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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Sep 08. 2021

IT부서, 그 파멸의 나선


"또 아는 사람을 데려온다네?"

"또?"

"도대체 몇 명째야?"

신규 PM을 채용중이다. 해당 포지션에 결국 팀장의 지인이 추천되어 입사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로써 4명째 '팀장 라인'의 등장이다. 기존 팀장이 '데려온' 인력들의 수준을 익히 알고 있는데다, 그들과 팀장의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을 최근 몇 년간 지켜본 사람들은, 이 소식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팀장은 개발자, PM, 디자이너 가리지 않고 지인들을 데려다 앉혔다. 채용 비리일까? 절차 상으로는 별 하자가 없는 과정이다. 어차피 지원자 서류 검토를 진행하는데 팀장의 입김이 세기 때문에, 그의 말 한마디면 서류 지원자의 당락은 아주 쉽게 결정된다.

"박 과장, 이번에 들어온 지원자 중에 ㅇㅇㅇ씨 지원서 읽어봤어요? 그 친구 내가 같이 일해봐서 아는데 아주 성실하고 똑똑한 친구야. 서류 심사 때, 잘 좀 살펴봐요"

팀장이 저렇게 이야기하면, '뽑으라는' 소리다. 거역할 순 없다. 탈락시키려면 정말 그럴듯한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인사상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굳이 그런 희생을 하면서까지 '팀장의 사람'을 탈락시킬 직원은 없다. 밥벌이가 달린 직장 생활 아닌가?

심지어 '추천인'이 '피추천인'의 인터뷰에 직접 참여해 질문을 한다. 그러니까, 팀장이 추천한 홍길동씨의 인터뷰에 팀장이 직접 참석하는 것이다. 제대로된 검증을 위해 '추천인'은 면접관에서 제외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 아니던가? '피추천인'이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면, '추천인'이 "아 홍길동씨가 많이 긴장하셨나본데, ㅇㅇ는 ㅇㅇㅇ하다는 대답을 하시려던거죠?" 라고 대신 대답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형,동생 하는 사이가 이렇게 좋은거다. 맙소사.)

이런식으로 팀장과 그의 지인들은 서로 새끼치듯 '자기 사람'들을 데려온다. 팀장이 그룹장을, 그룹장이 파트장을 데려온다. 지인들끼리 끌어주고, 당겨주며, 해먹는다.


물론, 일반적인 IT기업에서는 지인을 통한 추천과 입사가 제법 많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개발자를 비롯한 IT 인력의 선순환을 돕고, 처우를 좋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네이버에서 카카오로, 카카오에서 쿠팡으로 쿠팡에서 토스로. 그런 식으로 개발자, 혹은 PM들은 지인 추천을 통해 이직하고 몸값을 올리며, 커리어를 쌓는다. 여러 도메인을 경험한 개발/기획자는 다양한 서비스에서 환영받을 수 밖에 없다.

업계 평판에 대한 소문은 빠르고, 그를 통해 좋은 인력과 나쁜 인력은 어느정도 명확히 구분된다. 자체 필터링이 가능한 채용 프로세스도 한 몫 한다. 네카라쿠배 등 이름 있는 IT기업에는 이미 실력자들이 빽빽히 존재하기 때문에, 개발 지원자들은 코딩 테스트를 통과하기 어렵고, 기획자일 경우 기획 방식과 마인드, 업의 이해에 대해 어설프게 면접을 통과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검증 절차가 확실하고, 검증하는 사람들도 높은 실력을 가진 '선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수평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아닌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아무리 조직장이 추천한 사람이라고 해도, ‘탈락’시킬 수 있는거다.


하지만,

일반 대기업 IT부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사실 전통적인 대기업 IT부서에서 개발 커리어를 쌓고 싶어하는 개발자는 거의 없다. 그 곳에서 IT부서의 입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등을 통해 입소문은 무섭게 퍼진다.) 파워포인트로 외주 업체에게 개발을 시키는, 기묘한 개발자들이 많은 대기업에서는 제대로된 코딩을 경험하기 힘들다. (실제로 일부 제조 대기업 개발자들은 외주 개발자들에게 '이메일을 작성하여' 로직 반영을 한다. 맙소사.) 그래서, 그 곳(과거에 '전산실'이라 불렸던 바로 그 곳)에는 실력 있는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제대로 된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실력과 안목을 갖춘 PM/개발자 가 그런 곳에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자, 이제 악순환이 시작된다.

파멸의 나선, 그 첫 계단을 밟는다.


어느날, 회장님께서 이야기 하신다.

"우리 그룹도 이제는 디지털 전환을 해야합니다. 이대로는 멸종당할 수 있어요! IT실 전력을 강화하여 새 시대에 걸맞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데이터를 통해 의사결정도 해 봅시다!"

이른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디지털 뭐시기뭐시기는 마치 예전 '대만 카스테라'처럼 유행이다.)


PM없이 개발자들이 외주 개발사에 의존해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던 IT부서에, 갑자기 막중한 임무가 떨어진다. '디지털 전환'이다. (IT는 잘 모르는) 전략기획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서칭해서 붙여놓은 상위 기획 문서를 만들어 올린다. 상위 기획 문서의 내용은 보통 "데이터도 모아서 막 멋지게 제공하고, 홈페이지도 막 멋지게 개편하고, 아무튼 막 멋지게 구글처럼 디지털로 하겠습니다." 이런 식이다. (보통 이 단계에서, 컨설팅 업체가 들어와 PPT문서 100장짜리를 제공하고 수억을 챙기기도 한다.)


자 이제 채용을 해야된다. 저렇게 막 멋지게 하려면 기획자도 필요하고 개발자도 필요하다. 예산도 두둑히 받았으니, 관련 인력을 많이 뽑아야 된다. 근데 뽑히는 사람들은 차치하고, '뽑는 사람들' 수준이 형편없다. 제대로 된 사람을 채용해 본 경험도 없을 뿐더러, 그 명확한 기준도 갖추고 있지 않다. (이게 제일 문제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기준 자체가 없다.)

서류를 받아 보는데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 대체 알 수 없다. 네이버나 카카오에서 지원해주길 바라는데, 지원자 중엔 그런 사람들은 없다. 왜 없지? 우리는 대기업인데? (이런 분들에게 자기객관화 까지 바라는건 무리다)


어찌어찌 지원자들을 추려서 면접을 본다. 당연히 질문 수준도 형편없고, 기준도 원칙도 없다. 그냥 지원자들 중에 대충 '유명한 대기업 출신들' 한 두명 뽑아다가 앉혀본다. 같이 일해보니, 수준이 엉망이다. 이래서는 곤란한데.

자,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 누구인가!

회사는 '리더'를 제대로 앉혀 놓으면 이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회계실장 ㅇㅇㅇ상무의 고등학교 동창 ㅇㅇㅇ씨를 IT팀 팀장으로 '모셔온다' ㅇㅇㅇ상무의 말로는 그가 네이버에도 잠시 몸을 담았고, 아무튼 IT 전문가란다. 레퍼체크? 실력검증? 그런거 없다. IT관련으로 그런걸 할 줄 아는 사람이 이 회사엔 원래 없었다.


ㅇㅇㅇ씨는 야심차게 IT팀장으로 부임한다. 그는 사실 실무를 놓은지 10년도 넘었다.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해 '아는 척'하는 것이 이 사람 전문 분야다. 전 회사에서도 그러다가 방출 직전이었다. 고등학교 동창 덕분에 ‘정년까지 버틸 수 있는 곳에서’ 한자리 꿰찼다는 사실에 너무나 안심이다. 여기서 은퇴까지 관리자로 버텨볼 태세다. 일? 대기업인데 일은 아랫사람들이 하겠지, 난 관리자니까 시키기만 하면 된다.

이제 아군을 만들어야 한다. 자고로 팀에는 '내 편'을 많이 심어놔야 팀내 동향도 몰래 파악하고,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다. 실력? 실력은 내 지인들이니까 믿음으로 가는거다.


팀장은 전에 같이 일하며 술시중을 잘 들었던 김과장, 대학 후배 이과장, 골프 친구 박차장, 등산 메이트 최부장 등을 차례로 회사로 불러 앉힌다. 실제로, 데려오는 사람들의 면면을 잘 살펴보라. 실무를 하는 대리/과장 초임급이 아닌, 연차가 많은 관리자급 혹은 임원급만 줄줄이 영입한다면 회사는 이미 파멸의 나선에 깊이 발을 들인 상태다.


혹시, 이상할 정도로 '특정' 회사 출신이 많이 모여있는가? 
지금도 ‘그 회사’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떨어지는가? 
그렇다면 파멸에 거의 다다랐다.


팀장은 좀 기분이 안좋다. 하위 조직이 없어서 내 위치가 별로 안 높아 보인다. 파트가 더 많으면 구색이 갖춰질 것 같은데, 하위 조직이 너무 적다. 그럴듯한 조직장인 척 하고 싶은데. 데려온 친구들도 보직 하나씩 주고 관리자로 앉히고 싶다. 그래서 팀장은 잘 동작하고 있는 팀을 쪼갠다. 기획파트 개발파트 등등 으로. 실무자들은 그렇게하면 협업이 힘들다고 반대 의견을 내지만, 그런 의견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 '5개 파트를 거느린 팀장'이 좀 더 '뽀대'난다. 결국 한 팀으로 일하던 팀원들은 몇 개의 조직으로 찢어진다. 사일로가 생기고, 소통이 끊기며, 속도가 느려진다.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서비스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자 파트를 여러개 쪼개놨으니, 이제 친구들을 더욱 더 많이 데려와야 한다. 요새 다들 나한테 연락해서 자리 하나 마련해 달라고 난리다. 권력을 얻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어떻게 대충 채용해볼까? 이 경우, 회사에는 IT 분야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팀장이 썰만 잘 풀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채용에 동의해준댜. 팀장이 추천한다고 하면 다들 그냥 오케이다. 하나, 둘씩 내 사람을 더 데려온다.


지인 채용과 동시에,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한 '상위 기획서' 몇 개를, 팀내 기획자들에게 이야기해서 써오라고 한다. 기획자들은 쓸데없는 장표 작성에 시간을 뺏기며 좌절하지만, 팀장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자리 보전이 먼저니까. 2년 계약 연장이면 그 돈만 수억이다. 내 보직 계약 연장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글로벌하게, 로봇도 만들고, 막 하늘도 날고, 데이터도 다 통합하고, 디지털 전환해서 멋있는거 한다고 썰을 푼다. 국내 시스템 운영 및 유지보수만 하는 것도 힘들다고 팀원들은 난리지만 나랑은 상관없다. 올해 2분기에 미국! 3분기에 유럽! 4분기에 호주! 국내 시스템을 글로벌로 확장하겠습니다! 회장부터 다들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기획 그룹도 잘 모른다. 글로벌 전개방안 써서 가져와! 그냥 내가 써오라고 하는대로 써서 올린다. 괜찮다. 팀장은 직접 문서를 만들지 않아서 너무 좋다. 전략 세워오라고 말로만 지시하면 된다. 이것이 대기업의 행복인걸까.


술시중의 김과장, 골프친구 박차장 등은 다시 자기 사람들을 줄줄이 끌고 들어와 회사 요직에 앉힌다. 다행이다, 나이도 들고, 실력도 없어 자리보전하기가 힘들었는데, 여기서 정년이나 노리며 공무원처럼 살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여전히 채용 관계자들은 IT관련 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속이기 딱 좋다. 더욱 다행인건, 네이버/카카오 등에서 지원하는 사람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블라인드'라는 앱이 있다던데, 거기 벌써 소문이 났나?) 그들이 입사하면, 엉망으로 돌아가는 내부 프로세스를 보고 비웃을 수도 있는데, 그런 직원들은 안 들어오는 게 차라리 낫다. 계속해서 '적당한' B급, C급 사람들을 뽑아 자리를 채운다. 조직은 커지고, 팀장은 사내에서 힘을 키워간다. 회사의 IT역량은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시스템은 제자리를 맴돈다.

신규 프로젝트? 괜찮다. 외주 업체 찾아, 알아서 하라고 돈 적당히 챙겨주면 그럴듯한 화면 정도는 만들어준다.(화면만 예쁘게 뽑아주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박수치고 좋아한다. 기능? 그런거 상관없다.) 고도화? 데이터 드리븐? 여전히 남의 일이다. 레거시 운영자들만 죽어난다. 회사는 점점 '정치 세력화' 되어가고, 정말 일부 존재하던 일 잘하는 똑똑한 개발자 혹은 PM 들은 의욕을 잃고 이직을 준비한다.

IT이외의 실무 부서에서는 불만이 쏟아진다. '아니 돈은 우리가 다 버는데, 왜 저렇게 IT부서에 고연차(고연봉) 들을 자꾸 영입하는거야!! 어떻게 실무자보다 임원이 더 많아?!! 저 사람들 실적이나 낸 게 있기나 한가?!!' 부서간 골은 깊어지고, 사내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서로 협업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하고 헐뜯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마치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들과 같다.

최악의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와 자가 복제하며 팀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매트릭스는 결국 셧다운 되었지


파멸의 나선은 그렇게 끊임없이 바닥을 뚫고 내려간다.
멸망을 향해.


IT기반이 아닌 일반 대기업(제조/금융 등) IT부서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달리 IT전문가라 불릴 사람들이 없던, '전산실'만이 존재하던 전통적인 대기업.

최근 몇년 새, 'IT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전통 대기업에 IT전문 부서가 신설되고, 관련 인력들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해먹기 좋은' 구조다. 위와 같은 일이 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화'를 바꾸어야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질텐데.

'마인드'는 80년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부서명만 '전산실'에서 '데이터 인텔리전스팀'으로 바꾸면 해결되는 줄 안다.

아직 멀었다.


'파멸의 나선'은 오늘도 열심히 멸망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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