서 바로 기절했다.



https://brunch.co.kr/@dontgiveup/169

https://brunch.co.kr/@dontgiveu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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