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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an 18. 2022

우아한 정년은 존재할까?

'인턴',  멋진 어른의 모습을 제대로 그린 영화



정년(停年)

관청이나 회사 등에서, 직원이 퇴직하도록 정해져 있는 나이. 정한연령(停限年齡).


사회적으로 정년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기대수명이 늘어난 만큼 정년을 연장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고,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위해 정년 연장은 불필요하다. 오히려 은퇴 이후의 삶을 기본소득으로 보장하자는 의견도 있다. 수학이 아닌 논쟁에 정답은 없다. 상황에 맞는 판단만 있을 뿐. 

과연 현재 사회에 존재하는 '정년'이라는 제도는 올바르게 운영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내가 입사하던 시점에 근무하던 당시 상위직급자들의 근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선배들의 모습이 바로 내 미래의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올바르게 정년의 길을 걷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일단 간단하게 설명해본다면.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주로 당시 30대 후반의 인물들이 조직장을 맡고 있었다. '소파트 리더' 라고 불리던 사람들이었는데, 운이 매우 좋았던 케이스였다. 그 당시에는 인사적체도 없었고, 위아래로 사람도 많이 없었기에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바로 리더 자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 이미 리더였으니, 아마 30대 초중반 부터 리더였으리라) 그들은 실무는 거의 하지 않았다. 주로 협력업체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진행했다. (이거 하세요, 저거 하세요.)


그렇게 그들은 한 회사에(내가 퇴직한 이후에도 계속 다니고 있으니) 적어도 25년이상 근무하고 있다.(현재진행형) 고이다못해 썩어버린 물들이 주를 이루는 나의 전 직장 특성상 당연할 수 있겠지만, 요새 IT업계에서는 흔치않은 일이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로, 어떤 분은 마땅히 실무가 없는 상태로 40년째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맙소사.

괜찮다. 그들이 올바른 정년의 길을 걸어가기만 한다면 나같은 IT인에게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다. 나도 본받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현재 50대 중후반의 나이에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


A부장 : 이름 모를 부서에 팀원으로 근무중. 주업무는 각종 문서 취합

B부장 , C부장 : 정체모를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문서관리 등 사이드업무 담당

D차장 : 진급 누락, 실장 티타임 및 술자리 파트너 담당, 이런저런 수명업무 진행

E부장 : 팀 근태관리 (근태만 관리)

F부장 : 조직문화 개선, 현황 취합 등 기획실 수명업무


주로 문서 취합(부서 출근자 명단, 백신 접종 현황 취합 등), 근태 관리, 각종 수명업무 등을 하고 있단다. '실무를 한다' 라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솔직히 말하면(주변 후배들의 의견으로는) 하는 일 없이 앉아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딱히 보직도 담당 서비스도 없는 묘한 상태.


그들은 올바른 정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글쎄. 아닌 것 같다. 그냥 마지못해 앉혀놓는 이 상황이 그들에게도, 그들의 후배들에게도 달가울 리 없다. 

결국 그들이 지금 그렇게 된 건, 실무를 하지 않고 누구든 대체할 수 있는 관리업무만 했기 때문인데. 왜냐면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은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정치질만 했던 것'은 당시 시대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다. 라고 이해해야 하는걸까. 잘 모르겠다. IT 바닥에서 실무를 내려놓고 관리자로만 살아온 지난 20년이 넘는 생활에서 그들은 어떤 만족감을 느꼈을까 매우 궁금하다. 그들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개중에는 정말 아~무일도 하지않고 기계처럼 업무 분장만 했던 사람들도 있다. (아니 솔직히 많았다. 저 위 ABCDEF도 '업무분장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존경심 따위는 없는 것, 솔직히 인정한다.)


업무분장을 하면서도 후배들의 커리어 관리와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노력해줬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졌을거다. 그것이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니까. 5분 늦으면 깨고, 점심 같이 안먹어주면 삐치고, 부당한 지시 안따르면 보복하고, 회식 빠지면 갈구고 그런게 매니지먼트는 아니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그들은 존경심 따위는 1도 생기지 않게 행동했구나)


내가 이야기하는 건, 

정말 열심히 본인의 과업(설령 그것이 순수한 매니지먼트라도)에 충실했던 제대로된 '어른'을 말하는 것이다. 존경할만한 길을 걸어온 선배들의 근황이 저 위 ABCDEF 와 같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제대로 된 정년의 길을 걷는 멋진 시니어들을 만나고 싶다.


실무에서 밀려나, 사측에서 퇴직시키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것을 '정년'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마땅한 역할이 부여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에 남아있으며 월급만 받는 것을 '정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먹고 살기 위해' 참아내야 하는 숙명인걸까.

참, 답 안나오는 고민이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정년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그 답이 되는 멋진 어른을 하루 빨리 만나고 싶다.

만약 만날 수 없다면, 내가 그런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당신에겐 그런 멋진 선배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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