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을 보다

권력이 그렇게 좋더냐?

김성수 감독은 '비트', '태양은 없다'부터 '아수라'에 이르기까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많이 연출했는데, 이번에 또 명작을 만들었다. 바로 ‘서울의 봄’. 이미 입소문을 타고 개봉 2일만에 관객수 100만을 돌파했다.

현재 빠르게 침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경제/문화 상황을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순식간에 이 지경이 되었다. 이런 시국.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부패한 권력의 근본과 역사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우리나라의 정치, 사법 시스템이 잘못되어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 뿌리를 들여다보고 싶었겠지. 그래서 이 영화가 요새 엄청난 흥행몰이 중이다.

화제의 작품,

‘서울의 봄‘을 봤다.

사람이 많은 건 질색이라, 조조로 예매했다. 아침인데도 사람이 좀 있더라.

상영 전, 광고는 왜 그렇게 많은건지

김재규 장군이 박정희를 살해한 79년 10월 26일부터, 전두환과 하나회 세력들이 군사반란을 일으킨 12월 12일까지를 담았다. 물론, 대부분의 내용은 군사반란을 일으킨 12월 12일 당일의 9시간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12.12 군사반란 주도자들

영화 내내, ‘이렇게 쉽게 쿠데타가 일어나고 완료되었다고? 이렇게 어이없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미디도 아니고 이토록 간단히 반란이 성공했다니. 요즘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화가 났다. 전두환이 자기 권력을 위해, 최전방을 지키던 9사단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장면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전두환은 군인이었다. 군인이, 나라를 지키는 것보다, 자기 자리보전과 권력이 중요했던거다. (회사에서 임원들이 많이 하는 짓이라 익숙하긴 하다만, 전시에 저러는 건 좀 심하잖아?) 게다가 육본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등신같은 리더들을 보고 있노라니 자꾸 회사와 오버랩되는 기시감이 들었다.

영화 자체로는 완급 조절이 기가 막혔다. 편집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들었다. 2시간을 쉴새없이 몰아치는 명작의 탄생이다. 오락적인 면에서 블록버스터에 전혀 뒤지지 않는 작품이다.

황정민의 연기는 정말. 이게 참, 배우일 뿐이라는 걸 알고 보면서도 감정이입이 되는 연기였다. 누가 황정민 연기가 맨날 똑같다고 욕했나? 전두환 그 자체로 분한 황정민은 마치 영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가 연상될 정도로 광기어린 연기를 보여주었다. 사실, 대머리 분장부터 역사에 실존했던 반란군 수괴 역할을 맡는 다는 것이 배우 경력에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그간 황정민의 연기 중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화장실 장면은 '전두광'이라는 캐릭터명 답게 '광기' 그 자체였다.

정우성은 멋지게 나이가 들어, 흰머리의 우직한 군인 역할을 기가막히게 소화했다. 나는 정우성이 연기를 이렇게 잘 하는 줄 몰랐다. 그 동안 잘생긴 얼굴만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 정우성은 마치 이 영화를 위해 그동안 필모를 쌓아왔던 것처럼 분노를 차분히 분출했고,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이태신 장군의 미묘한 감정선을 잘 살렸다. 그는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마지막 이태신이 바리케이트를 건너며 바닥에 넘어지고 뒹구는 장면은 그 어떤 신파 영화보다 슬펐다. 정우성이 큰 키로 넘어지고 다치면서 전두환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대한민국의 상황을, 무언가를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신념이 무너지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애처로웠다.

영화 속 군인 사조직 '하나회'의 막강한 파워를 두 눈으로 보니, 새삼 김영삼 대통령의 하나회 숙청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인물 카르텔'의 파벌형성과 정치질에서, 회사의 누군가가 떠올랐던 건 직업병이라고 불러야 할까. 김영삼 대통령의 공과 과가 있지만, 하나회 숙청 칭찬합니다. IMF만 아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조선총독부 뽀개버린건 통쾌했어요.

그날 밤, 12.12 군사반란을 막을 수 있는 수 많은 기회들이 있었다. 여러 등신같은 리더들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미래를 그렇게 만들고 말았다. 얼간이 리더들의 어이없는 결정과 행동들이 아니었다면, 이어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아픔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다. '역사는 오래된 미래'라고도 한다. 우리는 12.12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역사는 반복된다

하나회의 ‘우리는 하나다’ 와 국가 최고 권력기관의 ’검사동일체‘론이 흡사하다고 생각되는건 왜일까? 12.12 군사반란과 형식을 달리하지만, 총칼이 없을 뿐 똑같은 일이 현재 대한민국에 일어나고 있다. 단지 그것이 군이 아닌 다른 조직일 뿐.

역사는 반복되겠지

이 시국에 이런 중요한 영화에 출연해 준 정우성, 황정민 배우 등 출연진들에게 감사하다. 감독님도 찍어주어서 감사하고, 제작비를 투자한 회사들에게도 고맙다.

우리 역사교육이 현대사를 다루지 않는 문제는 심각하다. 나도, 우리 아이들도, 모르고 지내는 숨겨진 역사속 악인들의 행태가 많다. 부족한 역사교육과 인식이 온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올바른 곳에 분노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분열과 갈등이 일어나는 중이다.

현재까지 이어 온 길을 알아야만
미래를 분명하고 현명하게 계획할 수 있다.

- 아들라이 E. 스티븐슨

제대로 알려야 한다. 우리도 알아야 한다. 과거를 잊으면 올바른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동안 정규교육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던 근현대사의 뼈아픈 이야기 중, 12.12 군사반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교육적 효용이 충분하다. 그 뿐 아니라, 오락적 측면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정말 잘 만든 재미있는 영화니까, 안보신 분들은 극장에서 꼭 관람하시길 추천합니다.

이 영화.
많은 사람들이 봐야합니다.
재밌어요.
꼭 보세요.

서울의 봄은,

언제쯤 다시 올까.