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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19. 2022

다과회로 조직문화 구축하기

조직문화구축? 그거 쉽잖아?

대환장 꼰대파티였던 유머 1번지의 인기코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우리 팀이랑 비슷한데?


최근 있었던 회의에서, 아주 놀라운 멘트 몇가지를 들었다.

"하루 회의 몇개 해요? 내가 체크해볼까요?"
"이거 할 시간이 정말 하나도 없는거에요?"
"프로젝트 동시에 10개씩 돌리고 운영업무 몇 개씩 하고, 당연히 다 그러는 거 아니에요?"


우리 실은 <전무께서 하달하신 '명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소위 '조인트를 까인'거다.

'왜 내가 시킨거 안해?! 너희 내 부하 아냐?!' 라는 논조였다.

팀장과 몇몇 시니어들이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리소스 부족, 협업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설명했다. 그러자 나온 전무의 질문이 바로 저 위 화끈한 멘트들이었다.


'너희가 그렇게 바빠? 도대체 뭐하는데 바빠 내 눈엔 다 노는 것 같더만, 진짜 바쁜지 내가 체크해봐? 프로젝트 10개씩 동시에 돌리고, 운영업무도 다 처리하고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다 해내는게 프로아냐?' 라는 맥락으로 이해했다.


제대로 진행이 안된 이유는 '불명확한 지시' 와 '리소스 부족' , '부서간 사일로 등으로 인한 협업의 어려움' 등등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구글 같은 멋진거 기획해서 가져와요!" 라는 두루뭉술한 지시에 아래 팀원들은 모두 당황했고, 뭘 어떻게 손 써볼 겨를도 없이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지시하신 내용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용기내 말할 수 있는 팀장은 아무도 없었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하고 정말 비슷하네.) 심지어 지시 내용은 실제 우리 팀의 업무와는 동떨어진, 전무 개인의 성과 보고를 위한 일방적인 '지시’였다. (왜 해야 하는지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운영 업무에 지칠대로 지친 주니어/시니어 실무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루하루 도메인을 단지 '운영만'하는데도 인원은 부족하고, 일은 너무 많다. 이미 의욕은 바닥, 사기는 지하실. 그 상황에 아래 팀을 전부 불러놓고 다 듣는자리에서 자신이 내린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모두에게 던진 화끈한 멘트.


나는 궁금하다.

하루 8시간 중 남는 시간은 단 1분도 없어야 하는 건지?

정말 솔직히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사실 시간도 없다.)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만 살아남는' IT세계에서 '니들 진짜 바쁜거 맞냐' 라는 식의 마인드가 온당한 건지.

(여기에 '야근' 이슈까지 걸고 넘어가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여기선 법정 근로시간만 가지고 이야기한다. 물론 전무는 결국 야근특근을 종용하겠지만.)


농사로 먹고 살던 시대의 근면함을 바라는거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 생각없이 쟁기로 밭을 갈면 된다.(논인가? 아무튼. 나는 농사는 잘 모른다. 어디까지나 예시로.)

하루종일 논 일을 하는 사람은 쌀을 얻을 뿐이다.

누군가는 나무그늘에 앉아, 그 쌀을 싸게 매수해 떡을 만들어 2배로 팔고 부자가 될 상상을 하겠지.

전무는 정말 땡볕아래 하루종일 호미질 하는 머슴을 찾고있는 것일까.



"오케이! 좋아요, 다들 힘들단 말이죠?"
"그럼 의견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간담회 자리를 만들어봅시다!"
"김팀장! 자리 마련해요, 과자랑 음료수 이런것도 좍~ 깔아놓고!"

이건 오늘 갑자기 전체 회의에서 전무가 던진 멘트.

과자랑 음료수를 먹으며 속 이야기를 해보란다. 맙소사.

보나마나 저 자리에선 아무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을꺼다.

본인 혼자 일장연설을 늘어놓겠지. (모든 리더분들, 자기 혼자 떠드는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 잘 살펴보세요. 높으면 높을 수록 망해가고 있는겁니다. 본인이 말을 멈췄는데 10초 이상 정적이 흐른다면 그냥 모임을 파하는게 좋습니다.)


이게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왜 잘 나가는 IT기업들이 '모두가 솔직히 의견을 내놓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지 그는 모른다. 솔직히 의견을 내놓는 문화가 아니라면, 매니지먼트 그룹은 '일이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영원히 알 수 없을꺼다. 실무진의 고충은 쌓이고 쌓여 언젠간 그대로 폭발하겠지. (전무는 아마 절대로 영원히 알 수 없을꺼다.)

문화는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을 들이고 정성을 쏟고, 리소스와 자원을 꾸준히 투입해야 될까 말까다. 리더가 신경쓰고 가꿔줘야 '문화'는 탄생한다. '좋은 문화'는 1,000원 짜리 과자와 음료수를 대충 깔아놓고 어설프게 빚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 하루에 몇 시간 일하냐, 정말 시간 없는거 맞냐'는 질문을 던져 받아낼 수 있는 대답은 더욱 더 아니다.


시킨 걸 왜 '안' 했는지가 아니라,

시킨 걸 왜 '못' 했는지 물어보고, 도와주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애초에 '시켜서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베스트. 시켜서 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뿌리부터 뒤집어 엎어야 한다.

자리 보전에 급급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좋은 개발 문화 구축(?)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대한민국 대기업 IT문화, 그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이렇듯 아득하다.


자, 그럼 이제 다과회나 준비하러 가볼까.

무슨 과자가 맛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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