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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24. 2021

네, 유럽에 또 혼자 왔습니다 4

2018.05.23 (스페인)

4일차


6시 기상. 7시 아침식사.

조식은 커피, 빵. 끝. 익숙하고 편하고 맛있다. 딱 좋다. 아침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정신차리는 시간이다. 어제 여행을 정리하고, 오늘 스케쥴을 숙지한다.


이제는 스페인 남부로 출발이다.

라만차에서 수도원크림 샀다. (또 쇼핑을.)

콘수에그라 풍차마을로 이동했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라만차는 ‘건조한 땅’이라는 뜻이다. 라만차 지역이다. 언덕위의 풍차 구경 사진 찍고, 걷고, 더웠다. 풍차마을의 관광 포인트는 파주 헤이리마을보다도 못했다. 정말 그냥 풍차 몇개 있고 끝. 그래도 여기는 스페인이잖아. 스페인에 있다는 자체로 '풍차마을'은 의미를 갖는다. (돈키호테도 풍차와 싸웠지 않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이 탁 트여 시원했다. 정말 복받은 동네다.



점심먹으러 출발. 점심은 풍차마을 근처 샐러드, 생선구이, 오렌지. 대충 먹고 식당 앞에서 햇빛쬐면서 앉아있었다. 스페인 노인분이 쳐다보셔서 인사했더니, 꼬레아 축구 뭐 그런 얘기 하시는 듯하다. 같이 사진도 찍었다.


이제 차타고 3시간 넘게 달릴 예정이다. 바로바로 알함브라 궁전을 보러간다.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에 있다. 그라나다는 오래된 도시로 컬럼부스가 여왕과 계약한 곳이다. 계약 이름은 '싼타페'

알함브라 궁전은 이슬람 성이다. 기독교 세력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마지막까지 항쟁한 곳으로서 이슬람식 건축 특징을 갖추고있다.

물흐르는 소리, 새소리밖에 없는 정원. 여기 와보니, '알함브라의 궁전'이라는 곡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다. 성 탑위에서 기독교 군사들이 오는지 망루에서 지켜보던 천년전 병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슬람이 스페인에서 쫓겨나면서 느꼈을 허망함과 슬픔이 궁전 여기저기에서 느껴진다.

이런 오래된 유적지를 올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기분이다. 시간과 공간은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된다는 양자역학 이론을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다. 지금 이 공간에, 과거의 시간이 같이 흐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시간은 흐르는게 아니라 공간처럼 똑같이 그저 존재하는건 아닐까. (나는 무슨 소릴 하는걸까)

걸어도 걸어도 전혀 힘들지 않다.



호텔로 돌아와서 저녁(바람에 흩날리는 밥 과 장조림같은 삼겹살찜 등)먹고 알바이신(이슬람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 천년전에 살았던) 의 산니콜라스 전망대로 이동했다.

마을은 천년전 이슬람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 그대로 좁은 골목이다. 이슬람식 주택 등 역사의 증거가 그대로 남아있다. 해질녘이라 더 묘한 분위기다. 알바이신 안의 아랍시장에 구경 갔다.

인상깊은 광경 하나. 아랍시장 골목 맨 아래쪽에, 시장을 드나드는 차량을 통제하기 위한, 통제용 길막는 금속통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대씩 지나가게 하고 있었다. (금속통이 내려가면 차량 1대가 지나가고, 다시 금속통이 올라가면 길을 막고. 다시 통이 내려가면 1대가 지나가고 그런 식으로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방식) 초행길인 어떤 폭스바겐 가족이 그만 실수로 원통을 들이박았다. 빠직하는 소리와 함께 범퍼는 우지직 부서지고, 사람들은 몰려들고, 그 순간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 스페인 가장의 눈과 마주쳤다. 뭔가 슬펐다. 가장으로서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 그런 슬픔. (뒷 좌석에는 어린 자녀 둘이 앉아있었다.) 차를 뒤로 빼려고 후진했지만 범퍼가 금속통에 박혀서 잘 안됐는데, 옆에선 스페인 와이프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남자는 변명하고.. 렌트카 빌려서 여행중인 것 같던데.. 전세계 모든 가장들 파이팅입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해봤다. 다시 한번 나는 잘 결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여행을 보내준 아내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보냅니다.)



깜바스 먹으러 펍에 갔다. 문어샐러드, 문어튀김에 알함브라 맥주로 알함브라의 밤은 마무리 되었다.

버스를 타러 그라나다 대성당까지 걸어가는 길, 어둑한 골목에 노래하는 남자가 있었다. 같이가신 어르신들이 돈통에 돈을 넣자, 알함브라의 궁전부터 몇가지를 기타로 연주해줬다.



이 밤, 스페인, 아랍풍의 마을 골목에서 듣는 알함브라의 궁전이라. 연주의 수준을 떠나 그저 좋다. (물론 연주도 잘한다.) 어쩐지 슬프고 애잔하다.

그라나다 대성당에는 이사벨 여왕이 누워있다고 한다. 컬럼버스랑 계약한 바로 그 여왕이다. (콜럼버스에게 항해의 기회를 줘서 감사합니다 여왕님)

밤이 늦었다. 대성당 앞에서 버스타고 호텔로 왔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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