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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pr 10. 2023

잘 늙어가고 있나요

당신은 어른입니까?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흥국탄광,흥국조선,흥국화학 등을 거느린 흥국그룹을 일군 성공한 사업가.

학교법인 효암학원 이사장.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보수 인사의 백그라운드 같지만, 실제로 삶을 들여다보면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많이 나오는 부분이니 각설하자. 민주화 운동에 재산 대부분을 쏟아부었다는 내용도 이제는 많이 알려졌으니. 나는 오래전 책과 신문기사를 통해 그에 대해 듣게 되었다. 주로 '이 시대의 참 어른' 이라는 수식이 붙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바로 아래 사진의 어르신, '채현국'.


뉴스타파-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2015


그는 광화문 세월호 분양소 앞, 태극기 부대 노인들을 향해 일갈했다.

저 자식들 막상 내 나이만큼도 되지도 않는 놈들이 저래요. 칠십몇 살, 막 가고 뻔뻔해져서.
늙으면 지혜로워진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농경시대의 꿈같은 소리입니다.
늙으면 뻔뻔해집니다.

뉴스타파-목격자들 4회 '건달 할배, 채현국', 2015


농경사회와 현대사회 노인의 수준 차이에 대한 아래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니 납득이 간다. 경험 중심의 세상에서, 지식과 정보 중심의 사회로 넘어가며 '습득하는' 적응을 해야하는데, 그 부분에서 실패한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농경사회에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는 겁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욕망이 커봤자 뻔한 욕망밖에 안 되거든. 지가 날 수도 없고 기차 탈 수도 없고 자동차도 못 타니까 그랬는지 확실히 농경사회의 노인네는 경험이 중요했지.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입니다. 먼저 안 건 전부 오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되죠. 이게 작동을 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하고 점점 더 욕구만 남는 노욕 덩어리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김주완 기자와의 인터뷰 중


또한 그는 젊은이들에게 이와 같이 이야기 해주었다.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
저 사람들 욕할 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저 꼴밖에 될 수 없었던 걸,
 바로 너희 자리에서 너희가 생각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쓴맛이 사는 맛> 구술 채현국‧기록 정운현, 비아북, 2015


얼마전 그가 돌아가신지 2주기가 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문득 다시 떠올렸다.


진짜 어른이란 무엇인가.


나는 요새 '제대로 늙는 것'에 관심이 많다.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더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창피한 줄 모르고 뻔뻔해지는 것, 추하게 늙는 것에 대한 공포다. 흔히 요새 언어로 이야기하는 '꼰대' 그 이상의 무언가를 깨닫고 싶다. 그게 참 쉽지 않다. 이건 비단 작금의 정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나이가 많다고 옳은 것도 아니고, 돈이 많다고 바른 것도 아닌데. 늙어가면 갈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공부하지 않으면 퇴화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임에도, 오래 살았다는 고집이 아집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동물로 변해가는 사람들이 많다. 고령사회가 되어감에 따라 그 비율 또한 높아진다.


누군가는 좀비 아포칼립스가 창궐, 좀비에게 물려 괴물이 될까봐 걱정이라던데,

나는 나이가 들며 퇴화하여 동물로 변해가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회사는 어떤가?

잠시 눈을 감고,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나이 많은' , '고직급의' 동료들을 생각해보자. 과연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과 일하고 있는지. 나이가 많다고 대뜸 반말과 명령조로 일관하며, 업무 배경등의 이해도 없이 강압적 지시를 한다거나, 본인의 세상에 갇혀 자신만 옳다는 태도로 후배들을 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은지.


선배님, 엑셀을 배우시면 됩니다. 그냥 '팡션'을 배우세요.


단순히 엑셀 '팡션'을 모르는 선배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후배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돌려주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는가? 그런 이야기다. 태도의 문제. 회사에는 엑셀 말고도 다른 분야에서 저런 태도를 보이는, 많은 선배들이 있지 않은가. 하다못해 점심 메뉴 결정, 회식 시간, 회의 분위기, 업무 진행 방식 등 다양한 부분에서 저런 선배들은 위 이미지와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


농경사회가 아니기에 경험은 수십년 전처럼 큰 힘을 갖지 못한다. 모든 기록과 역사는 이미 웹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새로운 사원, 대리들은 이미 자유롭게 접속하여 과거의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영리한 세대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퇴화하여, 낙오하고, 영원히 도태되지 않으려면 꾸준히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읽고, 쓰고, 고민한다. 또 많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


MBC '100분 토론', 유시민의 말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많이 알고 있는 새로운 세대에 부끄럽지 않도록

'어른'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예외 없이 늙는다.

채현국 어르신의 말씀을 잘 귀담아 들어야 한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너희들도 저 꼴이 된다.


나는 지금 어떤 꼴인가?

잘 늙어가고 있는가?

내가 지금 어떤 꼴인지, 듣고 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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