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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pr 09. 2022

마이크로매니징은 팀을 어떻게 망쳐놓나

대리처럼 일하는 전무님


우리 전무님은 대리처럼 일한다.

'대리처럼 일하는 전무'는 과연 칭찬일까?

당연하게도 비난이다. 스스로 대리나 과장처럼 일하며 '마이크로 매니징'을 일삼는 임원은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문화를 망친다. C레벨은 그들의 역할이 따로 있는데도 말이다.


'마이크로 매니징(Micro Managing)'이라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들어봤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렇다. 리더가 팀원의 업무역량을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권한을 위임하지 못하고, 권한을 위임하지 못하니 사사 콜콜 간섭하고 참견하며 세부 업무를 하나하나 지시하는 최악의 협업체계. 팀원은 성장할 기회를 잃고, 역량은 정체되고, 리더는 여전히 팀원을 믿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맙소사


어느 회의실.

김 과장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방향과 계획을 리뷰하는 자리. 자그마한 시스템을 자체구축하는 프로젝트였다. 화면 5페이지, API 20개, 테이블 10개 정도가 신규로 만들어질 터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변 팀들과의 논의가 많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기본적인 스펙은 그 정도. 적당한 규모였다. 인하우스로 충분히 처리가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리뷰는 한동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목적과 방향, 컨셉, 등등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전무가 끼어들었다.

"잠깐, 듣다 보니까 좀 손을 보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맨 앞장으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무의 난도질.


전무는 갑자기 첫 장부터 PPT의 문구하나 도형 모양 하나하나를 전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적절하지 않고, 여기 이 흐름은 이해가 가지 않고, 이렇게 설계하면 안 되고, 가만 보니 색깔도 맘에 들지 않고. 인상 비평이 이어졌다.(그는 전문적인 지식은 없기에, 이건 어디까지나 '인상 비평' 수준이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 과장은 모든 질문에 참을성을 갖고 하나하나 차분히 대답했다.


"안 되겠어, 지금 바로 수정해야 내가 안심하겠네. 수정 가능하게 화면 열어봐."

결국 김 과장은 발표모드를 종료했다.

"자, 첫 장에 저 상자는 그 위쪽으로 옮기고. 화살표 방향은 반대로. 아래에 텍스트 박스 하나 넣어봐. 거기다 추진목적 넣고 그렇지. 그리고"

블라블라블라블라 전무의 PPT 대수술이 시작됐다.

그렇게 4장가량 진행되고,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 답답해. 그냥 마우스랑 키보드 이리 줘."

전무는 결국. 직접 수정을 시작했다.

14명이 모여 앉아 의논해야 할 프로젝트 리뷰 회의에서,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앉아있다.

참석한 모든 인원들은 한 마디도 없이 조용했다.


“내가 네이버를 보니까 이렇게 돼있던데 말이야, 이렇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 네이버는 잘하는데 우린 대체 왜 이렇게 못하는 거야?!?! 응?!? 쯧쯧“

연관도 없는 네이버 화면을 들먹인다. 혼자 떠들고 그림을 그리고, 또 혼자 뭐라 뭐라 떠들고 그림을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무슨 소린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참석해 있던 모든 팀원들 중 그가 설명하는 내용에 대해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당연했다. 그는 실무를 전혀 모른다.)

전무는 그렇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PPT를 혼자 열심히 만들었다.

14명의 팀원들을 한마디도 못하게 앉혀놓고.

(그걸 바라보는 김 과장의 심정은 어땠을까? 너무 안타깝고 참담하다.)


한 시간으로 계획된 회의였는데 결국 세 시간 가깝게 진행됐다.

전무는 14명 팀원들의 세 시간을 그렇게 허망하게 뺏어갔다.

회의 끝무렵. 그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첫 장부터 죽 훑더니,

"김 과장, 이렇게 내가 초안을 잡아봤으니. 다시 정리해서 내일까지 가져와." 라고 말했다.

('무엇을' , '어떻게' 정리하라는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왜'?)


팀장은,

"저, 전무님. 김 과장이 내일 휴가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럼 어쩐다?"

침묵.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래요 그럼 휴가 끝나고 봅시다.' 라고 하지 않나? 이 프로젝트가 촌각을 다투는 회사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도 아닌데. 휴가 하루를 못 다녀올 정도는 아니잖는가.


침묵.

여기 모인 14명 모두가 그 침묵의 의미를 알고 있다.

전무는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다.


김 과장은 말했다.

"그럼 제가 휴가를 취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무는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오케이, 그럼 내일 다시 보는 걸로 합시다."


회의는 그렇게 장장 세 시간이 넘는 시간만에 마무리되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실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고집.

남의 시간은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한 시간짜리 회의를 세 시간 넘게 질질 끌면서, 단 한마디 사과도 없는)

문구하나 모양하나까지 트집 잡는 최악의 마이크로 매니징.

거기에 더해 휴식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는, 휴가까지 통제하고 무시하는 임원이라니.


프로젝트의 컨셉에 대한 본인의 의지와 논리를 설명하고,

팀원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주고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면 딱 좋았을 텐데.

그 정도면 충분했을 텐데.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대리처럼 일하는 전무.

그는 김 과장에게 위임되었던 권한을 모두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셈이다.

그것도 모든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왜 그럴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그림을 크게 보고, 전체적인 이슈를 분석하는 능력이 모자란 거다.

그냥 '역량이 부족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리더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

프로젝트의 성공을 통해 회사가 얻을 이익과 그로 인한 부가적인 효과들,

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성장할 팀원들과, 그들의 성취감으로 인한 팀웤의 향상.

이런 건 그의 사고에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본인 KPI 뿐인 거다.


이쯤 해서, 임원들의 마음가짐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임원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최근 읽었던 글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선배 임원이 후배 임원에게 해준 충고에 대한 글이었다. 선배 임원은 새로 임원으로 임명된 후배에게 조언을 해 주었는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다.

"시끄럽고 자잘한 업무 건드려서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임원 1년 차 때는 눈치 보면서 조용히 지내. 2년 차에 큰 거 하나 터뜨리면, 4년 정도는 무사히 갈 수 있어."


팀의 어려운 점을 찾아 도와주는 리더십, 조직원의 업무적 성취, 팀과 조직원의 성장,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행복한 문화, 회사와 직원에게 가져다 줄 이익. 등등 깊은 생각 자체는 아예 하지 않는다.

조언이라는 게 고작, 하나 대박 터뜨려서 임원 자리를 오래 보전할 방법. 그뿐이다. 이러니 본인 KPI에 목숨을 걸고 마이크로매니징을 한다. 광팔이들이 득세할 수밖에.


출처 : 코스모폴리탄(2022.10)


마이크로 매니징은 업무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습관은 고칠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 매니징은 어렵다.

왜냐면 역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사람을 리더로 앉혀놓은 회사의 실수로, 팀은 이렇게 망가져간다. 파멸의 나선을 향해.'


리더는 팀원을 믿고 맡겨주면 된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스스로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고 동기를 부여해 주면 된다. 무슨 배를 만들지 직접 설명하고 지시하지 말고, 저 넓은 바다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면 된다. (해적들이 와서 방해하고 공격하면, 방어해 주고 지켜주는 것도 리더의 몫이다.) 그럼 팀원들은 스스로 움직여 배를 설계하고 만들어 먼바다로 탐험을 나간다. 그런 팀원이 성장해 결국 콜럼버스가 된다. 그리고 그는 다시 훌륭한 후배들을 양성한다. 이것이 선순환이 되어, 업계의 발전을 이루고, 좋은 문화를 퍼뜨리게 된다. '조종'하는 것이 아닌 '영감'(inspiration)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십.


리더십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장 프랑수아 만조니 와 장 루이 바르수 교수는 15년간 3,000명의 사업가를 만나 '유능한 직원을 무능하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결과는 마이크로매니징이었는데, 그 단계는 아래와 같다.

유능한 직원이 무능해지는 5단계


전무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김 과장님, 좋은 리뷰 잘 들었습니다. 전체적인 방향이나 컨셉이 제가 생각하는 바와 일치하네요.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ㅇㅇ팀 여러분 고생 많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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