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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Dec 22. 2023

공장처럼 찍어내는 IT서비스 제품의 한계

버킨백과 공장가방


나는 '명품'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Luxury(사치품)라는 명백한 단어가 있는데, 그 부정적인 느낌이 판매에 방해된다는 고가 브랜드들의 판단에 따라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상술에 의한 인위적인 단어 가공이다. 그래서 '사치품'이라고 부르는게 맞다고 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치품' 브랜드 중, 에르메스가 있다. 버킨백이 아주 유명한데, 그 희소성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치솟아 이제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제품이 되었다고 한다. 샤넬 가방이 제아무리 유명하다지만, 에르메스 백에는 감히 비할 수 없게 되었다. 일례로 지하철을 타고 잘 둘러보면 샤넬 클래식백을 든 사람은 넘쳐나지만, 버킨백을 든 사람을 보긴 힘들다. 결혼식장의 그 수많은 샤넬백들을 떠올려보라. 참고로, 한국의 1인당 사치품 소비는 세계 1위이다. 대한민국은 모두가 사치품을 구매할 수 있는 소득 수준이 아닐진대 어찌된 일일까?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과시적 소비를 하는 국민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로 보인다. 아무튼. 이야기가 딴데로 새기 전에.


에르메스 '버킨백'


그 버킨백은 만드는 과정 조차도 고집스러운데, 한 명의 장인이 18시간동안 딱 하나의 가방을 만들어내는 공정을 거친다고 한다. 한 명이 가방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만드는 것이다. 많이 만들면 많이 팔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How Are Birkin Bags Made?
Each Birkin bag is made entirely by a single, well-trained, and highly experienced artisan. It takes over eighteen hours of labor to produce each one. The bag is then marked with an identifying code that includes the year of creation, the artisan who made it, and the workshop where it was produced.

https://madisonavenuecouture.com/blogs/news/how-hermes-birkin-bags-are-made


번역기 돌려봤다.


버킨백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각 버킨백은 잘 훈련되고 경험이 풍부한 한 명의 장인에 의해 전적으로 제작됩니다.
하나를 생산하는데 18시간 이상의 노동이 소요됩니다.
그런 다음 가방에는 제작 연도, 가방을 만든 장인, 가방을 제작한 작업장을 포함한 식별 코드가 표시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자기 이름을 걸고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가방이 있는가하면,

아래 사진과 같은 공장에서 수십명이 공정대로 조립해서 만드는 가방이 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각자 맡은 파츠를 수십,수백장씩 가공하면, 그걸 조립하여 가방으로 만드는 대량생산 방식이다.



에르메스 버킨백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가방.

어떤 가방이 더 가치있을까?

사람들은 어떤 가방에 돈을 더 지불하는가?



IT 프로덕트도 마찬가지다.


공장형 기획팀에서 화면 그림과 상세설명을 PPT로 그려서 '기획서'라는 이름으로 개발팀(외주일 가능성이 높다)에 던진다. 기획서 전달이 끝나면 기획팀은 다음 서비스 기획을 한다. 그렇게 PPT는 계속 생산되어 개발팀에 넘겨진다. 개발팀은 전달받은 PPT 그대로 개발해서 운영계에 반영한다. 그런 제품이 있다. 포드가 자동차를 양산하듯, 대량으로 생산한다. 보통 기능조직에서 그렇다. 기획1팀,기획2팀과 개발1팀,개발2팀,개발3팀이 공장처럼 돌아간다. 사상이나 원칙 뭐 그런건 없다. 빨리 기획서 치고, 코드 짜는게 지상 최대의 목표다. 위에서 시키는거 구현하는 것도 빠듯하다. 컨베이어벨트는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에는, 목적조직으로 하나의 제품에 주인의식을 가진 팀이 있다. 기획개발이 함께 모여 고민하고, 구상하고, 설계하여 협업의 결과로 나온 제품이 있다. 가방 하나를 '왜 만드는지' 고민하고,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의논한다. 작업대 앞에 모여 18시간을 고민하여 한 개의 가방을 만드는 격이다. 조금 느리다. 하지만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다. 써보면 안다.


얼핏 비슷한 서비스지만, 두 제품의 가치는 다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찍어내는 동대문 가방과, 숙련된 기능공 한 사람이 혼을 담아 제작하는 에르메스 가방 만큼 다르다.


사용자는 다 안다.


철저한 직업정신을 바탕으로, 가방에 혼을 담아, 정성에 정성을 들여, 수십년을 연마한 정통의 기술을 갖고, 하나의 제품인 버킨백에 전념하는 사람.

우리는 에르메스 가방을 만드는 사람들을 장인이라고 부른다.


CRAFTSMANSHIP


원팀 스피릿, 주인의식, 목적지향, 타협하지 않는 원칙 등등 IT서비스에서 장인들을 표현하는 다양한 말들이 있다. IT 제품을 서비스하는 사람이라면 PM, 개발자 상관없이 자기 제품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때론 고집스러울 정도의 소신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장인이 된다. 기획서 쳐내는 공장의 PPT작성꾼, 문서에 써있는대로 코딩만 하는 코드몽키는 되지 말자.


얼마전(20231106) chatGPT의 오픈AI가 개발자를 위한 컨퍼런스 'Dev Day'를 열었다. 여기서 'GPT-4 터보'의 소식을 전했는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IT서비스 구현을 위한 단순 코딩은 조만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른바 '노코드'의 시대다. chatGPT의 발전 속도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이폰 1이 나온지 아직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다.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고, 그 중 IT 분야는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비노드 코슬라(미국 VC 투자자)는 “10년 안에 AI는 현존하는 직업 80%의 직무 80%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우리가 대체되기 싫다고 아무리 호소한다고 해도, 흐름에서 벗어날 순 없다. 이미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화는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6/0011621189


AI상담원의 기능이 쓸만한지, 얼마나 뛰어난 역할을 하는지는 상관없다. 그저, 사기업의 이익 추구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발현될 뿐이다.


노동에서 가치를 얻는 시대가 끝나고 있다. 지금 당장 나랑은 아무 상관 없다고? 나는 IT분야 전문가이며 화이트칼라고, 저 사람들은 비숙련 노동자라서 저렇게 당하는 것이라고? 걱정마시라. 퇴출 순서는 차례차례 돌아올 것이다. 결국 당신에게까지도.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475635&plink=SHARE&cooper=SBSNEWSMOBEND


하지만 장인은 대체할 수 없다. 가방 만드는 공장 기계가 아무리 발전해도, 버킨백을 만드는 장인은 에르메스에서 퇴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장인은 AI로 대체되지 못한다. 시니어에서 장인으로, 장인을 너머 대가로 발돋움하려면 공장에서 탈출해야 한다. 오리지널이 되어야 한다. 장인은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 있지 않는다.


장인이 되기 위해 아주 조금씩이라도 노력해보자.

AI에 대체되어 퇴출되지 않도록 말이다.


궁금하다.

당신의 제품이 있는가?

당신은 최근 제품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영화 '원티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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