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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ug 30. 2023

환타 4캔 만큼의 슬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퇴근시간이 한참 지났다. 바깥은 깜깜하다.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챙겼다.

이미 대부분 퇴근하고 층 전체가 비어 있어, 사무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물건을 정리해 들고, 제 자리에 두려고 긴 복도를 걸었다. 불은 왜 꺼놓은거야 대체.

복도 중간 중간 회의실이 있다. 당연히 이 시간에 회의하는 사람이 있을리 없지. 그런데, 문이 열려있던 한 어두운 회의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응? 뭐지? 걸음을 멈췄다. 인간은 호기심을 참지 못한다. 그냥 지나가면 될 껄, 어둠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 눈이 어둠에 서서히 적응하며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홀로 서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등골에 오싹한 기운이 흘렀다.


남자는 나만큼이나 놀란 얼굴로 굳은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한 손에 2개씩, 양 손에 오렌지색 환타 캔 4개를 들고 가방에 넣는 중이었다.



회사는 사무실 한 켠 캔틴에 냉장고를 비치하고, 각종 음료수를 채워놓았다. 직원들이 업무 중에 마실 수 있는, 일종의 복지인 셈이다. 나도 목이 마르면 자주 이용한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는 걸로 보아 다른 팀 직원으로 짐작되는 그 남자. 그는 굳이 어두운 회의실로 음료수를 4캔이나 가져와 가방에 챙겨넣고 있었다. 사무실 본인 자리에서 넣으면 누군가 볼 수 있으니까. 그는 창피함을 알고 있다. 알고도 행동한 것이다.


모두 퇴근한 사무실, 은폐엄폐가 가능한 불꺼진 회의실 구석에서 오렌지 환타 캔 4개를 몰래 가방에 넣다가 ‘불행히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회의실에 있던 사람을 본 나도 놀랐고, 들킨 그도 놀랐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2초정도 가만히 서 있다가, 마치 안본척, 못본척, 모른척, 다시 복도를 걸었다.

뒤에 들리는 소리로 짐작컨데,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급하게 회의실을 나와 퇴근했다. 음료수 4개가 들어있는 가방을 든 채.


왠지 모르게 슬펐다.

이유는 모르겠다.

딱 환타 4캔 만큼의 슬픔이었다.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혹시 노모께서 환타를 좋아하시는 데 살 돈이 없다던가, 환타가 부족한 평행우주에서 온 우주인이라던가 하는 상상을 하며 노력했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



이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는 야근자들을 위해 김밥을 준비했다. 늦게 까지 일하는 직원들을 위한 복지의 일환. 배고프지 말라는 배려. 그런데, 정시 퇴근하면서 그걸 몇 개씩 가방에 집어 넣어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나 당당하게 김밥을 가방에 쟁여넣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감정도 역시 슬픔이었다.


야근자들이 ‘아니 야근 김밥은 대체 왜 이렇게 금방 없어지나요?‘ 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도 말이 많으니, 인사팀에서는 김밥 옆에 '야근자들을 위한 김밥이니,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라고 큰 폰트로 출력해서 붙여놓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김밥을 더 많이 갖다놓으면 되지 않냐! 왜 사람 무안을 주냐!"고 화를 냈다. 블라인드에서 익명으로 말이다.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야근자들이 김밥 말고 더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먹게 하려고 일부러 가져가는 거라던가, 김밥을 혐오하는 ‘안티김밥조직’의 일원으로 가져가서 쓰레기통에 버리려 한다던가 하는 상상을 해봤다.



옛 과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고도로 발전된 문명의 기준은 얼마나 큰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지 여부이지만, 결국 도덕성이 결여되면 오래가지 못한다.'


엥? 과학기술이 향상하면 문명의 발전은 당연한 것인데 거기에 도덕성 이야기가 왜 나올까?


도덕성이 낮은 문명은 어쩌다 큰 에너지를 다룰 수 있더라도 스스로 자멸한다는 거다. 당장 인류만 봐도 핵폭탄의 위협에 하루하루가 위태롭지 않은가. 게다가 환경 파괴를 보라. 바다는 넓으니까 괜찮다며 콸콸 방류하는 핵 오염수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결국 도덕성 결여가 인류의 발목을 잡는다.


고작 환타 4개 때문에 인류의 도덕성과 문명의 발전을 이야기 하는 것이 우습다. 하지만, 나는, 작은 도덕성이 모여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형성한다고 믿는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며, 줄을 서고, 차례를 지키는 등의 사소하고 기본적인 행동들이 결국 이 사회의, 우리 문명의 지표이자 표상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현상들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보여주잖는가. '깨진 유리창 효과'라는 것이 있다. 어둠 속에 숨어 환타를 몰래 가방에 집어넣는 모습이 ‘깨진 유리창’ 그 자체가 아닐까.



버리지 말라고 좀 제발


언제부턴가,

뻔뻔하게 행동하는 것이 쿨하다는 표현으로 포장되고 있다.

타인의 무례함이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면, 그 정도도 못견디는 나약한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를 논하면, 그럴거면 혼자 살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그까짓 음료수 몇 개 챙긴거 가지고 째째하게 굴긴,

김밥 몇 줄 가져간거 가지고 속좁게 굴긴,

공금 몇 푼 횡령한거 가지고,

권력으로 친인척 몇 명 특혜 준거 가지고.


추락한 도덕성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사고 뉴스가 요새 자주 눈에 띈다.

인류는, 아니 적어도 한국은 고도로 발달된 빛나는 문명의 반열에 오르긴 어려울 것 같다.


딱,

환타 4개 만큼 슬픈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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