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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pr 29. 2023

chatGPT 세상에서의 생존 전략

이걸요? 제가요? 왜요?

바야흐로 조직개편의 시기이다.

매니지먼트 그룹은 매년 비슷해보이는 조직개편을 단행한다.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잦다. 일하는 사람들은 그대로이고, 문화도 그대로이며, 환경도 그대로인데. 조직 이름만 바꾸고 이 조직을 떼어내 저 조직에 붙이는 식의 탁상공론으로 무언가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한다. 일종의 무속이고 주술이다.


아브라카다브라


SHUTTERSTOCK.COM


목적조직을 기능조직으로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몇 년 전, 서비스별 목적조직으로 개편하여 개발/기획/디자인/QA/BA 등을 모두 한 서비스팀으로 묶어 시너지를 내려고 했던 시도가 유행이었는데, 일부 회사에서 원래 모습대로 역행하려는 것이다. 기획은 기획팀, 개발은 개발팀 이렇게 말이다.


목적조직은 그 나름대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잘 운영되는 기업의 서비스 조직은 굉장히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예를 들면 당근이나 토스등이 있을테다. 하나의 서비스에 주인의식을 가진 개발/기획자 등이 모여 빠르게 제품을 만들어 나가는 형태다. 스퀏, 사일로 이름은 다양하다. 지금도 잘 동작한다고 알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 공장

목적조직은, 마치 SI와 같은 방식으로 IT시스템을 운영하던 구시대의 개발팀/기획팀 구조에서 벗어나 혁신을 이루었다. 기능조직은, 소위 '기획팀은 기획서를 쓰고, 개발팀은 구현한다' 는 기능에 따른 역할 분담. 워터폴 형식에 적합하다. 시키는 사람과 구현하는 사람이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체계를 이뤄 제품을 만들어낸다. 매니지먼트가 기획팀에 지시, 기획팀은 기획서 작성 후 개발팀에 전달, 개발팀 구현.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공정 순서대로 일하는 제조업체들이 보통 그렇게 제품을 만들어낸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기능에 따른 팀 분리다. 팀 간 정치적 역학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무엇보다, 구현이 느리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기획자가 기획만하고, 개발자가 개발만 하지 않는다. 기획자/개발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란 이름으로 협업하며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파이썬과 SQL등을 기본으로 탑재한 PM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서비스정책 구성과 문서 작성 등 다방면에 출중한 재능을 갖춘 개발자들이 시장에 등장해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굳이 왜 기능조직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문화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발자는 개발만 하고, 기획자는 문서만 쓰면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조직장들이 있다. 이들이 팀을 매니징 해 보니, 목적조직이 굉장히 번거롭고 불편하다. 개발/기획 부분을 나눠서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대체 왜? 팀 문화가 제대로 무르익지 않은 조직의 개발자/PM들은 불만이 많다.



문화가 없는 조직은 이렇게 된다

개발자들은 PM한테 던지고 싶은데, 조직이 같다보니 경계가 모호해 짜증난다. 타 부서와 협의, 소통, 논의, 문서, 정책 결정 등등 이런건 다 PM이 해야되는거 아닌가? 왜 자꾸 개발자인 나랑 같이 논의하자고 하는거지? 나에게 그냥 떠넘기는 것 같다. 나는 개발하느라 바쁜데. PM들은 노는 건가??


PM들은 개발자들이 비협조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의 대응, 데이터 확인, 로그 확인, 자료 산출 등을 부탁할 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이다. 뭐 좀 개선해달라고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게 대부분이다. 불친절하다.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대체 못알아 듣겠다. 개발 이외의 것들은 모두 나에게 던지는 것 같다. '이건 PM이랑 협의하고 오세요', '이건 PM이 논의해주세요', '이건 PM이 결정해주세요', '이건 PM이 주도해주세요' 도대체 PM은 뭐하는 사람이지?


조직장은 이런 개발자와 PM 조율에 진절머리가 난다.

이럴거면 마음 편하게 개발팀/기획팀을 분리해버리고 싶다. 다시 기능조직으로 돌아 가자.


특히 예전 방식으로 일하는데 익숙한 개발자 출신 조직장은 너무 힘들다. 카운터파트와 협의에 들어가는 감정노동, 미팅을 잡는 등 들어가는 자잘한 리소스, 정책 구현에 대한 고민, 문서를 작성하는데 필요한 귀찮음. 이런 것들은 '기획자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개발자 출신 조직장은 목적조직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라면 그냥 하면 되지 기획/개발이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는게 대체 무슨 X소리야? 서비스팀 리더에게 들어오는 요구는 대체 왜 이렇게 많은지!! 협의나 조율은 너무 귀찮고 짜증난다. 얼른 떼어내, 기획팀이 그냥 알아서 하라고 말하고 싶다.


맨날 모여서 다투고 충돌하는 애자일, 스크럼, 스프린트고 뭐고 다 싫다. “기획팀이랑 먼저 협의해보신 후, 기획 문서 가져오시면 개발 검토할께요” 라고 말하면 어지간한 이슈는 다 커트가 가능하다. 편하다. 속 시원하다.

조직 문화를 바꿔야 제대로 구동하는 목적조직에서, 문화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이름만 바꿔 일하라고 하니 될 리가 없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일하던 공장 직원들을 갑자기 모두 한 방에 몰아놓고, 부품을 전부 섞어 던져 준 후, '자 이제 협업해서 만들어봐' 라고 말하는 꼴이다.


문화를 바꿔야지.


개발자, PM, 조직장 모두가 힘들고 지친다.



자, 이렇게 조직이 개발팀/기획팀으로 분리되면


결국 서비스나 제품에 관한 대화는 사라진다.

기획서 PPT만 개발팀/기획팀 파티션을 넘나든다.


'자 됐죠? 여기 기획서요. 해주세요.'

'검토해볼께요.' (며칠 후) '안되는데요. 이거'

'그럼 저보고 어쩌라구요.'

'이러저러 해서 구현 불가능합니다.'

'같이 이야기좀 하시죠.'

'이제 같은 팀도 아닌데, 저희 팀으로 정식으로 협조 요청 넣어주세요. 일정 검토하겠습니다.'

'위로 올릴게요. 팀장선에서 결정하시죠.'


빠르고 혁신적인 변화는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춘다. 컨베이어 벨트는 점점 길어지고 느려진다. 정치/권력 싸움이 판을 친다. IT회사는 제조공장이 되어 간다. 같은 팀일 때 한 곳을 바라봤던 KPI는 사라졌다. 개발팀/기획팀은 KPI부터 완전히 다르다. 성과 측정이 달라지니 보상도 달라진다. 내 보상에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굳이 도와줘야 하나? 개발팀과 기획팀이라는 굳건한 사일로가 마치 성벽처럼 솟아올라 서비스는 서서히 무너진다.


왜 자꾸 범위와 역할을 한정짓고, 틀에 가두려 하는가.

퇴행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chatGPT



chatGPT의 등장

단순한 혁신을 넘어 특이점이다. 15년만에 등장한 아이폰 모먼트(iPhone moment) 다. chatGPT가 경계를 허물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자료조사, 문서작성, 메일, 번역, 정책구성, 코딩, 쿼리 튜닝 등 chatGPT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많은 부분을 담당할 것이다. 많은 회사에서 실험이 진행중이다. '뛰어난' 개발자들이 모인 팀에서는 이미 PM 없이 일하는 곳도 있다. chatGPT가 '3년차 개발자 수준의 코딩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자비스'가 등장할 날이 머지 않았다.


Iron Man 1


수십년 전, 은행에는 ‘정사원’이라는 직무가 있었다. 지폐를 세는 업무를 담당한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한 시간에 6,000장의 지폐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감촉만으로 어느나라 얼마짜리 지폐인지, 위폐인지 아닌지 가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오래 일한 '정사원'은 그 능력으로 높은 보수를 받고 대접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정사원'


그러다가 지폐를 자동으로 세주며, 위폐까지 감별해주는 '계수기'가 등장했다.

'정사원'은 사라졌다.

아예 직업 자체가 증발했다.


chatGPT는 혹시 우리에게 '계수기'가 아닐까?



오히려 융합해야 한다.

왜 자꾸 역할을 칼같이 나눠, 할 수 있는 범위를 한정지으려 하는가?


발전하는 '기술'과 함께, '태도'가 중요한 시대가 온다.

기술과 기능에 기반한 실력은 chatGPT가 해결해준다. 앞으로 점점 더.

이제 그 무엇보다 인간적인 면모가 두각될 것이다.

'태도'가 좋은 사람이 인정받고, 많은 곳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다.

개발/기획을 넘나드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선택받는다.

그래야 '정사원'의 운명을 피할 수 있다.


내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이런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당신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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