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곱빼기 시켜도 될까요?
시청 앞에서 근무를 시작했던게 벌써 15년 쯤 전이다. 당시 나는 갓 입사한 애송이였는데, 선배들은 군데군데 숨어있는 시청 근처 맛집에 나를 데려가 주곤했다.
그 많은 맛집 중에 ‘유림면’이 기억에 남는다.
유림면.
무려, 1960년에 창업한 국수집이다. 긴 역사와 훌륭한 맛이 반드시 인과관계를 가진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지표 정도는 될 수 있다. 망하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당시 나를 데려간 선배가, '여긴 비빔메밀이 맛있다'고 해서 주문했다. 뭐 별거 있겠나 싶었는데, 웬걸, 매콤한 소스가 묘한 매력이 있었다. 요새 유행하는 달콤한 느낌이 아니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한데, 자꾸 끌리는 감칠맛. 일반 비빔면보다 묵직하면서도 진한 양념이 고급진 분위기를 냈다. 나는 요리전문가가 아니라서 조미료를 사용했는지 이런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맛있었다. 중독성이 있어서 잊을만하면 다시 생각나는 그런 맛.
메밀국수와 돌냄비우동도 별미였다. 하지만, 결국엔 비빔메밀을 선택했다. 유명 맛집에서는 시그니쳐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간이 흘러 나도 선배가 되었다. 후배들에게 밥을 살 일이 있으면, 종종 가곤 했다. 비빔메밀을 먹고싶은 사심을 채우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받았던 것처럼 후배들에게도 좋은 경험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그게 선배의 존재 이유 아니겠는가. 그렇게 내리사랑은 이어지는 법이니.
갈 때마다 사람이 많아 대기를 했고, 점심시간엔 2층까지 꽉꽉 차있었다.
나는 직장과 집의 근접도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청앞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충정로에 살았었다. 덕분에, 5살 아들의 주말 축구교실이 끝나면 매번 유림면에 들러 국수를 먹고오곤 했다. 일종의 루틴이었다. 나는 비빔메밀, 아들은 냄비우동(오뎅이 들어가 있었걸로 기억한다.) 아들은 오뎅을 좋아했는데, 뜨거운 우동에서 오뎅을 건져내 작은 입으로 후후 불어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이젠 회사를 옮기고 이사를 한 터라, 그 근처에 가본지 벌써 7년이 넘었다.
잊고 있었는데,
얼마전 마트에 갔더니 이런게 있더라.
반가웠다.
오래 전 친구를 만난 기분. 안그래도 종종 생각나던 차였는데 잘됐다. 게다가 피코크는 믿을 만한 브랜드아니던가. 바로 구매했다. 집에 와서 즉시 조리했다. 두개 끓였다. 맛있는 건 역시 곱빼기로 먹어야 제맛이니까. 최상의 맛을 경험하기 위해 제조 메뉴얼을 정독하고, 과정을 철저히 지켰다. 혹시나 면이 불까봐 찬물에 열심히 헹궜다. 큰 볼에 넣고, 양념장에 버무리니 그럴듯한 냄새가 난다. 두근두근.
결국, 반도 먹지 못했다.
이도저도 아닌 맛.
뭐야 내 추억 돌려줘요.
유명 맛집과 콜라보하여 내놓은 인스턴트는 사 먹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라고 정신승리를 해 보았다. 발품을 들여서라도 직접 가게에 가서 먹는게 맞나보다. 기왕 이렇게 된거, 오랜만에 유림면 본점에 다녀와야겠다. 미각 정화가 필요하다.
그 때 유림면에 데려가줬던 선배들은 잘 계시려나.
맛있는 음식 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나저나,
당신의 추억 속 맛집은 어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