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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Feb 02. 2022

하고 싶다가도 때려치게 만드는 마법

아바다 케다브라


통찰이 느껴지는 글을 만나는 건, 사막을 걷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기쁜 일이다.

모래알 속에서 우연히 진주를 찾아낸 것 같기도 하다. 읽고 나면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낀다. 그만큼 반갑고 또 소중하다. 소중한 건 나누고 싶다.


좋은 아티클(아티클이라는 단어 외에, 마땅히 적당한 명칭을 찾지 못했다.)을 읽게 되면, '아 이건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같은 글을 가지고 여러 방면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듣고싶다.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이런저런 생각의 확장을 느껴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우리 도메인 개선점이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소중한 통찰을 기대할 수도 있다. 굳이 대단한 게 아니어도 좋다. 뇌를 깨우는 역할 정도만 해도 충분하니까.


그래서 팀 슬랙에 링크를 올린다.

“좋은 글인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정도로 가볍게 내민다.

"오, 흥미롭네요." 같은 답글이 달리기도 하고,

"이거보니까, ㅇㅇㅇ 생각나네요, 저도 마침 관심있던 내용인데. 이것도 한 번 읽어보시죠" 와 같은 확장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 나름대로 다들 뇌가 활성화되는 듯 하다.

흔히 말하는 '잡담' 수준이어도 좋다. '잡담'도 큰 의미가 있는 팀 활동이니까.

(경험상 잡담이 아예 없는 조용한 팀은, 성과도 조용할 경우가 많더라.)


그때 메신저에 올라오는 실장의 멘트,

“내용 좋네요, 김 대리. 다른 팀도 읽을 수 있고, 이사님께도 공유드리게 요약해서 리포트 형식으로 제출부탁드려요. 조만간 발표 미팅 자리 잡아주시구요 ^^”


문맥과 전혀 조화롭지 않은 저 웃음 이모티콘이 매우 소름끼친다.

'나는 좋게 이야기한다. 그러니, 이런 지시쯤은 얼마든 할 수 있다.'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미소.


일단, 저렇게 나오면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일도 많은데, 저걸 정리하고 요약해서 리포트를 만들어, 임원에게 보고하라고?

나는 그저, 좋은 글을 다 같이 읽어보자고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다시는' 아티클을 공유하고 싶지 않아진다.


저 아티클 공유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게 아니다.

순전한 선의로, 우리 모두의 지적 능력 향상을 위해, 흥미를 섞어 '딱 이정도만' 하고 싶었던건데.

굳이 일을 추가로 만들고 싶지 않아하는게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다. 특히 회사에서 만큼은 더욱 더.

괜한 일을 불러왔다는 생각에 짜증이나고, 힘이 빠진다.

', 내가 대체  글을  슬랙 올렸지.' 라는 후회만 머리를 휘감는다.


'다시는 이런 공유 따위는 하지 않겠다.' 고 다짐한다.

이런 분위기는 해당 대화의 흐름을 읽은 주변 동료들에게도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저거봐, 글 공유하면 임원 리포팅을 해야 되는구나'

이제 아무도 공유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마법같은 일이다.

순식간에 자발적인 동기를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

스스로 움직이는 동기부여 조차 삭제시켜 버리는 치명적인 주문.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무서운 주문이 있다.

아바다 케다브라

살인 주문이다. 방어불가.

예수시대의 언어인 '아람어'가 어원으로 '이 말과 함께 사라져라' 라는 뜻이라고 한다.


'반드시 보고자료를 받고야 말겠다.'는 볼드모트 실장의 결연한 표정을 보라.


"이사님 보고 드리게, 요약해서 리포트 작성 및 발표 부탁드려요^^"

대한민국의 팀장님들,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아바다 케다브라!' 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좋은 글을 나누는 문화는, 이 말과 함께 사라지리라!'


그냥 칭찬 한마디면 족했다.

'생각해 볼 게 많은 내용이네요, 좋은 글 공유 감사해요' 정도로 가볍고 쿨하게.

지식을 공유한 적극적인 태도 자체를 칭찬하고, 그런 문화를 장려해야 하는데.

생각하는 건 오로지 윗 사람에게 보고하고 칭찬받을 생각 뿐이다. (이건 내가 끊임없이 이야기 했던, '직책자 자리 보전' 과 관련이 있다. '임원님~ 저희 이런것도 같이 스터디 한답니다~ 이게 다 제가 리딩하는 덕분이죠~')


윗선에게 잘 보이려고 보고 또 보고, 오로지 보고 타령이다.


하고 싶다가도 때려치게 만드는 기적같은 마법이다.

이제 단체 채팅방에는 연예인 가십이나 날씨, 실없는 아재개그 따위나 올라오겠지.

팀장은, 스스로 움직이는 팀원의 동기를 차단하고 제거해버리는 화끈한 주문으로

오늘도 팀을 한 걸음 후퇴시킨다.


- 참고 : '해리 포터'에서 '아바다 케다브라' 주문을 사용한 마법사는 '아즈카반'이라는 감옥에 끌려가서 종신형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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