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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pr 19. 2023

왜 떠나는지 잘 알겠구나

그랬구나

며칠 전, 재미있는 뉴스를 보았다.

춘천시가 9급 젊은 공무원들의 퇴사를 막고자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바로바로


나무심기!


행사 제목은 '춘천시 새내기 공무원 나무심기 행사'. 새내기 공무원들은 청사 앞 정원에 나무를 심고 각자의 이름표를 달았다. 최근 석달만에 춘천시 신입 공무원 9명이 퇴사한 충격으로 인해 마련한 행사로 보인다. 보통 그 정도 인원이 집단적으로 퇴사했다면, 조직문화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을텐데. 게다가 어렵게 준비한 시험에 합격한 공무원직 아니던가? 도대체 조직이 어떤 상태이길래?


사진 속 뒷짐지고 서 계신 분이 조직의 분위기를 짐작케한다.


위 이벤트를 보니, 춘천시가 젊은 공무원들 퇴사 해결 방안을 아주 완벽히 이해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나무를 심고 이름표를 부착해놓으면, 정든 나무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퇴사 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나보다. 마치 스톡옵션 처럼 앵커링 효과를 노린 셈이다. 스톡옵션 = 나무


이제 문제 해결! 하하하


도대체 이런 기획은 누구 머리에서, 왜 나오는 것일까?

퇴사를 못하게 막을 생각만 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본질을 파악하는 게 우선인데, 현상만 쳐다보고 있다. 당장 눈 앞에 떨어진 불똥만 치우려 하는 꼴이다. 이러다가 조만간 시청 문을 없앨 수도 있겠다. 집에 못가게.



퇴사 원인을 파악해야지


나도 구글링으로 1분만에 찾을 수 있는,

‘젊은 공무원 퇴사’의 각종 원인들을 왜 모른척 하는 것일까?


1. 위는 놀고 아래만 일하는 조직 분위기

2.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3. 낮은 급여

4. 연일 민원인에게 시달리며 자존감 하락

5. 동기부여를 막는 연공서열식 보상 문화


위 다섯가지 이유와 더불어,

이번 나무심기 행사를 보니,

왜 젊은 공무원들이 퇴사하는지 잘 알겠다.

그 어떤 이유보다 확실하게 와 닿았다.


그랬구나아~ 왜 퇴사하는지 잘 알겠다~


분명 내부에서도 '나무 심기' 기획으로 뒷 말이 있었을거다.

하지만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는 문화로 문제점을 공론화 하지 못했고, '춘천시 새내기 공무원 나무심기 행사'는 그대로 강행되었겠지. 누군가는 나무를 사오고 삽을 사오고.


‘나무심기’ 행사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않다고 느낀 춘천시는 이제서야 깨달았나보다. 그래서 나무심기 행사를 만회할 새로운 이벤트를 야심차게 기획했다. 젊은 공무원들의 퇴사를 막을 특단의 비책. 그것은 바로바로.


시장님과 공원에서 도시락 미팅!


https://naver.me/xl1mxAFt


도시락 미팅까지 온라인 상에서 질타를 받자 춘천시장은 SNS에 글을 올렸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으신가보다.



제발 젊은이들에게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위는 놀고 아래만 일하는 조직 분위기‘ 이런 문제 해결에 신경 써 주세요. 그러면 젊은 조직원들이 웃으며 일할 수 있습니다.


나무심기, 도시락미팅.

춘천시의 다음 이벤트가 기대된다.



회사랑 똑같다.

사장님 지시사항, 부사장님 지시사항, 전무님 상무님 님님님 지시사항으로 거역할 수 없는 우스운 과제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실제로 회사에는 나무심기 행사보다 어이없는 업무 지시사항들이 많이 하달된다. 예를 들어, 예전 어떤 IT 회사에서는 작업자가 서버작업을 진행하다가 장애를 일으키자, 임원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 그래서, 개발자의 키보드에서 엔터키를 모두 수거하라는 지시를 하달하셨다. 해당 업무의 리더가 작업 실행문이 잘 작성되었는지 확인하고, 직접 엔터키를 누르라는 게 지시 목적이었다. 실제로 지시가 내려온 그 날, 수십 명의 개발자 키보드에서 엔터키는 사라지고, 업무 리더에게 블루투스 키패드가 하나씩 지급되었다. 코미디가 따로 없는 상황이었지만, 현실이 그랬다.


'님'들은 저런 걸 지시하고 ‘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실무는 당연히 아랫것들이 하면 되고, 자신들은 이런 의견 내서 추진시키고 ‘일 했다’고 뿌듯해 하는 것이다.


실무 빼고, 어설픈 중간 관리자부터,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임원, 매니지먼트 그룹 등이 나무심기 행사 등을 명령하고 지시한다.


저런 일을 만들어 내, 실무진들의 사기를 꺾고 조직을 망친다.

춘천시 실무 직원들은 전국 매스컴에 올랐으니 유명해져서 좋아할까?

신입 9급 공무원들은 나무를 심었으니 앞으로 퇴사하지 않을까?


잘 모르겠으면, 실무자들이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상세 업무에는 관심을 꺼 주세요.

실무는 실무자들이 제일 잘 아니까요.

마이크로매니징의 끝은 항상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경청하면 됩니다.

나무심기는 아무 효과가 없는 보여주기식 행사일 뿐이라는 의견을 누구나 개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세요.

그럼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춘천시 신규 9급 공무원 여러분,

힘내세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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