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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Dec 09. 2023

조직은 어째서 비대해지는가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조직에서 직원의 수는
일의 다소(多少)에 관계없이
상위 직급으로 출세하기 위해 부하를 늘리려는 의도로 인해
비대해지는 성향이 있다.


이 많은 사람은 대체 무얼 하는 것인가.

R&R 조정은 왜 점점 더 힘들어지는가.


조직은 어째서 비대해지는가?



조직관리에 조금이라도 관여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의문을 가져봤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경험을 이야기해 본다면, 조직원이 이유 없이 늘어나는 것에는 규칙이 하나 있다. 바로, '위에서부터 쏟아져내린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보자.


부사장이 낙하산으로 새로 들어와 앉았다고 하자. 그 경우, 부사장은 본인의 자리보전을 위해 바로 위 상위 직급자인 사장 또는 회장에게 '광팔이 작업'을 진행한다. 그때, 전임 부사장이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는 전부 폐기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펼쳐놓는다. '난 전임자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신임 부사장은 갑자기 뜬금없는 부서들을 신설하며 담당할 임원(전무)들을 채용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끌어줄 사람들을 채용한다는 것이 명목이지만 사실은 자기 파벌을 형성하고 힘을 갖춰 조직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주로 이전 회사에서 친했던(형,동생 했던) 팀장급들을 끌어온다. 자, 이제 낙하산들이 '위에서부터 쏟아져내린다.' 부사장, 전무, 실장, 팀장, 파트장 순으로 위에서부터 낙하산들이 줄줄줄 쏟아져내린다. 그 과정에서 각자 실무자들을 데려다 앉히는데, 이 역시 친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회장은 의아하다. 아니, 나는 '부사장' 한 명을 데려다 앉혔는데, 조직원이 순식간에 100명이나 늘어났다고? 부사장을 사장실로 호출한다. 물어본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그렇게 채용이 많은 거예요?"

"아시다시피,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모두 필요에 의한 채용이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하하하!"


부사장은 사장실에서 나와, 자기가 데려온 전무 7명을 부사장실로 호출한다. 물어본다. 여기서부턴 형동생 관계다.

"위에서 뭐라 한다. 적당히 조절하면서 데려와라"

"임원 계약 연장하려면 뭔가 큰 거 한 방 터뜨려야죠! 판을 크게 벌려놔야 됩니다~ 제가 아는 애들로 일단 되는대로 다 데려오겠습니다 충성충성!"


부사장은 아는 술친구들을 임원들로 뽑아제끼고, 임원들은 아는 골프친구들을 실장들로 뽑아제끼고, 실장들은 아는 학교후배들을 팀장들로 뽑아제끼고, 팀장들은 아는 동생들을 파트장들로 뽑아제끼고, 위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무분별한 채용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윗선은 아래 채용 상황이나 배경은 잘 모른다. 아래에서 왜 이렇게 많이 뽑아대는지 알 수 없다. 애초에, 일을 벌여놓고 판을 키워서 자기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단순한 생각뿐이다. 구체적인 서비스의 목표와 방향, 그에 필요한 적정 인원이나 R&R 같은 건 주먹구구로 그때그때 대충 결정한다.


조직에서 직원의 수는
일의 다소(多少)에 관계없이
상위 직급으로 출세하기 위해 부하를 늘리려는 의도로 인해
비대해지는 성향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ㅇㅇ서비스를 운영 중인 팀이 있다. 개발자와 PM, 디자이너, BA, QA 등이 모두 모여 한 팀에서 같이 제품을 운영/개선하고 있다. 여기 새로운 팀장이 온다. 당연히 위에서 꽂은 낙하산이다. 이 팀장은 위로 올라가고 싶다. 상위 직급으로 출세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부하직원의 수를 늘려야 한다. 조직규모를 키워야 한다. 자 어떻게 할까.


갑자기 팀을 쪼갠다. 어떻게? 개발파트와 기획파트로. (명분이야 만들면 그만이다) 그럼 파트장이 필요하겠네? 외부에서 친한 동생 둘을 데려온다. 개발파트장, 기획파트장으로 앉힌다. 낙하산으로 떨어진 개발파트장과 기획파트장도 위로 올라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부하직원의 수를 늘려야 한다. 조직규모를 키워야 한다. 그들도 파트를 쪼갠다. 위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 계속. 조직은 점점 비대해진다.


그제야 회장은 '이제부터 TO를 조정하겠다'고 천명하고 채용을 잠근다. 정작 사람이 필요한 팀은 큰일 났다. 부사장부터 임원들을 포함한 낙하산 관리자들이 일은 죄다 크게 벌여놔서, 오픈일까지 픽스되었는데 실무자 채용을 안 해주겠단다. 정작 실무자들이 애원하는데, TO하나 늘리는 게 하늘의 별따기가 된다. 그 와중에 임원은 계속 늘어난다. 관리자는 계속 추가된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리딩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인데, 정작 채용되는 임원이나 관리자의 백그라운드와 역량 수준이 형편없다. 어느새 임원이 실무자보다 더 많다. 관리자들은 바글바글한데, 실제로 일 할 사람이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더 무서운 사실은, 부사장이 교체되면, 이 파멸의 나선이 다시 반복된다는 것이다. 기존 낙하산들은? 다른 부서로 전배를 가거나, 여전히 조직에 리더로 남아 고인물 파벌을 형성하여 정치질을 시작한다. 500명 추가, 600명 추가, 400명 추가, 부사장이 바뀔 때마다 조직은 비대해진다. 결과는 구조조정이다. 그 길 뿐이다.


조직이 비대하다.

임원과 관리자만 쓸데없이 많다.

사람은 수백 명인데, 정작 일이 진행이 안된다.

명확한 실무자, 담당자 찾기가 어렵다.

R&R이 명확하지 않아 싸움이 잦고, 서로 미루기만 한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형동생 문화가 결합하면서 ‘라인’이라는 끔찍한 정치질이 시작되면, K-대기업 조직 패망의 루트가 완성된다.


사내정치는 성장이 둔화된 기업에서 가장 극성하기 쉽다. 모든 경영자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사내정치를 절대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사내정치는 기업의 사기와 동력을 파괴할 수 있는 부당한 자기 권력 확대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 헤럴드 제닌, ‘managing’



많이 들어봤겠지만,

'파킨슨의 법칙'이라는 유명한 사회생태학 법칙이 있다.

‘사람은 상위 직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부하직원의 수를 늘릴 필요가 있으므로 조직 구성원의 수는 업무량의 유무나 경중에 관계없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라는 현상을 수학적 법칙으로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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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조직은 주어진 구실이나 업무와는 관계없이 항상 사람을 늘어나게 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대기업병이나 관료조직의 병폐도 이 같은 조직의 속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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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직원의 수는 일의 다소(多少)에 관계없이 상위 직급으로 출세하기 위해 부하를 늘리려는 의도로 인해 항상 조직이 커지는 성향이 있다고 앞서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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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이 자신이 근무한 영국 해군성 사례를 연구하다 이러한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1914년 62척이던 영국의 주력 군함이 1928년 20척으로 67.7%나 줄었지만 해군성 공무원 수는 2,000명에서 3,569명으로 78.4% 급증했다. 객관적인 직무는 줄었는데 사람은 늘어난 것이다. 또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 식민지 국가들이 잇따라 독립하면서 거의 기능을 잃어가던 영국 식민성이 1935년 직원 수가 372명에서 1954년에는 1,661명으로 사람을 늘린 사실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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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례를 살펴보면, 현재 잘 나가는 기업들도 과거에는 대부분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 대에 IBM이 맞았던 위기가 바로 비대해진 조직의 문제 때문이었는데 IBM은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반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다. 그러던 IBM이 1992년에 20대 기업에도 들어가지 못했으며 1993년 에는 전성기 가치의 1/4로 추락하게 되었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조직의 비대화와 그로 인한 낭비, 그리고 시장의 변화 때문이었다. 1986년에는 관리자만 40만 명이 넘었다.

신한은행 리포트 '왜 조직이 클수록 낭비가 많아지는가?' 중에서
(https://img.shinhan.com/cib/ko/data/FSB_0712_11.pdf)



민첩하고 작은 조직으로 운영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문화를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도 바로 그것이었다. 독립적으로 오너십을 갖고 책임감 있게 움직이는 작고 민첩한 조직. 그러려면 제대로 된 최상위 조직 관리자를 앉혀야 한다. 조직의 비대화는 '위에서부터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


또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무작정 늘리고 새로 만들기보다는 '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개선하고 발전시키도록 해야 한다. 문화가 전부이다. 요즘이 어디 '위에서 이거 만들라고 한다'고 제대로 제품이 뚝딱 나오는 시대인가? 스마트한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권한과 책임을 위임해 주면 좋은 아이디어와 혁신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기업의 가치는 인재들의 밀도와 조직 문화에서 나오는 것이지, 단순히 직원이 많은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조직원이 많으면 당연히 생산성 지표도 떨어진다.)


판만 벌여놓고, 제대로 수습 안 되는 일도 많을 거다. 분명히 그럴 거다. 낙하산들이 광파는 것은 우주 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프로젝트의 개수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집중해야 한다. 일만 벌여놓는 최상위 책임자를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문화를 어둡게 하고, 조직을 비대하게 하며, 결국 회사를 망친다. 스티브 잡스가 1997년 애플로 다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채용이 아니었다. 바로 제품 라인을 줄이는 것이었다.


조직을 들여다보자. 이상하게 '한 회사 출신이 많다'는 소문이 도는가? '누가 누굴 데려왔더라'는 카더라가 파다한가? 그렇다면 이미 파벌은 형성되었고, 라인은 구축되었으며, 정치질을 포함한 조직의 비대화는 현재진행형일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 왕처럼 군림하며 조직을 운영하고 있을 테지. 몇 시간씩 진행하는 회의 시간에는 아무도 그에게 토 달지 못하고 침묵하며 짝짝 박수만 칠 가능성이 높다. 21세기 전제군주의 탄생이다.


조직에서 직원의 수는
일의 다소(多少)에 관계없이
상위 직급으로 출세하기 위해 부하를 늘리려는 의도로 인해
비대해지는 성향이 있다.


잊지 말자.

당신의 조직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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