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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Sep 04. 2021

보고서의 미학

"이렇게 쓰시면, 보고 드리기가 곤란해요."


아뿔싸.

이런 실수를 하다니.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누가 읽는 지'에 대한 고려가 빠져있었다.

나는, 아직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그대로의 보고 방식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ㅇㅇ데이터 허브 구축에 대한 업계 동향을 파악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작업을 진행했다.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내러티브 위주의 스토리 텔링을 이용했다. 중간에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도 섞고, 최대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문서 하나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당연히,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화자의 역량에 좌지우지되는 PPT 장표로는 제대로된 전달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퇴사한 사람의 장표를 열어보고 그 맥락을 제대로 짚어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 '내가 없더라도, 이 문서 하나만으로 이해가 가능하도록' 그것이 내가 서술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이유였다.


회사를 옮기고도 그 방식을 유지했다.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곤란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윗 분들은 그런 형식의 보고서를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방식은 절대 틀릴리가 없는데? 이게 보고서의

정석인데? 이렇게 주장하고, 우겨서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까?

읽을 시간이 없는게 아니라, 혹시 장문의 글을 읽고 소화할 능력이 떨어지는거 아니냐고 코웃음 쳐야 할까?


아니다.

보고서는 철저하게 '보고 받는 사람'의 스타일에 맞춰서 작성해야 한다.

보고서의 목적 자체가 '보고 받는 사람'의 이해를 도와 프로젝트가 진행되거나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제대로된 보고서를 작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6pager 라던지, One Page Report 라던지, 파워포인트 장표 라던지, 이런 모든 형식을 관통하는 보고서의 미학이 혹시 존재하지 않을까? 그 대표적인 규칙 몇개만 알고 있다면 단순히 'Tool'을 넘어선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방법이 있는지 여기저기 뒤져보고, 책을 찾아보며 몇 가지 원칙을 발견했다.


목적을 알고 시작하자

'업의 본질'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일을 하면서 지금 하는 업무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 정도로 이해한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문서의 작성 목적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까지의 질문을 스스로 던져봐야 한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애초에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보고서 작성 목적을 가슴속에 새기고 첫 줄을 시작하자.


누구에게 보고하는지 기억하자

아하~ 문제가 이거니까 이렇게 해결하면 되겠구나, 신난다. 조사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자료를 만든다. 술술 풀린다. 신나게 수십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만든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신나게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위에 이야기한 것 처럼, 보고서는 '상대방에게 알려주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다. 나 혼자 조사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신나게 떠들어대고 싶으면 일기나 개인 블로그를 이용하면 된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대체 결론이 뭐야?' 라는 말을 듣기 싫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지 말고, 상대방에 무엇을 듣고 싶은지 고민해서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위에 이야기한 '형식'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상대방이 원하는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분 1초가 아까운 CEO에게 보고하면서 수십장짜리 문서로 보고하는 것은 대충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 상대방이 구체적이고 세세한 논리 근거까지 따져보는 깐깐한 스타일인가? 그렇다면 각각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수치와 그래프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하여 보충한다면 좋을 것이다.

항상, '보고받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자.


제목을 아름답게

빠르게 의사결정 하는 경영진 중에는 제목만 보고 판단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 명확한 제목을 보고 본문을 읽는 것과, 두루뭉술한 제목을 읽고 본문을 읽는 것은 그 이해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제목은 최대한 짧게, 하지만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문서의 목적이 드러나야 한다. 'ㅇㅇ 개선안' 보다는 'ㅇㅇ 문제 해결을 위한 ㅇㅇ 프로세스 개선안' 이라고 쓰면 문서의 존재 이유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았다. 제목에 최대한 신경을 쓰자.


결론부터 쓰자

아마 보고서를 출력해서 상사 자리에 가져다 놓고 회의를 시작했을 때, 상사가 첫 한두장 정도를 슥 들춰보고 시작도 하지 않은 보고에서 이렇게 묻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건, 일단 결론이다. 이렇다 저렇다 라는 결론을 원한다. 논리와 근거는 그 이후에 풀어가도 늦지 않다. 최대한 두괄식으로 결론을 서두에 정리하고 논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앞 부분에 기재하자. 'ㅇㅇ 문제 개선을 위한 ㅇㅇ솔루션 구입 예산 확보가 필요함.' 이라고, '돈이 필요합니다.' 라고 먼저 이야기 하고 논리를 풀어나가 보자. 듣는 사람도 결론을 알아 속이 시원한 상태에서, 왜 그런지 이유가 궁금해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파워포인트도 마찬가지다. 헤드 메시지를 페이지 상단에 문장으로 넣자. 이번 페이지의 결론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최대한 두괄식으로 작성하자.


구조를 세우자

이 부분은 정답은 없다. 다양한 구조가 존재하니까. 프로그래밍을 할 때는 '로직'을 짠다. 라고 이야기 한다. 로직을 잘 설계해야, 프로그램이 물 흐르듯 구동한다. 로직 설계에 실패하면, 에러를 뱉는다. 보고서의 구조도 '로직'과 마찬가지이다. 몇 가지 '로직'이 있다.

문제 -> 원인 -> 해결책
현상 -> 문제점 -> 대책
As-Is -> To-Be -> How-To

위와 같은 내용들이다. 대부분 비슷하게 흘러간다. 저 구조에 '현상'에는 '경쟁사 현황' 등이 작은 꼭지로 추가될 수 있다. '해결책'/'대책' 부분에는 '일정' 혹은 '예산' 또는 '인력 및 리소스' , '솔루션 후보' , '안별 장/단 분석' 등이 들어갈 수 있겠다. 이런 추가 항목들이 중간중간 들어가게 된다. (어디까지나 로직을 원활히 풀어가기 위한 꼭지들이다.) 목적 -> 현재상태 -> 과제 -> 대책 -> 스케쥴, 이런식이다.

대부분 마찬가지다.

어쩐지 위 로직에 들어맞지 않는 것 같은가?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1P, 2W1H 를 생각하면 된다.

1P는 1Phrase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된다. 보고서의 주제 혹은 결론이다.

그리고, 그 1P를 기반으로 Why, What, How를 정리하면 된다. 왜하는가? 무엇을 하는가? 어떻게 하는가? 라고 할 수도 있고, 무슨 안이 있는가? 왜 2안이 좋은가? 어떻게 추진하는가? 도 좋겠다. 대부분 1P2W1H로 정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잘 모르겠으면, 하얀 종이를 꺼내놓고 1P와 2W2H를 생각나는 대로 막 써보자. 그러다보면 생각 정리가 되고, 그 정리된 내용을 형식과 논리에 맞게 정리하면 보고서가 완성된다.)


'아름다운 이상향' 이 있는데, 지금 상황이 이 모양이니, 그 이상향을 위해 이렇게 하고 싶다. 라는 이야기다. '왜 이 일을 하는가' 를 고민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최적의 모습이 바로 '아름다운 이상향'이다. 그래서 최초에 일의 목적을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방법과 대책이 떠오른다. 그 목표(정해진 기간에 도달해야 하는 바람직한 상태/수준) 와 현상(현재 있는 그대로의 상태)간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 우리의, 우리 보고서의 목표다.


근거를 찾자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요! 나빠요!' 라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개인취향 고백으로 비춰질 뿐이다. 근거를 대야 한다. 그 문제가 왜 나쁜지. 기재해야 한다. 문제점 a,b,c 를 서술하고, 근거를 달아줘야 한다. 그래야 멋지고 힘이 생긴다. 문서가 살아 숨쉬게 된다. 여기 수치가 들어간다. 객관화된 문서의 기준은 바로 명확한 수치의 첨부 여부다. 왜 나쁜지, 무슨 문제가 어떤 부분에서 터지고 있는지. 조사를 통해 인터뷰를 통해 근거로 마련해 넣어줘야 한다. 그래야, '혼자 떠든다' 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ㅇㅇ 부서의 불만이 높다.' , '유저의 VoC가 많이 인입된다.' 라는 식으로 정리하고 끝내면 안된다. 왜 불만이 높은지, 그 문제를 해결하면 어떤 점이 나아지는지. 근거를 대고 이상향을 그려봐야 한다. 유저의 VoC는 왜 인입되는지, 근거를 대야 한다. 그래야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1. 이 '현상' 때문에 '결과'가 나타나요.

    2. '결과'는 이 '원인' 때문이에요.

위 양방향 모두 말이 되는 문서여야만 한다. 1번은 말이 되는데, 2번에서 새어 버리면 안된다. '결과'의 '원인'이 이거 말고도 많잖아? 왜 쏙 빼고 이 '원인'만 얘기해서 결론을 유도하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면 안된다. 2번이 부족한 것 같다면, '현상' 과 '원인'을 조금 더 찾아보고 고민해보자. 뭔가 더 있을 것이다.


기타

색은 너무 화려하지 않게

가끔 무지개 색을 전부 넣어 도표를 작성하고, 문장이나 단어를 강조하는 보고서가 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더 집중도가 떨어진다. 또한 그런 문서는 일반 흑백 프린터에서 출력하면 색 구분이 안돼서 가독성이 떨어진다. 요새는 본문 글씨도 완전한 검정색으로 하지 않는다. (너무 강렬한 느낌을 준다나) 강조하고 싶다면, 전체 회색 톤에서 딱 하나의 원색을 넣어 강조하자. 과유불급이다.


세 가지의 마법

안을 낸다거나, 근거를 든다거나, 문제점을 나열할때 하나 이상의 갯수가 나온다면, 세 가지가 좋다. 만세도 세 번 불러 만세삼창이고, 의사봉도 세 번을 두드려야 가결된다. 경험상 3이라는 숫자가 가져오는 안정감과 균형감은 4개 혹은 2개와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잘 안되더라도 연습해보자.


동작으로 표현

'ㅇㅇ에 대한 고려가 필요함.' , 'ㅇㅇ가 우려됨.' , 'ㅇㅇ관련 협조 필요' 등등의 애매모호한 문장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시'하게 만든다. '응 그렇군'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구체적인 동작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ㅇㅇ일 까지 ㅇㅇ 프로젝트 구성원 개별 인터뷰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해 리스트로 작성한다.' , '3가지 개선안을 마련하여 ㅇㅇ일까지 팀내 공유한다.' 등 구체적인 Action Item을 '동작'으로 표현하면 문서는 힘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움직이게 된다.


한 페이지에는 한 주제씩만

파워포인트로 작성한다면, 최대한 한 페이지에 한 주제씩 정리하자. 욕심 부린다고 한 페이지에 두세 주제를 욱여넣다보면 보는 사람이 헷갈리고, 장표 자체가 지저분해져 전달력이 떨어진다. How나 What 같은 '몇가지 안' 혹은 '몇 가지 대책' 이런 부분들을 정리할때 대책과 근거는 한 페이지에 한 꼭지씩만 넣자.


최대한 간략하게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다. 업무량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의 범위는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받아서 읽어야 하는 보고서의 양도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그는 정부 각 부에 이런 내용을 보냈다. "우리는 상당한 양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 그만큼 많은 양의 서류를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서류의 대부분이 너무 길어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단시간에 요점을 파악하기 힘듭니다. 보고서를 좀 더 짧게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요점을 짧게 적으란 말이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One Page Report 도 똑똑한 사람이 만들 수 있다. 이것저것 내용을 전부 넣어서는 간단한 보고서를 쓸 수 없다. 많이 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덜어내는 것이다. 연습해야 한다. '핵심'을 명확히 파악해야만 덜어낼 수 있다. 근거가 되는 그래프와 숫자가 너무 많다면 따로 appendix로 첨부하자. 보고서를 '읽게' 만들지 말고 '보게' 만들자. 명심하자. Simple is the best.


한마디로 말하면?

다 정리가 되었나? 그럼 출력해서 읽어보자.(종이를 손에 들고 읽는 것과, 화면에 띄워 놓고 읽는 것은 뇌가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오탈자도 훨씬 쉽게 찾을 수 있다.) 읽고 나서, '한 마디'로 요약해보자. 떠오르는가?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다면 성공한 보고서다. 읽고 나서 'ㅇㅇ의 ㅇㅇ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ㅇㅇ를 시행해야 한다.' 는 식의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보고서는 딱히 프리젠테이션 없이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똑똑한 사람은 요약을 잘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아름다운 문서를 쓸 수 있으니, 연습하고 또한 익히자는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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