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 Apr 22. 2023

임원되고 싶으세요?

야망, 그보다 우선 너 자신을 알라


임원을 '임시직원'의 줄임말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저 '임'은 '임무' 나 '소임'에 쓰이는 '임'으로 '맡긴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 = 임원

보통 기업에선 사장, 부사장, 상무나 전무 등의 매니지먼트로 경영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지금까지 여러 회사를 거치며 많은 임원들을 근방에서 지켜보았다. 그 결과 ‘경험에 기반한’ 몇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법칙이 아니다. 그저 개인 경험일 뿐.


임원들은 증식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대기업이 IT를 강화한다고 새로운 사장을 스카웃한다. 신임 사장은 이전 회사에서 자기 식구들을 줄줄이 데려온다. 이 때 주로 임원 자리를 만들어 앉힌다. 보통 '조직개편'이라는 미명하에 기존에 잘 워킹하던 실무팀들을 이름만 바꾸고 쪼개거나 붙여서 자리를 마련해준다. 실무팀이 어렵든 말든 상관 없다. 임원이 부임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동일한 회사 출신 임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과정은 지난 번 글에서 자세히 이야기 해 보았다. https://brunch.co.kr/@dontgiveup/72


이들은 보통, 인맥으로 회사를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력이나 역량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자기가 보고할 PPT문서를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내러티브를 갖춘 수 페이지짜리 글을 쓰는 능력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인맥도 실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IT서비스 조직에서 인맥만 가지고 업무를 진행하기는 매우 어렵지 않을까.


자신의 역량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없는 그들은, 갖춘 역량에 비해 자리욕심/재물욕심이 과한 경우가 많다. 임원이 되며 계약한 어마어마한 연봉에 놀라, 마치 로또라도 맞은 듯 기분이 좋다. 정말 내 능력이 뛰어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렇게 몇 년만 일하면 부자가 될 것 같다. 나 혹시 이러다 사장까지 승승장구하는거 아냐? 야호! 임원 계약 연장만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된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기존 팀원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 수준의' 계획을 강요하며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급하다. 역량이 부족하다보니, 보통 광파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팀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 감화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그럴 능력도 없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https://brunch.co.kr/@dontgiveup/108


가자, 광팔러


'금년 2분기까지 우주선을 자체 개발하여, 3분기에 화성으로 이동, 4분기에는 전 인류가 생활 할 수 있는 기지 건설을 완료한다.' 이런 식의 계획을 들고 자기를 불러준 사장에게 보고한다. 하지만 될 리가 없다. 이 팀은 아직 '자전거'를 개발하는 수준이니까. 자전거를 만드는 조직이 우주선을 만든다고? 다음달까지? 조직원들의 어려움이나 고충엔 관심이 없으니 리스펙은 기대하기 어렵다. 시간만 흐른다.


뭐라도 해서 존재감을 보이고 싶다. 임원 2년차에는 그럴듯한 걸 보여줘야 계약 연장이 될텐데 걱정이다. 팀원들의 복지? 즐겁게 일하는 문화? 현재 실무진들의 어려움? 제품 운영의 과부하? 그런건 임원 계약 연장과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먼저 살고 볼 일이다. ’글로벌 어쩌구저쩌구‘ 같은, 큰 거 한 방이 필요하다. 급해서 안달복달이다.


그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구체적인 예를 몇가지 들어보자. '개발자 출신' 임원들을 여럿 만나봤기에 그들의 행동에 몇가지 패턴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당연히 전체가 아닌 일부의 케이스다. 일반화는 삼가자. 그들은 어떻게 존재가치를 입증하려고 할까?


갑자기 지라에 들어온다. 개발자들이 진행하는 티켓에 하나하나 댓글을 달기 시작한다. 이 설계는 이러면 안되고, 이 로직은 위험하고, 이 인프라는 저기랑 논의해서 문제 없도록 하고 등등 코멘트를 새벽까지 작성한다. 개발리더가 할 일을 하고 있다. 임원이!?


또는 소스 접근 권한을 받아 로직을 한줄한줄 살펴보며 참견한다. 심지어 변수명을 가지고 잔소리를 하던 전무도 있었다. 이건 왜 이렇게 짠거죠?


어떤 임원은 누가 얼마나 커밋했는지를 추적해, 문책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커밋 수가 적죠?


또 다른 임원은, 기획자 수십명을 매주 정기회의에 불러모아 기획서를 한장 한장 리뷰하며 문구 하나, 정책 하나하나를 트집 잡고 자기 입맛대로 수정하라고 지시한다. 물론 그는 실무를 전혀 모른다. 지시 근거는 ‘내 맘에 안드니까’ 가 전부다.


기획자들에게는 갑자기 '전략' 을 세워오라고 지시한다. 무슨 전략이요? 라고 되물으면, '서비스 글로벌 전개 전략' , '플랫폼 확대 전략' (도대체 언제적 플랫폼인가) 등등 애매모호한 단어를 써가며 이야기하는데, 사실 본인도 무슨 말을 하는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스스로 문서를 작성해 보고/발표 할 능력도 역량도 의지도 없다. 그런건 기획자가 알아서 써 와야죠? 그런 쓸데없는 기획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다음 글을 확인해보자. https://brunch.co.kr/@dontgiveup/68


그는 출근하자마자 사내 메신저를 화면에 띄워놓고, 누가 지각했나, 누가 자리비움인가 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다 누군가 하나 걸려들면 옳다구나! 하며 채팅창을 연다. 근태가 엉망이네요?


임원은 직원들의 재택근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눈 앞에 모두 앉혀놓고 필요할 때마다 자리로 불러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지시하고 싶다. 집에서 근무하는 업무 방식이 너무 싫다. 나는 임원이니까. 내 권력을 휘두르고, 통제하고, 마이크로매니징 하려면 전부 출근시켜야 한다. 그는 협업이 어렵다는 둥, 근태가 엉망이라는 둥, 갖가지 이유를 대며 어떻게든 직원들을 사무실로 출근시키려 한다.


해외 출장 기회를 어떻게든 만든다. 실무를 잘 모르지만 괜찮다. 아무나 과장급 하나 대충 데려가면 된다.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눈먼 출장비로 해외를 한바퀴 돈다. 목적은 ‘해외 현황 파악 및 전략 협의’ 정도로 둘러댄다. 어차피 회의는 실무자들이 하는 것. 임원은 회의 때 상석에 앉아 “다~ 됩니다! 해드릴께요~ 오케이오케이!“만 외치면 된다. 뒤처리는  실무자들이 알아서 문제없이 하도록! 전무님은 저녁 회식 때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임원이 되니 다들 떠받들어주니 아주 좋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외국 지사에 가보니 우주선의 필요성이 크더라, 얼른 만들어서 화성을 넘어 목성까지 가즈아~!“ 라고 다시한번 글로벌하게 광을 팔아 제낀다.


회사 내 어떤 임원이 있었다. 그 임원은 그럴듯한 프로젝트로 이슈를 만드는, 소위 '광파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실무진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말이다. 그에게 시니어 팀원 한 분이 용기를 내 충언을 했다. 실무와 동떨어진 일 말고, 진짜 해야 하는 일, 시급한 문제 해결에 집중해보자는 의견을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전했다. 그러자 임원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어차피 2년 짜리 자리인데, 연장 안되면 당신이 책임질꺼야? 내 맘대로 할꺼니까 잔말 말고 그냥 하세요."



100년을 갈 회사를 만들기 위해, IT서비스의 큰 방향을 고민하고, 즐겁게 창의적으로 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며, 실무가 해결하기 어려운 포인트를 해결해 주라고 '임원' 이라는 타이틀과 연봉을 제공하는 거다.


A급 인재들로 팀을 잘 채워놓고, 외부의 방해요소와 허들을 제거해준다. 그리고 조용히 바라봐주면 반드시 훌륭한 제품이 나온다. 임원의 가장 큰 역할은 A급 인재들을 어떻게든 모셔와 멋진 팀을 꾸려주는 것. 그게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갑자기 전무님께서 개발자 모드가 되어 극한의 마이크로매니징을 시전한다. 왜냐면 할 줄 아는게 그 정도 수준이니까. 회사가 임원에게 원하는 건 이런게 아닐텐데? https://brunch.co.kr/@dontgiveup/94


팀원들은 힘들고 지친다.


또 저런 사람이 왔구나.


보통의 경우, 이들은 실적이 없어 2년 후 교체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난다. (임원은 보통 2년 계약이다.)


휴, 겨우 사라졌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또 다른 임원이 나타난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애초에 그들이 사라지길 기대하면 안된다.

그들이 사라지면 정말 열심히 실무에 집중할 수 있을텐데... 제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릴 가만 놔두세요… 라는 헛된 꿈을 꾸는가. 그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A임원이 사라지면 B임원이 그 자리를 메꾼다. B이후엔 C,D,E.... 무한반복이다.


한국의 대기업 IT조직에서는, 그냥 그들을 ‘상수’라고 생각해야 한다. 늘 항상 거기에 존재한다. 사라지지 않는 직장 생활의 '상수'로 놓고 계산해야 한다. 아주 작은 영향이거나, 거의 사라질 수 있는 변수 정도로 치부해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반드시 늘 존재하며, 업무를 방해한다는 가정 하에 실무를 진행해야 한다. 지인찬스로 무임승차한 그들의 모든 의사결정과 판단의 근거에는, 자신의 안위와 자리보전, 광팔기, 스톡옵션 행사가 최우선 순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계산이 맞아 떨어진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 임원 자리에 올라,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뿐이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당신은 '내가 임원이 된다면 절대 안그럴텐데' 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19세기 중엽 미국의 작가 로버트 잉거솔이 링컨을 칭찬하며 했던 말 중, 유명한 문장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의 밑바닥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세요.
누구나 역경(adversity)을 견딜 수는 있지만 오직 위대한 한 사람만이 성공(prosperity)을 견딜 수 있습니다.
자비의 측면에서가 아니면 결코 권력을 남용하지 않은 것이 링컨의 위업입니다.


어떤 사람의 밑바닥을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면 된다.

열심히 일 잘 하던 사람에게 전무 타이틀을 달아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 본성이 드러난다. 저 위에 설명한 임원들도 팀원으로서 실무를 담당할 때는 모두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으로 스카웃 된 것이다. (물론 많은 수의 임원들이 단순한 인맥이나 친목으로 영입되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좋게좋게 보자.)


권력과 연봉, 타이틀이 주어지면 그제서야 본성이 나오며 추한 욕망이 야망이라는 이름으로 발동한다. 자신이 지켜줘야 할 조직원들의 행복은 뒷전으로, 동물적인 생존본능 앞에 무색해진다.


얼마 전, 영화 '존윅4'를 보았다. 최고회의 전령 역할이 인상깊었다. 그의 조용하고 젠틀한 카리스마가 악역보다 더 강렬하게 와 닿았다.


(좌)최고회의 전령, (우)가운데 서 있는 남자다.


그가 영화 속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의 야망은 그 사람의 가치를 넘어서서는 안된다.


아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A man's worth is no greater than his ambitions.'를 응용한 듯 한데, 나에게는 영화 쪽이 더 와 닿는다. 우리도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할 문장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과연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들처럼 처신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로지 돈을 위해 판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임원이라면 계약 연장만을 유일한 목표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직원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을까.


다음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자기애에 사로잡힌 욕망이 기회를 만날 때,
멈출 수 없는 비극이 시작된다.

<안젤리크> , 기욤 뮈소


오늘도 고민이 깊어진다.

계속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떠나는지 잘 알겠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