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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Sep 23. 2023

누구나 학살자가 될 수 있다

리더가 불러오는 악의 평범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는 ‘101 예비 경찰 대대’ 라는 조직이 있었다. 대대의 역할은 점령지인 폴란드의 치안 유지였다. 처절한 전투를 치르는 전방과 달리, 이미 점령한 지역인 폴란드에서의 근무는 목숨을 건 위험한 임무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널널했던 임무 특성상, 대대원은 전투에 특화된 군인들일 필요는 없었다. 대부분 노동자 출신으로 부두 일용직, 트럭 기사, 목수, 배관공, 농부 등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뇌당하지도 나치화되지도 않은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살인과는 거리가 먼’ 일반인들이었던 것이다.


대대원들은 한창 전쟁이 진행되던 와중에 리더로부터 명령을 받는다.


살인을.


그것도 대량학살을 명령 받는다.

평범했던 대원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민간인 약 3만 8천명을 학살했다.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들은 점점 살인에 둔감해졌다. 총 3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졌는데,

그룹 1(30%) : 능동적 주도자. 살인을 즐기게 된 이들. 가학적인 고문과 살인을 거리낌없이 저질렀다.

그룹 2(50%) : 수동적 순응자. 주춤주춤 하지만 결국 리더의 명령에 따라 살인한다.

그룹 3(20%) : 적극적 거부자. 용기있는 소수. 살인을 하지 않겠다며 리더의 명령을 거부한 사람들. 이들은 감시가 소홀할 때 규정을 어겨가면서도 일부 희생자들을 몰래 살려주기도 했다. 결국 따돌림, 배제, 나쁜 평가 등의 차별을 받게 된다.


101 예비 경찰 대대 대원들의 기념사진


능동적 주도자(30%), 수동적 순응자(50%)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왜 집단 학살자가 되었을까? 500명도 안되는 인원으로 약 1년 남짓한 기간만에 유대인 3만 8천명을 학살할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하지만 돼지나 소를 도축한게 아니다. 사람을 죽였다.


평범했던 사람들이 학살자가 되었다. 그 ‘악의 평범성’을 일으키는 조직의 치명적인 위험. 이것이 집단 동질화의 무서움이다. 인간은 집단에 들어가면 그들에게 동화되어 똑같이 행동하게 된다.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거부하고 인간답게 살기위해 투쟁하고, 싸운다.


그 용기있는 소수인 20%의 '적극적 거부자'에 주목하자. 이들은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다. 그 유명한 1971년 스탠포드 감옥 실험에서도 교도관중 단 20%만이 죄수들에게 벌을 가하지 않았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20%의 소중함은 어떤 조직이든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20%에 대해 '회사 방향성과 맞지 않는 조직원'으로 낙인찍고 괴롭힌다.


"ㅇㅇ님, 기획이 회사 방향과 얼라인이 안되어 있네요?"

판교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말 중의 하나로,
그 뜻은 '왜 내가 시키는대로 안해?'일 가능성이 높다.


그 대단한 '회사의 방향성'이란 무엇이냐. 대부분 리더의 개인적인 욕심이다. 보통은 '돈' 혹은 '권력' 둘 중의 하나. '여기는 놀이터나 대학교 동아리가 아니에요. 회사는 수익을 내야 존재합니다. 그러니 잔말 말고 지시대로 따르세요.' 라는 논리를 들이밀며 평범한 사람들을 수동적 순응자로 만든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나치 독일도 똑같았다. 유대인 대량학살을 지시하며 '여기는 놀이터나 대학교 동아리가 아니에요. 국가는 전쟁에서 승리해야 존재합니다. 지금은 전시입니다. 그러니 잔말 말고 지시대로 따르세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방향성은 '유대인 대량 학살'이었던 것이다. 결론은 똑같다. 용기있는 20%는 불이익을 당하고 대부분 조직을 떠난다. 조직에는 '얼라인이 맞는' B급 C급 등외급 들만 남아 대량 학살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그렇게 인류는 비극을 맞이한다.



현대 직장에서는 집단으로 동질화시키는 그 무엇을 ‘조직 문화’라고 표현한다. 조직문화에 따라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 태도, 성향이 결정된다. 조직에 일단 들어오면 ‘집단 동질화’가 이루어지며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문화에 순응한다. 조금씩 변해간다.


그렇다면 그 문화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바로 ‘리더’다. 평가권을 가진 사람. 조직원들에게 명령하고, 거부하면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 그 리더의 가치관, 성향, 인문학적 소양 등에 따라 조직원을 대량 학살자로 만들수도 있고, 평화를 위해 싸우는 저항군으로 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조직원의 출신 성분은 별로 상관이 없다. 평소에 조용하고 순종적이며,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선량한 사람도 조직이 움직이면 결국 ‘살인마’가 된다. 조직이 부여한 리더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리더가 중요한 이유이다.

문화와 분위기를 만들어 집단을 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리더를 제대로 앉혀놓아야, 제품이, 팀이,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101 예비 경찰 대대에게 민간인 대량 학살을 지시했던 리더는 사이코패스 괴물이 아니었다. 교수, 귀족 등 출신성분이 명확하고 지식이나 지위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좋은 학교 나와서 시키는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리더를 시키면 안되는 이유다.


자기보다 윗사람에게는 순종적으로 굽신거리고 아랫사람에게는 단호하고 강한 척 함부로 대하는 것은, 지능이 떨어지고 공감능력 없는 나르시스트의 특징이며 갑질하는 무례한 부류들의 특성이다. 반드시 조직 내에서 제거해야 한다. 대량 학살을 지시받으면 저항할 수 있는 사람. 불의에 거부할 수 있는 용기와 부하들을 보듬을 수 있는 덕을 갖춘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긴 역사를 통해 충분히 교훈을 얻었다.


101 예비 경찰 대대에게 대량 학살 명령을 내렸던 리더는

전쟁이 끝나고 전범재판에 넘겨져 교수형에 처해졌다.


명심하자.

20%를 소중히 아끼자.

그러려면, 바른 리더를 제대로 앉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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