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전투의 조건
제목이 뭔가 부족하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 해보자.
IT조직은 팀플레이지만 철저히 개인플레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물론 IT는 조직의 문화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맞다. 잘 되는 IT조직이 어느정도 종교와 비슷한 느낌을 갖는 이유다. 하지만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듯, 구성원들이 중요하다. 그저그런 신자들이 모이면 종교는 세를 잃고 망한다. 사이비로 전락한다. 구성원이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이 모여있는가. 그것이 팀플레이의 핵심이다.
구성원 각자의 역량이 바탕이 되어야, 그제야 비로소 조직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문화를 논하기 전에, 개인역량이 갖추어졌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흔히 ‘인재밀도’라고 이야기 한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당연하게도 이건 절대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개인의 역량에는 인성과 태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IT조직은 오히려 개인플레이에 가깝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예전 팀을 맡던 시절, '우리 팀은 델타포스 같은 소규모 특수부대의 모습을 띠었으면 좋겠다'고 팀원 분들 중 몇몇에게 말씀드렸었다. (당시,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던 K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뭐지? 이 미친놈은?' 이라는 표정이었다.)
‘소규모 특수부대와 같은 도메인 팀’의 의미는, 군대처럼 강한 규율과 근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 큰 성인끼리 몇 시까지 출근하고, 옷은 어떻게 입고, 업무시간 자리 이석은 자제하라는 둥의 지시는 촌스럽고 유치하다. 우리는 성과로 이야기 하면 된다. 특수부대가 그렇다. 델타포스에서 두발단정, 정시출근 지적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각자 화기를 점검하고, 체력 훈련을 한다. 개인의 전투 역량과 팀을 위한 헌신, 그거면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특수부대는 개개인의 훈련량과 역량이 팀의 생존 그 자체에 강한 영향을 준다. 아니 거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전에서는 B급 팀원 한명의 실수가 팀을 몰살 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팀훈련에 추가로 개인훈련을 강하게 밀어부치는 것이다.
전투에서 동료들의 목숨을 지키고 승리하기 위한 개인의 실력이 중요하다. 그게 본질이다.
IT조직도 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팀플레이지만 개인플레이인 것이다. (물론 싸가지없는 태도는 당연히 배척받는다. 또라이 천재 개발자가 대접받는 시대는 지났다.)
팀원 개개인의 역량이 그만큼 중요하며, 그것이 제품의 수준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뛰어난 A급 인재에게 근태나 복장으로 지적하는 건 촌스럽다. 재택하지 말라고 하는 건 유치하다. 그런 팀에서 헌신과 몰입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모두 도망가겠지. 개인 역량이 뛰어난 A급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한다. 그들은 제품이 엉망인 꼴을 참지 못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워라벨의 의미는 B급들이 생각하는 그것과 다르다. 그들은 환경만 잘 갖춰주고, 좋은 동료들을 곁에 모아주면, 엄청난 퍼포먼스를 스스로 낸다. A급들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특수부대와 같은 조직은 뜻밖의 변수에도 당황하지 않고 민첩하게 대응하며 제품을 승리로 이끈다.
내가 여러 글에서 누차 이야기한 A급만 모아놓은 팀의 힘은 개인플레이에서 나온다. 따라서, 채용이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A급은 이미 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량강화를 위한 개인훈련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독서가 될 수도 있고, 교육수강이 될 수도 있으며, 글쓰기가 될 수도 있다. 델타포스가 매일 아침 구보를 하고 체력 훈련을 하듯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는 것이다. 개발자, PM을 가리지 않고 기본기가 중요하다. 그 기본 위에서 비로소 좋은 품질의 코드가 나오고 혁신이 일어난다.
IT산업은 팀플레이 이면서도 무섭도록 개인플레이다.
제품의 완성도를 올리고, 고도화하기 위한 전략전술 구축 및 실행은 철저하게 개인의 기본기에 달려있다.
리더의 중요성
그토록 개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IT서비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개인은 누굴까. 바로 리더다. 리더 한명이 제품을 망치고 조직을 망하게 하는 건 쉽고 빠르다. 왜 저 회사는 일정 수준까지 발전하다가 정체되고 망해가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든다면 리더를 바라보자. 리더의 역량이 거기까지인거다. 델타포스에서는 한 명의 부족한 팀원이 팀 전체를 몰살시킬 수 있다고 앞서 이야기 했다. 다행히도 현대 IT조직에서는 서비스 실패로 죽을 일은 없다. 덕분에 또라이 한 명 때문에 조직이 망가지진 않는다. 또한, A급들로만 이루어진 IT팀은 개개인의 도덕적 태도나 인성이 갖춰져있기 때문에 B급 한 명이 팀을 망칠 수 없다. 자체 정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더의 경우는 다르다. 역량이 부족한 리더 한 명이 팀을 망칠 수 있다. 아무리 수평적인 의사소통 문화를 갖췄다고 해도 의사결정은 결국 수직적일 수 밖에 없기에, 리더의 불량한 태도나 글러먹은 인성, 잘못된 결정이 제품도 망치고, 조직문화도 망친다.
그렇다면, 일을 열심히 하는 리더면 되는 것인가? 어떤 회사의 IT임원은 매주 정기회의를 개최, 관련자 수십명을 모아놓고 기획서를 한 줄 한 줄 직접 리뷰한다던데, 그럼 그는 일을 잘하는 리더일까? 열심히 하니까 잘하는걸까? '문구가 맘에 안들고', '버튼 색이 이상하고', '그건 뭐냐', '저건 또 뭐고', '화면에 정보를 더 보여줘라' 등등. 임원이 할 일이 저게 맞는지?
리더는 팀의 타겟과 목표를 명확히 주지시키고, 잘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팀원의 사기를 높여주면 될텐데, 대체 왜 저러는 걸까? 통제광이라서? 물론 소시오패스 control freak도 일부 있겠지. 하지만, 앞선 글에서 마이크로매니징은 무능력의 지표라고 했다. 해당 리더의 역량이 그 뿐인 것이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개인플레이어야 할 최고리더가 그저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 휘하 조직은 전투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다.
델타포스의 팀 리더는 총을 어떻게 잡아라, 방아쇠는 이렇게 당겨라, 전투할 때 이런 대형으로 움직여라, 일일이 how to를 지시하지 않는다. 그건 팀원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학습하면 될 일이다. 델타포스 리더는 팀의 비전을 제시하고, 위임한다. 그 뿐이다. 그러면, 부대원들은 책임지고 실행한다. 목숨을 건다. 그들은 매우 뛰어난 개인플레이어 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능력한 임원이 수십명의 담당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일일이 일정을 체크하고 기획서를 리뷰하고 자기 의견을 세세하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상사 눈치보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만 남는다. 어차피 까이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할 텐데, 굳이 고민해서 내 의견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거다. 주도적이며 창의적인 개인플레이어들은 그런걸 견디지 못한다. 결국 A급 팀원은 이탈하고, 오갈데 없는,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B급 C급만 남는다. '캬~ 역시! 최고의 리더이십니다!' 낙하산으로 데려온 딸랑딸랑 딸랑이들만 남겠지. B급 C급 들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파벌을 형성하여 세력을 다투기도 한다. 소위 정치질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바로 수천년간 이어온, 인간 본성에 박혀있는 아첨의 역사이며, 패망의 공식이었다.
우리는 반드시 뛰어난 개인플레이어를 채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훌륭한 팀플레이가 나온다.
리더는 더더욱 중요하다.(회사의 존폐가 걸린 문제다.)
채용이 전부다.
물론 여러분도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개인 훈련을 미루지 말자.
조금씩 꾸준히 성장하는 플레이어가 되자.
그러면 팀플레이도 자연스럽게 좋아진다.
마치 델타포스처럼 말이다.
부디 전투에서 승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